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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 운동의 절박한 문제들 - 러시아어판 완역 ㅣ 레닌 에센스 1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레닌 지음, 최호정 옮김 / 박종철출판사 / 2014년 5월
평점 :
8년 만에 다시 읽는
<무엇을 할 것인가? : 우리 운동의 절박한 문제들>
<무엇을 할 것인가?>를 처음 읽었던 게 9년 전 겨울이었던 것 같다. 호기롭게 책은 폈는데 읽기도 어려운 러시아 인명, 간행물에 난생 처음 접한 레닌 특유의 문체까지 겹쳐 결국 아무것도 이해 못했던 기억이 난다. “혁명가조직”, “전러시아적 신문” 더듬더듬 키워드만 머리에 남긴 채로 끝난 레닌과 첫 만남은 1년 뒤에도 비슷한 성과를 남기며 끝났다. “아, 혁명가조직이랑 전국적 신문 건설이 중요했구나.”
<무엇을 할 것인가?>는 1902년에 출간되었지만 실제 작업은 1901년 봄부터 겨울까지 진행되었다고 한다. 레닌이 1870년생이니깐 이 책을 쓸 때 나이가 지금 나와 동갑이다. 8년 전에는 이해 못했지만 동갑이 된 지금은 사정이 조금은 더 낫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에 다시 책을 펴본다.
1898년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당이 창건되었지만 아직 정식으로 조직된 하나의 당이라기 보단 개별 그룹들의 총합에 가까웠다. 이에 레닌은 당 건설 계획을 구체화할 목적으로 집필을 시작한다. 따라서 책의 주요주제는 레닌에 따르면 아래 세 가지여야 했다.
(1)당의 정치선동 성격과 내용 : 전제주의 압제 폭로
(2)당의 조직적 임무 : 직업적 혁명가조직 건설
(3)전러시아적 전투조직 건설계획 : 전러시아적 정치신문 계획
하지만 당 내에 ‘경제주의’라는 경향이 나타나며 당초 집필 계획이 일부 변경된다. 당의 정치임무, 당의 조직임무, 당의 조직계획에서 드러나는 견해 차이는 당 내 근본적 대립이며 여기에 대한 대중적이며 체계적인 설명이 필요해졌다.
■당의 정치임무 거부하는 경제주의
레닌은 현대 사회민주주의 당 내 두 가지 경향이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하나는 독일의 베른슈타인, 프랑스의 밀레랑 등으로 대표되는 사회개량주의이고, 또 다른 하나는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이다. 베른슈타인주의는 사회모순을 무마하고, 사회혁명을 부정하고, 계급투쟁을 점진적 개혁을 위한 현실적 투쟁 및 협소한 노동조합주의로 끌고 가 사회주의 의식을 타락시킨다.
경제주의는 러시아의 베른슈타인주의다.
이들은 ‘교조주의’ ‘당의 경직화’를 말하며 ‘비판의 자유’를 사회민주주의 당의 통합조건으로 제시한다. 레닌은 여기에 맞서 ‘비판의 자유’란 당을 기회주의 경향으로, 부르주아 개혁 정당으로 바꿀 자유, 혁명적 이론으로부터 벗어날 자유를 뜻할 뿐이라고 반박한다.
이들은 레닌의 노선 이렇게 비판한다. 교조적인 관점 때문에 “발전의 객관적, 혹은 자생적 요소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운동의 임무는 최근 몇 년간 발생한 노동운동으로 규정해야한다고 말한다. 즉 당의 임무는 있는 그대로의 노동운동에 봉사하는 것이지 독자적인 사회민주주의 정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이는 레닌이 제기한 당의 임무와는 사뭇 달랐다.
“역사는 우리에게 당면 임무를 제기했다.... 이 임무를 실행한다면, 즉 유럽 반동의 가장 강고한 보루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 반동의 가장 강고한 보루이기도 한 것을 파괴한다면,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세계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가 될 것이다”(35p)
레닌은 당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경제주의 입장을 자생성에 굴종한 것이라 비판한다. 먼저, 자생성이라는 것도 갖가지다. 경제주의자들이 자생적 요소라 말하는 최근의 파업투쟁도 19세기 폭동들에 비하면 대단히 의식적인 운동이다. 요구사항을 제기하고, 적합한 순간을 계산하고, 다른 지방 사례를 논의한다. 다만 자생적으로 일어난 파업은 사회주의적이진 않다.
또 대중운동이 자생적으로 고양될수록 사회민주주의의 이론적, 정치적, 조직적 활동에서 더 많은 의식성이 요구된다. 문제는 러시아 대중은 고양되었는데 당은 준비부족인 것이다. 그런데 경제주의자들은 우리의 준비부족을 인정하는 대신 ‘객관적 요소’ ‘물질적 환경’을 탓한다.
“준비부족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비극, 모든 러시아 사회 민주주의자들의 비극이다..... 혁명가들은 ‘이론’에서도 활동에서도 이러한 대중의 고양에 뒤처졌으며, 전체 운동을 지도할 수 있는, 중단되지 않고 계승되는 조직을 건설하지 못했다.”(68p)
■사회민주주의의식은 외부에서만 올 수 있다
경제주의자들은 정치투쟁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봤듯 이들은 노동운동 자체에서 자라는 정치투쟁은 인정한다. 레닌은 이들이 정치를 사회 민주주의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항상 노동 조합주의적으로 이해할 뿐이라고 말한다.
경제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당의 임무는 경제 투쟁 자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현실 운동의 한 걸음이 한 다스의 강령보다 중요하다.” 즉 당은 각종 ‘입법 및 행정’ 활동 통해 해당직종 노동자들에게 ‘가시적 결과’를 가져다주는 역할을 임무로 삼아야 한다.
레닌은 분개한다. 경제개혁 투쟁은 혁명적 사회민주주의 당이 본래도 활동 일부로서 항상 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단지 정부가 갖가지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전제주의 자체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다. 따라서 당장 ‘가시적 결과’를 보장 못해도 전제주의에 관한 전면적인 정치폭로를 자신의 몫으로 짊어지고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을 전진시키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아야 한다.
“사회민주주의가 노동자 계급을 대표하는 것은 각각의 기업가들과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현사회의 모든 계급들 및 조직된 정치적 힘인 국가에 대한 관계에서이다.” (74p)
경제주의자들은 경제투쟁에 의해서만 계급적 정치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레닌은 반대로 경제투쟁만으로는 계급적 정치의식을 결코 발전시킬 수 없으며, 외부에서 전달해야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사회민주주의 의식은 고용주-노동자 관계를 넘어 국가와 정부에 대한 모든 계급계층의 관계, 모든 계급들의 상호관계라는 영역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노동자 계급의 자기인식은 이론적 지식만이 아니라, 아니 더 올바르게 말하자면 이론적 지식보다는 정치 생활의 경험에서 생겨난, 현대 사회의 모든 계급들의 상호 관계에 대한 충분하고도 명료한 이해와 불가분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91p)
전제주의 타도라는 당면임무에 맞게 전면적 정치폭로로 각종 정치생활경험에 관한 대중의 의식을 명료화 시켜야한다. 정치폭로 연단이 될 수 있는 것은 전러시아적 신문뿐이다. 이 활동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모든 주민계층 속에서 이뤄져야한다. 그러자 경제주의자들은 이렇게 맞선다. 사회민주주의당은 다양한 반정부 계급계층을 지도할 수 없으며, 또 그런 계급계층과 힘을 합치는 것을 계급적 관점에서 이탈한 타협이라는 것이다.
레닌은 당이 다양한 사회계층들의 활동을 지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위’가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회 민주주의 실천가들을 동요하는 중간계층을 지도할 능력 있는 정치지도자로 단련시켜야한다.
“우리는 모든 반정부 계층들이 우리 당과 우리의 정치 투쟁을 강력히 도울 수 있도록, 또 실제로 돕게 되도록 우리 당의 지도 아래 그 같은 전면적인 정치 투쟁을 조직해야 할 임무를 짊어져야 한다.” (112p)
■당의 조직임무와 조직계획
1890년대 청년학생들을 중심으로 맑스주의가 보급되고 때마침 1896년 여름 뻬쩨르부르크 파업 등 노동운동도 성장한다. 하지만 정부는 곧장 새로운 조건에 맞게 첩자, 헌병대 부대 등을 파견하며 조직적 소탕으로 지역 서클들을 모조리 쓸어버린다. 노동자 대중은 문자 그대로 지도부 전체를 잃는다.
레닌은 당시 혁명가들의 미숙과 훈련부족은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기에 이를 비난할 수는 없다고 한다. 다만 혁명 활동 폭이 전반적으로 협소하고, 심지어는 이런 협소한 활동으론 훌륭한 혁명가 조직이 건설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 못하고 협소함을 정당화하는 “수공업성”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치투쟁의 힘과 계승성을 보장할 수 있는 직업적 혁명가 조직을 건설해야한다. 이에 맞서 경제주의자들은 주장한다. “(당)강령의 핵심이 음모가 아니라 대중운동”, “불꽃의 반민주주의적 경향에 맞서 싸워야한다.” 즉, 혁명가 조직은 대중운동을 거부하는 ‘음모적’ ‘반민주주의 경향’이라는 것이다.
“대중이 운동에 자생적으로 이끌려 들어온다고 해서 투쟁을 조직할 필요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바로 그 때문에 조직이 더욱 필요해진다.” (144p) 대중에 대한 직접적인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라도 혁명가 조직은 반드시 필요하다. 혁명가 조직이 유인물 작성, 시위 계획 수립, 각 공장·구역 지도부 임명 등에 집중함으로써 대중은 시위에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해도 더 이상 해를 입지 않게 된다. 오히려 반대로 승리하게 된다. 또 광범위한 대중을 대상으로 한 대중활동의 내용과 폭도 더욱 풍부해진다.
레닌은 정치혁명을 수행할 단일한 혁명가 조직 건설계획으로 ‘전러시아적 정치신문 발간’ 계획을 제시한다. 최근 우리 운동이 어려운 이유는 지역 활동가들이 과도하게 지역 활동에만 매몰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2년 반 동안 발행된 30여 호의 지역신문 숫자로도 확인된다. 평균 한 도시에 반년에 한 호씩 나왔다는 것인데 이는 혁명역량의 소모다. 만약 활동의 구심을 전국으로 옮기고 단일조직이 전러시아적 신문을 발간했다면 어땠을까? 차르 전제주의의 전형적이면서 두드러진 횡포가 2주일에 한 번씩 러시아 전역에 기사로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지역조직들이 지역신문만 생각하고 작업하는 비정상적 상황을 끝내고 당장 전러시아적 기관지를 위한 작업에 열중하는 상황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실제 운동을 지원할 수 있는 신문을 만들 수 있다. 이 계획에 경제주의자들은 “전제주의적 입법자, 통제불능의 입법자” “당이 권위주의적 편집국에 완전히 종속되는 것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신문계획은 먹물 근성의 발현”이라고 강하게 반발한다.
레닌은 지금 필요한 것은 다양한 세력들이 바로 조직건설에 착수할 수 있는 계획이라고 말한다. 전제주의에 대한 공동의 투쟁을 지도할 혁명가 역량을 조직해야 하는데 지금 지역신문은 이 역할을 할 수 없다. 또 혁명이란 강력한 폭발과 완전한 소강 시기를 포함하며 당 조직 활동은 이 모두를 포괄해야한다. 신문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조직은 탄압의 시기 당을 지키는 것부터 인민봉기를 준비하고 수행하는 일까지 모든 일을 할 준비를 갖출 것이다.
■마무리 : 인민봉기
책 마지막에 레닌은 인민봉기를 생각해보라고 한다. 차르 전제주의에 맞서 봉기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당 중앙위원회가 봉기준비 위해 각 지역에 임무대행자를 임명할 수 있나? 현 러시아 조건에서? 하지만 공동 신문을 발간하고 배포하는 활동 통해 그런 임무대행자 망이 저절로 형성되고 봉기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또 광범위한 노동자 대중과 전제주의에 불만 가진 모든 계층들의 관계를 강화한다. 모든 지역조직들이 정치문제에 대해 통일된 형태로 대응할 수 있게 한다. 러시아 전역의 혁명조직들이 당의 실질적 통일을 창출하게 된다.
“한마디로 ‘전러시아적 정치 신문 계획’은 교조주의와 먹물 근성에 물든 탁상공론가의 산물이 아니며, 그와 반대로...지금 바로 봉기를 준비하고 모든 측면에서 봉기를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실천적인 계획이다.” (231p)
타도 대상(전제주의), 투쟁형태(인민봉기), 동맹대상(자유주의자 및), 봉기지도부로서 당의 통일, 그리고 이를 위한 조직계획 등등... 8년 만에 읽어서 어떻게든 소화해보려고 했는데, 역시나 과식이지 않나 싶다. 그래도 다시 읽으니 이젠 인터넷 밈처럼 떠도는 ‘위대한 레닌동지’라는 말이 새삼스레 느껴진다.
<무엇을 할 것인가?> 후반부 레닌은 “꿈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수많은 지역 위원회, 서클들이 공동의 대의에 복무하고, 공동의 과업을 중심으로, 공동의 조직 건설 현장에서 우리 혁명가들 중에 우리 노동자들 중에 정치지도자들이 나타나 전체인민을 이끄는 것을 꿈꾸어야 한다고 한다. 스스로 말하진 않았지만 레닌 자신도 그런 정치지도자 중 하나로 일떠서길 꿈꾸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