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서 보낸 편지들 레닌 전집 65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지음, 이정인 옮김 / 아고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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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 전집 읽기 065<먼 곳에서 보낸 편지들>

레닌 전집을 최근 다시 읽는다. 군대 가기 전에는 자주 읽었으니 꼬박 18개월 만이다.

<먼 곳에서 보낸 편지들>은 레닌 전집 065권으로 19171월부터 레닌이 러시아로 귀국하기 전까지 글을 담고 있다. 내용 정리와 평가, 시대적 배경설명 등 옮긴이 후기가 워낙 잘 되어있지만 공부한다는 차원에서 내용과 감상을 남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사회주의 진영 내 사회평화주의라는 새로운 조류와의 투쟁이 주된 내용이고 후반부는 러시아 2월 혁명에 관한 레닌의 입장이다. 중간에 젊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1905년 혁명에 대한 강연>도 있는데 꽤 흥미롭다. 여기선 사회평화주의와의 논쟁, 그리고 2월 혁명에서 자유주의적 편견에 대한 반박을 주로 살펴보고자 한다.

 

 

사회평화주의에 맞선 투쟁

19147월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이 장기화 되면서 1916년 말 유럽에서 종전 협상 가능성이 대두된다. 독일과 러시아 간 단독 강화 협상 이야기가 돌고 독일은 19161212일 연합국 측에 평화 교섭을 제안하는 외교 공문을 보낸다. 우드로 윌슨 미 대통령도 외교 공문을 통해 교전국들에게 평화 조건을 구체적으로 밝혀달라고 요청한다.

 

이런 정세는 사회주의 운동 내부에도 영향을 끼친다.

19161122일 이탈리아 사회당 원내 의원단은 정부가 유용한 교섭을 도모하라고 촉구하는 동의안을 의회에 올린다. 프랑스 사회당과 프랑스 노동총동맹은 12월에 대회를 열어 평화 결의안을 통과시킨다. 191717일에는 카우츠키 및 독일 사회민주당 일부가 평화주의 선언문을 발표한다.

 

레닌은 당시 정세를 제국주의 전쟁에서 제국주의 평화로 전환되는 시기로 규정한다. 제국주의 열강들의 평화조약은 곧 제국주의 약탈품 분배다. 제국주의 정부들은 민주적인 평화, 약소민족들의 해방, 군비 축소 등에 관한 새빨간 거짓말로 약탈품 분배라는 진실에서 인민을 기만하려 한다.

 

이런 정세에서 사회주의 내 평화주의 조류는 실천적으로 제국주의 정책과 제국주의 평화를 은폐하며, 그것들을 폭로하는 대신 미화하는 데 봉사한다고 레닌은 비판한다. 그는 부르주아 개량주의자가 아닌 진짜 사회주의자라면 진실을 은폐하는 평화주의가 아니라 제국주의적 평화의 본질을 폭로하고 이에 맞서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렇게 레닌이 사회평화주의자들의 오류를 폭로하고 논쟁하는 과정 중 몇몇 대목들은 꽤나 인상 깊다.

사회평화주의자들은 지금은 전시상황이라 정부에 반대하는 것이 합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레닌은 그런 상황은 진실을 숨기는 근거가 아니라 비합법 조직과 언론을 건설해야 할 근거라고 답한다.

 

사회평화주의자들은 개량은 혁명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제국주의적 평화라도 국제법, 국비지출 등에 일정한 개선을 가져오는 평화국면이 혁명운동 발전의 한 국면이라는 것이다. 레닌은 물론 개량이 혁명을 배제하지 않는 것은 맞지만 문제는 사회주의자들이 혁명 활동을 개량 활동으로 바꿔치기하는 점에 있다고 말한다. 사회평화주의자들은 개량의 거부냐 아니냐 하는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지만, 레닌은 성공하지 못할 경우 부산물로 개량을 낳는 혁명적 투쟁이냐, 아니면 개량과 개량의 약속에 대해 떠들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냐가 진짜 문제라고 답한다.

 

사회평화주의자들은 레닌을 비롯한 국제주의자들이 수적으로 너무 미미해서 이들의 활동이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레닌은 프랑스 사회당, 독일 사회민주당 주류들의 활동이야말로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한다고 반박한다.

 

진정한 혁명적 국제주의자들이 수적으로 미미하다? 허튼 소리 마시오! (중략) 혁명가들의 숫자는 극히 미미했습니다. 그들은 기껏해야 자기 계급의 1만분의 1, 심하게는 10만 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작은 무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수년 후, 이 작은 무리가, 이른바 미미하기 짝이 없는 소수가 대중을,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을 이끌었습니다. ? 이 소수야말로 진정으로 이들 대중의 이해를 대변했기 때문에, 다가오는 혁명을 믿었기 때문에, 혁명에 기꺼이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59p)

 

사회평화주의자는 도대체 언제, 정확히 어떤 순간에 어떤 혁명적 행동을 할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따진다. 레닌은 날짜와 성공 확률이 미리 정해진 혁명이란 결코 없다고 말한다. ‘구체적 상황에 맞게 혁명 투쟁을 이끌지 못하는 당을 어떻게 그런 투쟁이 가능한 당으로 개조시킬 것인가.’ 이것이 지금 논쟁의 핵심임에도 사회평화주의자들은 이를 얼버무리고 쟁점을 흐린다고 레닌은 비판한다.

 

 

러시아 2월 혁명

레닌은 191732일에 러시아 2월 혁명의 소식을 접한다. 레닌은 취리히에서 단편적인 정보들을 접하며 2월 혁명에 대한 입장을 내놓는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에 관한 <테제초고>, 국내 프라우다에 보내는 <먼 곳에서 보낸 편지들>이 바로 그것이다.

 

레닌의 입장을 요약하면, ‘노동자계급은 새로운 정부를 지지해서는 안 된다, 혁명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학하는 두 번째 단계로 발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소비에트의 강화 및 확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무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옮긴이 후기 중)

 

혁명에 관한 레닌의 분석과 입장은 레닌전집 066<4월 테제>을 읽고 더 정리하도록 하고, 여기선 흥미롭게 읽었던 대목하나만 소개하고자 한다. 레닌이 영국신문 더 타임스316일자 기사에서 드러난 영국기자의 각종 편견과 왜곡을 집는 내용이다. 사회주의와 혁명에 관한 부르주아 지식인의 편견은 한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를 게 없다.

 

영국기자는 (구 차르체제의) 가장 온건한 그룹이 아닌 사회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으면 러시아가 무정부 상태에 빠질 거라고 우려를 표한다. 사회주의자들은 공화국 건설을 말하지만 질서 있는 정부를 세울 능력은 없기 때문이다.

 

레닌은 (구 차르체제의) 온건한 사람들, 즉 군주제를 지지하는 소수의 자본가, 지주가 혁명시기에 권력을 잡기 위해선 이렇게 무정부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둥 질서 있는 정부가 불가능할 것 이라는 둥 인민들을 기만할 수밖에 없다고 반박한다. 노동자 공화국이 군주제보다 더욱 질서 있는 정부가 될 것이다.

 

무정부 상태를 우려하는 온갖 외침들은 전쟁과 전시 공채를 통해 이익을 챙기기를 바라며 인민에 맞서서 군주제를 부활시키고 싶어 하는 자본가들의 이기적인 이해를 감추고 있을 뿐이다. (285p)

 

영국기자는 케렌스키나 치헤이제가 사회민주당의 원론주의자들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우려를 표한다. 이 기자에게 공화국, 평화, 차르타도, 빵을 주장하는 볼셰비키들은 선동주의자, 원리주의자일 뿐이다. 레닌은 말한다. 그렇다면 왜 이들이 사회민주당 원론주의자들을 고려할 수밖에 없나? 그것은 볼셰비키가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지난날 계속해서 노동계급과 함께해서 대중적 영향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인민이 먹을 빵과 평화를 달라는 것은 선동이고, 구치코프와 밀류코프에게 장관 자리를 주는 것은 질서인 것이다. 귀에 익은 오래된 이야기 아닌가! (286p)

 

(*케렌스키는 온건 사회주의자로 임시정부 법무부 장관, 치헤이제는 멘셰비키 의원단 대표로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의장, 구치코프는 대자본가, 밀류코프는 우익정당인 입헌민주당 지도자)

 

이 외에도 두마 임시위원회는 전국을 대표하지만 소비에트는 계급 이해만 대표할 뿐이다.’ ‘두마 임시위원회의 온건한 조치덕분에 내전을 피했다.’ 등등 영국기자는 러시아 혁명에 각종 우려를 표한다.

 

레닌이 지난 몇 년간 고집스럽게 주장한 전쟁을 내전으로!’라는 슬로건은 비웃음을 받았지만 러시아에서 점점 현실로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2월 혁명은 급박하게 돌아간다. 노동자와 병사는 구 차르체제를 무너뜨렸지만 혁명의 열매는 노동자, 병사의 손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멘셰비키를 비롯한 사회주의자들이 자본가와 지주계급의 임시정부를 승인하고 권력을 넘기는데 합의한다. 사회주의자 케렌스키는 임시정부에 입각한다. 임시정부는 공화국, 8시간 노동제, 토지개혁 등에 대해선 함구한 채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다.

 

혁명의 시계가 촉박하게 재깍거린다. 레닌과 일행은 수소문 끝에 독일정부가 제공하는 밀봉열차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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