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관찰」: 『계몽의 변증법』, '스케치와 구상들' 중에서


40대에 사람들은 보통 기이한 경험을 한다. 그들은 함께 자라왔고 지금도 접촉을 유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지금까지 그들이 유지해오던 습관이나 의식에 교란이 일어나고 있음을 발견한다. 어떤 사람은 도대체 일을 돌보지 않아 사업을 망치고, 어떤 사람은 부인에게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혼을 하고, 어떤 사람은 돈을 횡령하기도 한다. 다른 어떤 사람들은 결정적인 사건을 저지르지는 않아도 '분해'의 조짐을 보인다. 그들과의 대화는 피상적이 되고 겉돌거나 쓸데없는 허풍이 된다. 예전에는 나이 든 사람들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극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이제는 자신만이 대상에 대한 자발적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느낀다.

처음에는 동년배의 이러한 변화를 바람직하지 못한 우연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보인다. 바로 다른 사람들이 좋지 않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마 이러한 변화는 그의 세대나 그 세대가 처한 특수한 외적 운명과 관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이러한 경험이 자신에게도 별로 낯설지 않은 경험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며 다른 각도, 즉 세대간의 갈등이라는 각도에서 보게 된다. 그도 예전에는 선생님들이나 아주머니, 부모의 친구들, 나중에는 대학의 교수나 직장의 상사에게 문제가 있다고 확신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우스꽝스럽거나 살짝 돈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아니면 그들의 현재 상황이 너무 삭막하거나 거북살스럽거나 실망스러웠다.

그 당시 그는 별 생각 없이 나이 든 사람의 열등함을 자연스러운 사실로 받아들였다. 이제 그는 그 사실을 스스로 확인하게 된다. 한창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여건 속에서 지적이든 기술적이든 일정한 숙련도를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생존을 이끌어나가는 것만으로도 치매 현상을 일으키려 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인물도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젊은 날의 희망을 배반하고 세계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겪는 때 이른 부패의 형벌처럼 보인다.  

 

 

좋아하는 글. 정말 40대가 되어 읽는 이 글은 어떠할지 궁금하다. 발터 벤야민의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을 읽는 것만큼이나 『계몽의 변증법』 뒤에 실린 '스케치와 구상들'을 읽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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