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같은 1년이다.

세월의 빠름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1년이란 시간 동안 '우리'가 실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데서 '거짓말 같은'이란 탄식이 나오고야 만다.

 

며칠 전에 <The Missing>이란 영드를 보았다. 8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드라마. 휴즈 부부가 프랑스에 휴가를 와서 아들을 잃어버린다. 아들을 잃기 전에 그들은 예기치 않은 자동차의 고장으로 작은 시골 마을에 머물게 되고, 전 세계를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어버린 월드컵(2006)의 열기 속에서 아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더군다나 의사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는 이국 땅에서.

 

드라마는 그로부터 8년이 지나 시작된다. 토니 휴즈는 아들 올리버의 실종에 관한 단서를 갖고 다시 그곳을 찾는다. 작고 폐쇄적인 시골 마을. 8년이 지났지만 그다지 변한 게 없다. 다만, 그에게 질렸다는 듯이 구는 사람들에게서 토니 휴즈가 그간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짐작할 따름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를 도와주는 사람들도 많다. 이를테면 8년 전, 올리버의 실종 사건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경사 줄리앙이 그렇다. 또 따뜻하고 넉넉한 미소로 토니를 맞으며 얼마든지 머물고 싶은 대로 머물라며 기꺼이 호텔방을 무료로 내어주는 실비가 그렇다.

 

토니와 줄리앙은 올리버에 대한 단서들을 모은다. 현재의 일이 진행되면서 과거의 일들이 교차편집되는데, 토니의 아내였던 에밀리는 토니와 끝내 결별했다. 그리고 당시 그들을 돕기 위해 영국에서 파견된 형사와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올리버가 실종된 밤부터 토니의 인생은 줄곧 부서져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인 에밀리조차 곁에 오지 못하도록 밀어내면서. 아들을 잃어버린 데 자신의 책임이 없지 않다는 죄책감도 컸으리라.

 

우여곡절 끝에 토니와 줄리앙은 올리버에 대한 진실을 알아낸다. 진실을 듣기 위해서 에밀리도 며칠을 그들과 동행하며 그간 토니와 있었던 앙금과 오해를 풀기도 한다. 진실을 듣기 위해 온 토니와 에밀리는 이제 한 마음이다. 그들의 바람은 소박하지만 절박하다. 올리버가 살아 있으리란 희망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다만 올리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고 싶을 뿐이다.

 

줄리앙은 토니를 역에 바려다주면서 (정확하지 않지만) 이런 말을 한다. "이제 집에 가서 좀 쉬지 그러나." 그러자 토니가 어떤 집을 말하는 건가요, 라고 묻는다. 줄리앙이 답한다. "집이란 건 단지 물리적인 공간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야. 자네가 혼자라는 생각을 멈출 수 있을 만한 곳을 말하는 거지."

 

재수사가 매듭되고 에밀리는 마크와 조촐한 결혼식을 올린다. 에밀리는 잔을 들고 이런 연설을 한다. 정말 끔찍하고 힘든 일이 일어났었지만 우리를 도와주고 배려해주었던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씨와 친절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에밀리는 이를테면 삶의 단절을 이뤄낸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매일 처방받은 약을 먹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무기력했고 절망스러웠던 과거의 날을 뒤로 한 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 곁에 있는 사람들의 밝은 미소를 바라보면서 인생의 도타운 순간을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

 

그러나 토니는 그렇지 않았다. 8년 동안의 시간이 그러했듯이 그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올리버의 시신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는 봉두난발을 한 채로 그의 삶 모든 것이 파괴된 채로 세상을 유령처럼 떠돈다. 

 

아이 잃은 부모는 이름이 없다. 고아, 과부, 홀아비 등과 달리. 아마도 언어로 담기 힘든 차마 담을 수 없는 거대한 슬픔과 아픔이 존재한다는 반증이 아닐까.

 

세월호 유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다. 토니와 에밀리가 8년 동안 한결같이 찾아 헤매던 것. 잃어버린 자식에 대한 진실이다. 왜 자식을 잃을 수밖에 없었는지, 자신이 지켜주지 못했던 자식의 마지막 순간이 어떠했는지.

 

우리는, 에밀리로 하여금 가까스로 삶의 한발짝을 뗄 수 있게 만들었던 응원과 힘을 보태주어야 한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들이 '진정한 집'에 있다고 여길 수 있도록. 토니처럼 유령이 되어 정처없이 떠돌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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