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작가가 쓴 소설 작법이나 독서에 관한 책(나는 헤럴드 블룸과 프랜신 프로즈 책에서 플래너리 오코너를 눈여겨 보았었다)에서 꾸준히 언급되는 작가 중의 한 명인데, 이제야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도착했다. 제임스 설터가 몇 년 전에 그러했듯이. 

 

작년에 문학수첩에서 낸 선집에는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강」, 「당신이 구하는 생명은 당신 자신의 것인지도 모른다」, 「뜻밖의 재산」, 「성령이 깃든 사원」, 「검둥이 인형」, 「불 속의 원」, 「적과의 뒤늦은 조우」, 「선한 시골 사람들」, 「망명자」, 총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아쉬운 점은 작품들이 몇 년도에 발표되었는지는 책 맨 앞장에 밝힌 저작권으로 짐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작가 소개나 작품 소개도 책날개와 띠지에 간략히 나와 있는 게 전부다(연보가 없다).

 

플래너리 오코너는, 우리나라 작가로 치면 편혜영 작가의 초기 작들은 저리 가라할 정도로 '잔혹 도덕극'을 일삼는다. 수록된 10편을 대충 상기해보자면 살인, 절도와 배신, 결코 원치 않았던 임신, 이제껏 삶을 지탱해왔던 자부심의 붕괴, 방화,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덮쳐버린 죽음, 내적 파멸과 소진으로 끝이 난다. 학문이든 냉소든 죽은 남편의 말이든 종교적 계율이든 자신만의 철칙과 고집이든 끊임없이 반복하고 단련하며 삶을 유지하게 해주었던 것들 너머로부터의 습격이 일순간에 작품 속 인물들을 삼켜버리고 죽여버리고 무너뜨려버린다.

 

이를테면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같은 경우,  전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자동차 사고가 일어나고, 사고가 일어난 후에 아이들이 풀짝 풀짝 뛰며 "우리 사고 났다!"라고 외치고는 (실망한 듯이)"근데 아무도 안 죽었네."라고 말할 때부터 나는 작가의 비범함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소설 첫 문단에서부터 대놓고 등장하여 설마 나타날까 싶었던 탈옥범이 진짜로 나타나서 거침없이, 어느 정도는 예상과 부합하면서 또 전혀 다르게 전개되는 것을 보고는 더욱 놀랐다. 와. 정말 잘 쓰는구나, 이 작가, 라고 입을 쩍 벌리는 수밖에. 입만 벌려졌나, 두개골도 쩍 벌어지는 느낌이었다.

 

​오코너는 미국 조지아 주에서 태어나 아일랜드계 가톨릭 가문에서 자랐다. 얼마 안 되는-그 당시 남부는 신교가 득세했다-카톨릭교도였던 플래너리 오코너는 교리에 정통했고, 작품마다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

 

다시,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미스핏이 할머니를 총으로 쏜 후에 "누가 1분에 한 번씩 총으로 쏴주었더라면 평생 좋은 여자로 살았을 텐데."라고 말하는 대목은 사뭇 의미심장하다. 그건 마치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너희들의 진짜를 가리고 있는 껍데기가 얼마나 단단한지, 알량한 충격 갖고는 어림없을 테지. 뚫어버리기 위해선 삶을 끝내는 총소리처럼 충격적인 그 무엇이어야 하지. 이 이야기가 너희들의 잘난 껍데기, 허위의식을 유감없이 드러내버린다면 좋겠는데.

 

이에 대해서 헤럴드 블룸은 『독서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선한 시골 사람들」에서 스스로를 헐가라 부르는 조이의 목발이 젊은 성격책 세일즈맨의 간교에 의해 뺏기는 마지막 장면에 주목하며 "우리는 잔인하리만큼 재미있는 그녀의 운명으로부터 교훈을 도출해 낼 수 있다. "그녀의 일생 동안 1분마다 그녀를 유혹하여 그녀의 목발과 함께 달아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그녀는 훌륭한 여인이 되지 않았을까?""라고. 헤럴드 블룸은 자신의 저서를 통해 플래너리 오코너를 읽는 훌륭한 독법까지 제시한다. "내 생각에 그녀의 단편소설을 읽는 최선의 방법은 자신이 그녀의 저주받은 무리의 일원이라는 것을 인정한 뒤, 거기서부터 출발하여 그녀의 기괴하고 잊을 수 없는 이야기 솜씨를 즐기는 것이다. (...) 오코너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은 위선적이고 따분한 노파와, 오코너가 보기에 가톨릭 신의 은총의 도구인 살인자이다. 이 설정의 의도는 독자에게 충격을 주는 것이며, 실제로 그러하다. 왜냐하면 저주받은 무리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이러한 설정에 충격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사는 동안 1분마다 우리에게 총을 쏘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이 오코너의 생각이다. 오코너의 명백한 의도에 우리는 왜 화를 내지 않는가? 그녀가 지닌 희극적 재능이 분명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의 일부이다. 그 정도로 완전히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라면 거의 자기 마음대로 우리를 저주해도 괜찮다."

한편 작법 면에서, 해와 달, 하늘, 나무, 강, 그리고 인물의 눈동자를 비롯한 외양을 묘사하는 작가의 탁월한 실력도 눈여겨볼 만했다. 작품마다 빠짐없이 자연 경관과 인물에 대한 사실적 묘사가 등장하는데, 마치 하루에 한 편씩 그런 것들에 대한 묘사를 써내라는 교사 아래서 혹독한 훈련을 받은 것처럼 창의적이고 변화무쌍했다. 그리고 흥미로웠던 사실은 우리의 상식을 뒤집는 인물 설정이 많았다는 거다. '좋은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표제작의 이름처럼 작품들에서 현명하고 지혜로운 노인을 찾기 힘들었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라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수록된 10편 모두는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쓰였다.

마지막으로 작년에 문학수첩보다 몇 달 늦게 플래너리 오코너 선집을 펴낸 현대문학의 책이 있어서, 두 판본을 비교해보았다.  번역에는 그다지 차이가 없어 보인다. 플래너리 오코너가 문장을 교묘하게 쓰거나 수식이 찬란한 작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현대문학 판본에 딸려 있는 친절하고 성실한 역자 해설과 작가 연보를 들춰보며 대체 문학수첩은 왜 이런 과정을 과감히 생략한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문학수첩 띠지에는 '고딕문학의 거장 플래너리 오코너 대표작 국내최초 출간!'이라고 거창하게 적혀 있다. 국내최초 출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나치게 서두른 탓일까, 고딕문학의 거장을 국내 독자들에게 처음으로 소개하는 데 응당 뒤따랐어야 할 것들이 없어서 황당했다. 저자에 대한 소개도 아주 간략하게 책날개의 한면에만 할애했다. 독자는 이렇게 재능 있는 작가의 인생에 대해 최소한 책날개의 한면보다 많이, 알고 싶어할 것이다. 편집부 측에서 인터넷이 광범위하게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는 독자들의 검색 실력을 지나치게 맹신한 것은 아닌지. 그러나 막상 '고딕문학'이라고 검색해보았자 플래너리 오코너의 작품 세계와 정확하게 부합하는 지식을 찾기란 어렵다. 그런 면에서 문학수첩 편집부는 무척 안이했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고딕문학'이라고 쓴 것조차 부정확했다.

 

현대문학 판본의 '옮긴이의 말'에 나오는 대로 '남부 고딕 Southern Gothic'이라고 했어야 했다. 현대문학 '옮긴이의 말'에 나오는 설명을 옮기면 이러하다. "오코너의 남부는 '남부 고딕'이라는 문학 장르와도 연관된다. 윌리엄 포크너, 테네시 윌리엄스 등을 주요 작가로 꼽는 남부 고딕 문학은 주로 심각한 결함이나 뒤틀린 성품을 지닌 인물들이 나와서 쇠락하고 기괴한 상황을 배경으로 격렬한 사건을 일으킨다. 여기에 남부의 복잡한 사회적 문제들이 결합된다. 오코너의 작품 역시 이런 남부 고딕 소설들의 특징을 공유한다."

 

현대문학에는 30편이 수록되어 있고 문학수첩에는 10편이 수록되어 있다.  현대문학에는 문학수첩에 수록된 9편이 포함되어 있다. 헤럴드 블룸이 그녀의 단편 중에 탁월한 작품으로 꼽는 「숲의 전망」과 「파커의 등」도 현대문학 선집에는 수록되어 있다. 문학수첩에는 없지만 현대문학에 수록되어 있는 놀랄 만한 단편으로는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정말 「숲의 전망」,「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를 읽으면서 또 한 번 이 작가의 놀라운 재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원문 : https://pegasus.cc.ucf.edu/~surette/goodma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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