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전환 -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18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 길(도서출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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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전환>읽기 : 사회주의 정치의 필요성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읽게 되었다. 1944년 출간된 이 책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제1차 세계대전, 파시즘의 발흥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까지 서구 문명의 붕괴라는 당대 시대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왜 자유주의 국가들의 백년평화가 세계대전으로 비화했는가? 왜 전후 노동계급의 지지 속에 탄생한 사회민주주의 정권들이 파시즘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나?

 

이 질문에 내가 당장 드는 생각은 이렇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경쟁이 세계대전으로 비화된 것 아닌가? 베르사유 조약의 무리한 요구가 나치즘과 전쟁의 씨앗이 된 것 아닌가?

 

폴라니는 이렇게 답한다. 20세기 서구 문명 붕괴의 기원은 19세기 자기조정 시장경제의 출현에 있다. 그는 자기조정 시장경제체제란 인간사회에서 단 한순간도 실현될 수 없는 유토피아이며, 이런 유토피아적 기획에 따라 본래 상품이 될 수 없는 인간·자연·화폐가 상품으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시장경제라는 유토피아적 기획이 문명 붕괴의 기원이다.

 

이런 주장은 너도 나도 주식을 하고 부동산 투기 소식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비트코인 열풍이 부는 요즘 사회분위기와는 한참이나 동떨어져 보인다. 주변에 상품 아닌 것이 없고 모두가 한몫 챙기고자 시장에 뛰어든다. 인간은 본래부터 이기적인 존재이고 시장경제는 그러한 인간본성에 가장 잘 맞는 체제처럼 보인다.

 

시장경제는 인류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체제인가?”

 

<거대한 전환>은 단지 시장경제의 폐해를 지적하고 국가의 적절한 개입을 촉구하는 정도를 넘어선다. 경제란 본래 사회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만약 경제가 사회에서 빠져나와 사회의 존속을 위협한다면 사회는 그에 맞서 보호운동을 할 수밖에 없다. 만약 인류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있다면 그건 사회이지 시장경제가 아니다.

 

 

시장경제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종획운동을 상세하게 다룬다. 영국에서 일어난 종획운동은 토지를 사유화하여 농민을 생산수단과 분리시켜 노동자화 시키는 과정이었다. 토머스 무어는 당대 종획운동을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말로 표현할 정도였으니 그 과정이 얼마나 폭력적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폭력적 과정을 통해 관습적으로 사용되던 토지가 자산이 되고 토지를 잃은 농민이 임금노동자가 된다. 종획운동은 전근대사회에서 자본주의로 이행이 결코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마르크스가 임노동관계 창출이라는 자본의 초기형성에 집중했다면,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 3장에서 종획운동에 맞선 사회의 자기보호를 보여준다. 영주와 귀족들이 공유지를 사유화하고 농경지를 목초지로 바꾼다. 농경지가 목초지가 되는 과정에서 많은 농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는다. 마을이 황폐화되고, 대를 이어 살던 가택이 무너지고, 농촌 인구가 줄어든다. 이에 맞서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심지어 튜더 왕조와 초기 스튜어트 왕조는 종획운동을 막으려는 보호법령과 정책을 내놓기까지 한다.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농민반란과 반종획입법이 시장경제가 형성되는 경제학적 법칙을 이해 못한 처사라고 평가한다. 결과적으로 종획운동으로 토지 가치가 오르고, 토지 소출이 증가했으며, 양모산업의 발전으로 산업혁명의 기틀을 닦았다. 종획운동은 시장경제의 발전이라는 자연스러운 추세를 보여줄 뿐이다. 이에 맞서는 것은 자연현상을 인위적으로 막는 반동적 개입주의에 불과하다. 그러나 폴라니는 이렇게 반박한다. 종획운동이 초래하는 사회변화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야말로 의미 있는 것 아닌가?


만약 튜더 왕조와 초기 스튜어트 왕조에서 나릿일을 맡아본 이들이 종획운동에 제동을 걸 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하지 않았더라면 그러한 진보속도가 파멸적일 만큼 가속화되어 마침내 진보 과정 자체가 건설적 사건이 아닌 오히려 사회 전체의 퇴락을 가져오는 것으로 변할 수도 있었다.” (171)


자연스러운 것은 아직 영국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장경제에 적합한 법칙이 아니라 종획운동에 맞서 사회를 보호하려던 움직임이었다. 만약 어떤 변화가 방향도 통제할 수 없고 속도도 지나치게 빠르다면 가능한 한 그 속도를 늦추어서 공동체의 안녕을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4장에서 폴라니는 시장경제가 아닌 다양한 경제체제를 보여주며 시장경제가 결코 인류역사에서 당연한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애덤스미스 이래 교환을 통해 이익과 이윤을 얻는다는 동기가 인간 경제를 움직이는 기본 전제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실제 인류역사는 그러한 경제적 자유주의의 가설이 19세기적 편견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초기 사회에 대한 최근연구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결론을 얻을 수 있다면, 인간은 한결같이 사회적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이 가진 여러 천성적 자질들은 시대와 장소를 넘어서 모든 사회에 고루 나타나며, 인간 사회의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것도 변함없이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184)


역사적, 인류학적 연구 결과는 인간이 물질적 이해관계와 관계없이 행동했음을 보여준다. 생산과 분배 같은 경제활동은 시장경제가 가정하는 물질적 동기가 아니라 사회관계 속에 깊숙이 잠긴 채로 상호성이나 재분배 원리로 작동했다. 어떤 사회는 교환이 선물과 보답이라는 상호성의 관계에 따라 수행된다. 어떤 사회는 저장된 부를 축제나 의식 등을 통해 구성원들에게 분배한다. 트로브리앤드 제도같은 친족사회부터 고대 이집트, 고대 중국, 잉카제국 등 크고 복잡한 사회까지 상호성과 재분배 원리를 볼 수 있다. 이는 서유럽사회도 마찬가지여서 봉건제가 끝나기 전까지는 상호성, 재분배 그리고 가정경제의 원리로 경제체제가 작동하였다.

 

시장제도는 과거 존재한 여러 경제 체제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면 시장경제는 언제, 어떻게 나타나게 된 것인가? 폴라니는 5장과 6장에서 시장의 역사를 추적하며 시장에 대한 정설을 반박한다. 고전파 경제학을 비롯한 정설은 이렇다. 개인은 물물교환 성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마을 장터와 노동분업 발생은 필연적이다. 인간의 교환성향은 처음에는 단순한 물물교환으로 시작하여 마을장터, 국내시장 그리고 대외무역으로 점차 발전한다.

 

그러나 폴라니의 연구결과는 정설의 주장과 정반대다. 재화와 노동분업의 지리적 분포에 따라 원거리무역이 먼저 나타난다. 원거리 무역이 생겨나면 종종 그로 인해 다른 시장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렇게 시장이 나타나고 개인이 판매 및 구매 행위를 하게 되며 이른바 개인의 교환 성향이라는 것이 나타난다. 무역은 인간에게 내재된 교환성향의 발현이 아닌 재화의 획득 문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또 외부 무역의 기원을 따져보면 물물교환이 아니라 모험·탐험·수렵·해적질·전쟁 등의 성격을 띠었다.

 

인간의 교환성향이 점차 발전하며 마을장터, 국내시장, 대외무역이 점차 발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마을장터, 국내시장, 대외무역은 전적으로 상이한 제도들이며 특히나 국내시장은 중상주의 국가가 등장하고서야 출현하게 된다. 중세까지만 해도 각 도시를 잇는 원거리 무역과 마을장터는 각종 관습과 보호주의 법령으로 엄격히 구분되었다. 국내시장은 근대주권국가가 영토 내 자원을 목표에 맞게 동원하기 위해 도시별로 나눠진 시장을 통합하며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이 국내시장도 아직 우리가 아는 자기조정 시장경제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기 위해선 또 다른 조건이 필요했다. 바로 노동·토지·화폐라는 허구상품이다.

 

 

사회를 해체하는 허구상품에 맞서 보호운동이 일어나다

시장경제란 여러 시장이 모여서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단일 체제를 형성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체제는 경제활동이 오로지 가격을 통해 결정되는 자기조정적 체제다. 생산과 분배 모든 경제활동이 가격에 따라 작동해야한다. 산업의 모든 요소가 시장에서 사고파는 상품이 되어야한다. 이 말은 노동·토지·화폐도 각각 임금·지대·이자로 불리는 가격이 매겨진 상품이 된다는 뜻이다.

 

시장경제는 오로지 시장사회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중략) .....시장경제는 노동·토지·화폐를 포함한 산업의 모든 요소를 포괄해야 한다. 하지만 노동이나 토지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그것들은 다름 아닌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 자체이며 또 사회가 그 안에 존재하는 자연환경인 것이다. 이것들을 시장 메커니즘에 포함한다는 것은 사회의 실체 자체를 시장의 법칙 아래 종속시킨다는 뜻이다.” (242p)


중상주의가 창출한 국내시장은 이러한 자기조정 시장경제와는 사뭇 달랐다. 중상주의 국가는 상업화를 강력하게 추진했지만, 산업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토지에 대한 봉건적 질서나 길드체제와 같은 관습은 중상주의 국가가 법령을 통해 통일적으로 규제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이전과 그대로였다. 중상주의자들은 아직 노동과 토지의 상업화라는 관념에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18세기 말에서야 중상주의 국가가 규제하는 전국시장에서 자기조정 시장으로의 사회구조 변화가 나타난다.

 

이러한 사회구조 변화는 두 가지 조건이 맞물린 결과였다. 중상주의 시대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상인계층이 등장한다. 상인들은 가내 산업에 원자재를 공급하는 등 생산과정을 통제했다. 그런데 이 상인이 통제하는 생산과정에 공장제의 발전이라는 획기적인 변화가 찾아온다. 대규모 기계를 사용하는 공장제의 발전은 산업생산의 성격의 뒤바꿔버렸다. 지금까지 산업생산은 상업에 따른 부산물에 불과했지만 이젠 대규모 장기투자라는 리스크를 동반한 만큼 생산이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했다.

 

시장 메커니즘을 노동·토지·화폐라는 산업 요소들에까지 확장하게 된 것은 상업 사회라는 틀에 공장제를 도입하면서 불가피하게 나타난 현상이었다. 산업 작동에 필요한 요소들이 판매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이는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요구가 나타났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247p)


당연히 노동·토지·화폐는 시장에서 판매하기 위해 생산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산업생산의 요구에 따라 이들을 마치 상품으로 여기는 허구가 사회의 조직 원리가 되었다. 19세기 사회사는 이런 경향에 맞서 사회 보호의 반작용이 있는 이중적 운동 결과다. 사회는 허구상품이 초래할 재난에 맞서 스스로를 보호해야했다. 예를 들면, 노동시장의 창출을 두고 정주법, 스피넘랜드법, 구빈법 등이 엎치락뒤치락한다. 여기서 노동이동의 자유를 해소하면, 저기선 수당체제를 만든다. 수당체제를 없애고 노동시장을 만드니 곧이어 공장법이나 사회법이 제정되고 노동운동이 생겨난다. 토지의 상업화, 곡물시장의 창출 등에 맞서 토지세력은 성직자 및 군국주의 세력과 힘을 합쳐 맞선다. 금본위제가 등장하자 자본주의 국가는 중앙은행을 통해 통화정책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폴라니가 말하는 이중운동이 나타난 것이다.

 

이 이중적 운동이야말로 폴라니가 강조하는 시장경제의 유토피아적 성격과 이에 맞서는 사회 실재의 발견이 표출되는 지점이다. 시장경제가 나타난 것은 자유방임은커녕 엄청난 국가 계획에 의한 것이었지만, 시장경제에 맞선 사회의 자기 보호 운동은 아주 자발적이고 자생적으로 가타났다는 것이다.” (625p)


19세기 자기조정 시장경제를 확립하기 위해 1834년 수정구빈법, 1844년 필 은행법, 1846년 곡물법 철폐 법안 등 여러 입법들이 무수히 터져 나왔다. 자유시장체제 도입을 위해 통제, 규제, 개입의 필요와 범위가 더욱 넓어졌다. 폴라니는 이중운동에서 자유방임운동이 오히려 인위적인 활동이었으며, 그에 맞선 보호운동이야말로 자생적이라고 주장한다. 전자가 인간과 자연이 관계 맺는 사회 실체를 시장에서 사고파는 산업요소로 해체하는 과정이었다면, 후자는 이 사회 실체가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중운동의 양상은 파괴적이었다. 사회가 허구상품이라는 파괴위협에 맞서 보호행동을 하자 자기조정 시장의 작동이 망가졌다. 19세기 시장경제가 붕괴되는 조짐이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형태로 나타났다. 국내경제에서 시장이 불균형 상태에 들어서며 실업문제가 발생했다. 국내정치에서 사회 계급들 간 투쟁과 긴장이 고조되었다. 금본위제에 대한 부담이 보호주의를 추동하고 제국주의 경쟁이 심화되었다. 이런 긴장은 제1차 세계대전 곧이어 파시즘의 대두로까지 이어진다.

 

 

복합사회 속에서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 대안이다

그러나 시장경제가 붕괴로 이어질 내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그것이 실제 현실에서 어떤 형태로 드러나는 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문명 붕괴라는 논리적 필연이 역사에서는 어떤 정치적 사건들로 모습을 취했는가? 폴라니는 이렇게 답한다. “이 시장경제 몰락이라는 드라마의 마지막 단계로 오면 계급 세력들 간의 갈등이라는 것이 주인공으로서 무대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노동계급의 힘을 입어 많은 인민정부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인민정부들은 얼마못가 권력을 내려놓게 된다. 비록 내적 긴장이 터져 전쟁으로 비화하긴 했지만 여전히 자기조정 시장경제라는 신화는 살아있었다. 경제제도는 사회에서 떼어져 그 자체의 메커니즘으로 조직·운영되어야 한다. 노동자들의 요구에 따라 인민정부가 사회서비스를 개선하고 임금을 올리고 실업수당을 보장할 것인가? 아니면 통화가치를 안정시켜 금본위제를 지킬 것인가? 모든 주요 유럽 국가들은 후자를 택하게 된다.

 

“1923년 오스트리아에서, 1926년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1931년 독일에서, 각국의 노동당은 모두 통화 가치를 구출하기 위해서 권력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자이펠·프랑키·푸앵카레·욘브뤼닝 등의 국가 지도자들이 노동당을 정부에서 배제시키고, 모든 사회적 서비스를 삭감하며, 노동조합의 저항을 분쇄하려 들었다.” (551p)


통화와 재정문제를 두고 자본가와 노동자들은 양편으로 갈라져 각축을 벌이게 되었다. 자본가들은 산업을 장악하고 정부와 의회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노동자들은 그 수를 무기로 의회에 자리를 잡고 산업체제 전체에 맞섰다. 입법부와 행정부 등의 정치체제와 산업으로 대표되는 경제체제 모두 복합사회가 작동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런데 계급갈등으로 인해 정치체제와 경제체제 양쪽 모두 마비될 위협이 현실화 되었다.

 

공포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고, 사람들은 나중에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따져보지도 못한 채 그저 그러한 상태에서 벗어날 쉬운 길만 제공해준다면 어떤 이들에라도 기꺼이 지도권을 떠안겨주기에 이르렀다. 파시즘이라는 해결책이 나타날 때가 무르익은 것이다.” (562p)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산업과 정치제도의 충돌로 사회 전체가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 복합사회의 붕괴 위험에 대한 대응으로 파시즘이 등장했지만 이는 명백히 퇴행적인 성격을 띠었다. 복합사회가 위기에 처하자 파시즘이 택한 해결책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희생하여 경제제도를 살린다는 것이었다. 파시즘은 산업사회가 제공하는 여가와 물질적 안정을 통해 인간의 자유를 더욱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말살하여 산업사회가 작동하는 부품으로 전락시키고자 했다.

 

폴라니는 파시즘이 자유주의 철학의 필연적 귀결이라고 말한다. 자유주의 철학은 권력과 강제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니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사회에서 이것은 불가능한 요구다. 특히 복합사회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두 가지 뿐이다. 자유의 이상을 따라 사회 실재를 부정하든가, 아니면 사회 실재를 받아들여 자유라는 이상을 부정하든가. “전자가 자유주의자들의 결론이라면, 후자는 파시스트들의 결론이다.” 그러면 다른 길은 없는가?

 

인간은 이제 사회 실재를 받아들이면서도 자유를 창조해야한다는 새로운 과제에 맞닥뜨렸다. 폴라니는 파시즘과 사회주의를 나누는 구분선이 여기에 있다고 한다. 양자의 차이점은 경제적인 것이 아니다. 둘이 갈리는 궁극적인 지점은 자유의 문제다. 복합사회라는 현실 앞에서 체념하고 자유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든 복합사회 속에서 자유를 실현할 것인가.

 

 

감상정리

지금까지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보자.

먼저 인류역사에서 시장경제는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역사 속 여러 경제체제는 사회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상호성, 재분배, 가정경제의 원리로 움직였으며, 이는 중세이전 서유럽도 마찬가지였다. 또 인간에게 내재한 교환성향이 있어서 이것이 발현되는 결과로 시장의 범위가 점차 넓어진 것이 아니라, 지리적 조건 등에 의해 무역이 강제되고 시장이 부수적으로 형성되고 나서야 인간은 교환성향을 보였다. 국내시장도 중상주의 국가가 개입해서 형성되었고, 이것이 자기조정 시장경제가 되기 위해선 노동·토지·화폐를 상품화하는 것이 필요했다. 영국의 종획운동은 이러한 시장경제이행 과정이 얼마나 강제적이었는지 보여주는 한 가지 예시다.

 

다음으로 사회를 해체하는 허구상품에 맞서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이 일어난다. 중상주의 국가가 단일한 전국시장을 만들긴 했지만 이것은 아직 자기조정적 시장이 아니었다. 상업사회에서 대규모공장제 생산이 등장하자 생산요소인 노동·토지·화폐가 상품이 되어야했고, 이는 곧 시장경제체제의 탄생을 의미했다. 그러나 노동·토지·화폐를 상품으로 만든다는 허구상품에 맞서 사회의 자기보호 운동이 자발적으로 발생한다. 폴라니는 이것을 이중운동이라 부른다. 이중운동은 계급 간 충돌을 통해 유럽에서 파시즘의 등장으로 귀결된다.

 

파시즘은 복합사회의 붕괴위험에 대한 대응이었다. 계급 간 충돌로 정치체제와 경제체제가 마비될 지경에 이르자 파시즘은 인간의 자유를 포기하여 산업경제를 살리고자 했다. 그러나 폴라니는 복합사회 속에서도 인간이 자유를 회복하는 길을 가자고 호소한다. 사회를 해체하여 허구상품으로 전락시키는 자유주의자들의 유토피아적 자유가 아니라 사회실재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자유를 창조해야한다. 이것이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거대한 전환>은 시장경제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통념과 신화를 깨뜨린다. ‘시장은 인간본성의 자연스러운 발현이 아니다.’ ‘인류역사에서 시장경제는 찾아보기 드물었다.’ ‘시장경제는 경제법칙에 따라 저절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근대민족국가의 개입을 필요로 했다.’ ‘사회의 보호운동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공동체의 당연한 대응이다.’ ‘경제란 사회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등등. 시장경제에 대한 폴라니의 이런 주장들은 7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유효하게 들린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래서 <거대한 전환>이 고전으로 불리는구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21세기 오늘날도 폴라니가 말하는 시장경제 유토피아에서 못 벗어난 건 아닐까하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하다.

 

나아가 폴라니는 시장경제에 관한 비판적 검토를 넘어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룬다. 인간은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기적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다. 사회 실재 속에서 유기적 관계를 맺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자 운명이다. 이런 조건 속에서 인간은 자유를 추구한다. 인간은 사회를 버리고 자유만을 취하는 추상적 존재도, 자유를 버리고 영혼 없는 사회의 부속품이 될 수도 없다. 사회를 회복하며 자유를 꿈꾸는 것만이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가 될 유일한 길이다.

 

비록 책 속에서 폴라니는 마르크스주의를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으나, 나는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마르크스와 폴라니의 문제의식은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폴라니가 거부했던 것은 사회실재를 보지 못하는 경제결정론이나 계급결정론이었지 인간해방의 전망이 아니었다. 복합사회 속에서 자유를 창조하는 일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으며, 한두 명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이 과정에서 파시즘전쟁과 같은 사회 붕괴가 또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다. 사회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은 어떠해야 하는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인간에 대한 전망이다. 정치는 그러한 전망을 제시하는 장소다. 새로운 자유를 실현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정치가 절실하다. 내가 사회주의 정치가 지금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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