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눈뜨자마자 평소 때의 습관처럼 포털의 기사를 클릭해서 읽고 든 생각은 안타까움이었다. 그리고 이거 큰 일 났구나, 생각했다. 내가 신경숙이라면 분명 수치스럽고 전정긍긍하는 마음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친구 제이는 댓글 같은 것은 읽을 것이 못 되잖아, 라고 말하지만 나는 댓글들을 읽으면서 사람들의 분노가 마땅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두려웠다. 이 얼굴 없는 분노가 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해왔기 때문이리라.

 

지인들과도 신경숙 표절에 대한 이야기가 카카오톡 메시지로, 문자 메시지로 오갔다. 번역을 하는 친구 제이는 오래 전부터 제기된 문제라는데 왜 이제서야 불거진 거야, 라고 물었다. 나는 항간에서 떠도는 신경숙 논란을 얼핏 들은 적도 있었지만 이렇게 공론화되지 않은 것은 아무래도 문단의 영향이 클 거야, 라고 답했다. 문단에서는 대형 신인의 탄생을 예감했었고 그 신인을 키워주고 싶었을 것이라고. 어디까지나, 몇 년 동안 습작하면서 문단 가장의 가장의 가장을 기웃거리면서 나름으로 짐작한 감에 의지해서 답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기껐해야 신문이나 문예지를 통해서였으니까, 문단 내에서만 잠시 논란이 되고 무력하게 소비된 다음 일반 대중에까지 파급력이 미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때 신경숙은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작가가 아니라 그저 단행본 몇 권을 낸 신인이었다.

 

모국어의 사용에 민감한 일을 하는 한 지인도 이번 사태에 분노하였다. 내가 조심스럽게 최악의 사태를 예상했는데, 지인이 생각한 최악의 사태란 다시금 문단이 침묵하고 이번 일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사태는 한 작가의 죽음, 이었다. 상징적인 죽음일 수도 있고 글쎄, 모르겠다. 나라면 너무 수치스러워서 앞으로 살 수 있을까, 란 생각마저 잠시 했다(이건 내가 너무 나약한 게 맞겠지만). 그러니까 난 딴에는 습작생이라고 신경숙 작가에 한껏 몰입하여 이 사태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이때만 해도 창비의 1차 공식 입장과 신경숙의 부인 기사를 읽지 않았을 때였다. 먼저 이응준이 '히핑턴포스트코리아'에 올리 글을 찬찬히 읽고 난 다음에 창비와 신경숙의 입장을 읽었는데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너무 안일해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한두 문장이라면 모를까, 문단 통째가 흐름이 유사하면서 단어들이 겹친다는 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절대 두둔할 일이 못되어 보였다. 거기다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보다 신경숙의 작품이 더 우월하다는 견해라니, 정말 헛웃음이 나왔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었다. 

 

소설을 공부하는 곳에서 만난 다른 지인은 왜 하필 이제서야 이렇게 사태를 크게 만드는 것인가, 라고 또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지만, 자신을 문학 문외한이라고 평가하는 남편은 이응준의 문제제기가 타당하고 게다가 십오 년 전부터 불거졌던 문제라면 이제라도, 그리고 이제야말로 '정리'되어야 하는 일인 게 맞다고 평가했다. 지인이나 남편이 말하는 '이제'라는 시점은 아마도 신경숙 작가가 맨아시아 상을 수상하는 등 대외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된 시점을 일컫는 듯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그녀의 글들을 읽었다. 세계 피켜 스케이팅의 여왕이라고 일컬어지는 김연아를 동경하며 피켜 스케이팅을 시작한 이들을 '연아 키즈'라고 부르듯이 나는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의 많은 시간들을 신경숙의 글을 읽으며 보냈다. 문학도의 길을 꿈꾸었고 관련 학과에 진학했던 나는 어쩌면 '신경숙 키즈'라고 불릴 만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신경숙의 글을 읽으며 모국어로 이루어진 '미문'에 눈 떴으니까.

 

어찌보면 소설을 쓰고자 하는 습작생에게 '미문'에 집착하는 게,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시작 단추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삼십대가 넘으면서부터였다. 그동안 신경숙은 문단뿐만이 아니라 대중에게도 그리고 세계에서도 나름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그녀의 신간들을 띄엄띄엄 챙겨보기 시작하였으며 결정적으로는『 어디선가 나를 찾는 벨이 울리고』를 읽고 마지막으로 그녀와 완전히 결별하자고 생각했다. 신경숙의 작품을 폄하하는 게 아니다. 그냥 나의 세계관이 십대, 이십대와는 사뭇 달라졋다고만 해두자.

 

첫 번째 지인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내가 말한 것은, 나 또한 쉽게 버리지 못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탐욕'이었다. 미시마 유키오의 문장이나 루이제 린저의 문장이나 미루야마 겐지의 문장들, 그러한 미문을 처음 대했을 때의 압도됨을 쉽사리 포기하지 못해서 이 사단이 벌어진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짐작할 뿐이라고 말했다.

 

신경숙 표절에 대한 기사를 처음 읽었을 때 문득 떠오른 말이 있다. 계간지 『문학동네(2010년 가을호)』의 2010년 문학동네신인상 소설 부문 심사평에서 윤성희가 한 말이다. "물론 소설가는 다른 소설가를 흉내내면서 완성된다. 소설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에서 모든 것을 훔쳐올 수 있다. 하지만 절대 훔쳐와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문체이다."라고.

 

신경숙이 자신이 사랑했던 작가들에게서 훔쳐왔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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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산책자 2015-06-19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빨리 그녀가 대중 앞에 입장을 드러내고 `정리`를 한 다음, 문학 앞에 한 점 부끄럼 없는 귀한 작가로 거듭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