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이런 달밤에 누군가 버린 쇼파 위에서 새끼 고양이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어미 고양이를 보았다고 했다. 참으로 신비스러운 광경이었다고. 그는 길고양이와 여행에 관해 글을 쓰는 사람이 된 모양이었다.

 

깊은 밤, 거실의 커튼을 열어보았더니 우리 마당의 쇼파만큼 널찍한 바위에 노랑이 한 마리가 달빛을 받고 앉아 있었다. 여러 마리의 새끼에게 젖을 물려도 될 만한 넓고 아늑한 바위였다. 남편과 나는 커튼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속삭였다. 어쩌면 그 어미 고양이일지도 몰라. 

 

우리는 작은 방의 박스 안에서 조용히 자고 있었던-지난밤과 달리 조용히 자고 있었던-고양이들을 박스채 마당에 가져다 내놓았다. 어미면 알아보겠지.

 

하지만 사람의 기척 탓인지 우리가 다시 거실로 들어와서 마당을 살펴보았을 때 노랑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다시 박스를 들여왔고 현관에서 잠시 새끼 고양이 세 마리의 자는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입을 조금 벌리고 자고 있었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아 아직 뜨지 못한 눈은 여전히 감긴 채였다. 어제와 달리 입을 조금 벌리고 늘어져 자는 모습이 세상 그 무엇과 비견할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나와 남편은 감탄하며 가만가만 새끼 고양이들이 깨지 않도록 다시 박스를 작은 방에 가져다 놓았다. 어미 고양이가 아닌가봐. 어미 고양이는 아까 노랑이보다 더 흐리고 옅었어. 얼굴도 더 미묘였고. 내가 말했다.

 

남편이 양파와 마늘 등을 저장해 놓는 컨테이너 창고와 바깥 길과 연결되는 작은 통로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시작되는 구멍을 무거운 돌로 막았을 때, 다음날 남편을 원망하는 눈으로 쳐다보며 길가에 앉아 있었던 노랑이를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남편이 통로를 차단할 거란 말을 들었을 때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 동네 고양이들한테 먹을 것도 잘 주고 야박하게 굴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그저 평소답지 않게 왜 그래, 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런 사람이라면 타당한 이유가 있겠지. 그곳을 집으로 삼는 건 안돼. 우리가 먹을 것을 저장하는 곳인데 고양이 털로 오염되면 안 되잖아. 의식주 중에 먹는 것을 제일로 치는 사람이라 딱히 반대할 수 없었다. 노랑이가 쉽게 다른 쉴 곳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긴 도시가 아니고 빈 집도 제법 있으니까.

 

구멍을 막은 날 밤에 비가 왔다. 우리집 고양이는 새벽까지 거실 커튼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울곤 했다. 나는 잠결에 말했다. 밖에 고양이가 있나봐. 우리집 고양이가 저렇게 우는 걸 보면. 그렇게 말하면서도 잠에 취해 나가서 확인하지는 않았다. 그 노랑이가 울고 있을 거란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다음날 남편은 수레 위에 올려 있던 기다란 박스 모퉁이에 정말 주먹만 한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새끼를 낳았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어미 노랑이는 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다시 오지 않는 것 같았다. 부랴부랴 어미 먹으라고 사료도 물도 한가득 떠놓았지만 전혀 줄지 않았고 구멍에 작은 표시를 해놓았는데 지나다닌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남편은 다시 부랴부랴 속초까지 가서 동물병원에서 새끼 고양이들 먹일 분유를 사왔다. 올해 들어 이렇게 얼빠진 하루를 보낸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우리는 새끼 고양이들에게 분유를 먹였다. 인형 장난감처럼 보이는 작은 우유병으로. 새끼 고양이들은 잘 먹지 않았다. 새벽이면 어미를 찾는 건지 아픈 건지 빼 빼 하고 울었다.

 

 

 

달빛 아래 노랑이를 본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새끼 고양이들이 이상한 것을 그제서야 눈치챘다. 간밤에 입을 벌리고 새근새근 잔다고 생각했던 것부터가 착각이었다. 그것은 죽음의 징조였다. 새끼 고양이들의 늘어진 몸은 힘이 없었다. 가까스로 먹였다고 생각한 분유도 삼키지 못하고 다시 코로 입으로 나왔다. 가장 몸집이 컸고 힘있게 우유병을 빨았던 새끼 고양이가 가장 늦게 숨을 멈췄다. 태어나서 뜨지 못했던 눈은 여전히 뜨지 못한 채였다. 나는 한 시간 뒤 상자를 다시 확인했다. 나란히 놓았던 고양이들을 만져보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빨리 딱딱해지는구나. 죽으면 이렇게나 빨리. 그렇게나 보드랍고 말랑거렸는데 거짓말처럼. 남편이 말했다. 어젯밤 그 노랑인 저승사자였던 거야.

 

남편은 그래서 올해 들어 두 번째 얼빠진 하루를 보냈다. 우리는 어렸을 때 혹은 아직 철이 들지 않았을 때 우연히 얻게 된 고양이들이 어떻게 죽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때 우리는 부주의했고 고양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남편이 세 마리, 내가 한 마리, 그리고 다시 세 마리였다. 초등학교 때 뭣 모르고 귀엽다고 오백원에 한 마리씩 사와 얼마 키우지도 못하고 죽었던 병아리도 생각났다. 남편은 몇 번이고 말했다. 나는 고양이와 맞지 않아. 나도 몇 번이고 말했다. 왜 그런 말을 해. 우리 고양이는 저렇게 잘 자라고 있는데. 나는 다리와 꼬리가 길고 늘씬한 우리집 고양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남편은 또 몇 번이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은 오해 때문에 비롯됐어. 새끼를 낳은 줄 알았다면 난 절대 그 구멍을 막지 않았을 거야.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과 나는 면사무소에 혼인신고를 하고 돌아와서 새끼 고양이들을 묻었다. 죽으면 다 무슨 소용이야. 남편이 말했지만 나는 아껴두었던 포장지를 꺼내 여기에 싸서 묻자고 했다. 난 아낌없이 다 쓸 요량으로 꺼내놓았지만 남편은 조금만 가위로 오려내었다. 새끼 고양이들은 그만큼 작았다. 이제 작고 딱딱했고 태어나서 뜨지 못한 눈은 여전히 감긴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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