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의 비밀 창비 노랫말 그림책
루시드 폴 지음, 김동수 그림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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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의비밀 #루시드폴 글 #김동수 그림 #창비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루시드폴 『문수의 비밀』

아기자기하고 경쾌한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만드는 루시드폴의 '문수의 비밀'이 그림책으로 나왔다. 아름다운 우리말로 표현된 한국 대중가요의 가사를 그림책으로 펴내는 '창비 노랫말 그림책'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이다. 시인들이 뽑은 노랫말이 아름다운 뮤지션 루시드폴의 노래에 나오는 문수가 그림책 속으로 들어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노래를 그림책으로 볼 수 있다니 근사하다.

『문수의 비밀』은 2009년에 발매된 루시드폴 4집 앨범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에 수록된 곡이다. ‘반려동물은 혼자 있을 때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반려동물의 눈에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질문에서 강아지 ‘문수'가 들려주는 문수의 하루를 담은 노래가 만들어졌다. 뮤지션이자 농부, 작가이자 번역가 그리고 반려견 문수와 보현의 아빠 루시드폴의 재미있는 가사와 김동수 작가의 그림이 만났다. 김동수 작가는 문수의 비밀스러운 일상을 맑고 선명한 색감으로 그려냈다.

☆하지만 나의 첫사랑
아빠는 나의 큰 우주
아빠는 하나뿐인 사랑스러운 애인

아빠는 알지 못하는 문수의 비밀은 하나가 아니다. 아빠가 없을 때 문수는 하는 일이 많다. 문수는 혼자서 티브이도 보고 한글도 읽을 수 있다. 노트북으로 이메일도 만들고 메신저도 할 줄 안다. 옆집 대한이 형처럼 멋진 강아지가 되려고 1일 1팩으로 자기 관리도 꾸준하다. 자신의 밥은 적게 주면서 친구들과 치킨, 족발, 탕수육을 먹는 아빠가 얄밉기도 하지만, 문수에게 아빠는 첫사랑이고 큰 우주이며 하나뿐인 사랑스러운 애인이다. 서로의 손을 잡고 있으면 푸른 바다에 몸을 맡긴 채 떠다닐 수도 있다.

☆아빠랑 함께 걸으면 너무 좋아
하지만 여자 친구 생길 때
여자 친구 생길 때까지
아빠가 좋아

책장을 넘길수록 문수의 시선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문수와 아빠는 서로를 마주 보고 곁에 머물며 단단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은 김동수 작가의 섬세한 묘사와 따뜻한 색감이 더해져 생생하게 살아난다. 노랫말에서 확장된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다정하게 다가온다. 흥얼거리던 노랫말을 새롭게 발견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빠 몰래 파인애플을 먹는 '문수'가 나오는 장면에서 누렁이가 떠올랐다. 잘 익은 밤이 후드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계절, 산 아래에 외따로 떨어진 집이라 진돗개 한 마리를 키웠다. 막냇동생이 누렁이가 개집 주변에 떨어지는 밤을 먹는다고 했다. 가족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웃고 넘겼는데. 동생은 자기가 직접 봤다며 영상을 찍어서 보여줬다. 밤 한 톨을 앞발로 잡고 딱딱한 껍질을 벗겨내 오도독 씹어먹는 누렁이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빠 몰래 문수가 만든 SNS 계정은 아이디어가 정말 참신하다고 느꼈다. 반려인이 없는 집에서 생각지 못한 일들을 하는 활발한 모습이 사랑스럽다. 존재만으로 사랑스럽고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반려동물과의 추억. 문수의 시선으로 바라본 일상은 문수를 향한 아빠의 애정으로 채워져 있다. 책 곳곳에 햇살처럼 스며든 추억을 함께하며 같은 공간에서 일상을 나누는 소중한 이들이 떠올라 미소 짓게 한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책을 선물해주신 @changbi_insta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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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 다이어리 - 어느 애주가의 맨정신 체험기
클레어 풀리 지음, 허진 옮김 / 복복서가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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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말 못할 이야기
#금주다이어리 #클레어풀리 #복복서가 #새로운나

☆나 자신이 싫다.
무언가는 바뀌어야 한다. _p.13 0일째

모두가 무언가를 결심하는 1월이다. 오늘이 마지막이고, 내일부터 시작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 같지 않은가. 내일부터 다이어트 시작이라든지, 영어 공부를, 운동을. 모든 나쁜 습관은 익숙한 생각과 달콤한 속삭임으로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다. 희망찬 새해 결심은 빛을 보지 못하고 공허한 외침으로 사라지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나 자신에게조차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자꾸만 도망가는 이에게는 현명한 친구가 필요하다.

『금주 다이어리』의 저자 클레어 풀리는 아이들과 기억에 남는 시간을 함께하려고 일을 포기하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축하가 아닌 해방을 위해 마시는 술이 점차 늘어날수록 숙취와 자신을 잃은 듯한 기분에 시달린다. "더이상 나빠질 수 없다." "이제 멈춰야 한다." 클레어는 마음이 외치는 소리에 변화의 필요성을 깨닫고 술 없는 삶을 위해 머릿속 와인 마녀와의 결별을 선언한다. 지독한 숙취에서 깨어나 새로운 결심을 실행으로 옮긴다.

☆어떤 와인도 맨정신만큼 맛이 좋지는 않다.
_p.138 93일째 잡동사니 정리하기

저자는 중독에서 빠져나오는 투쟁과 회복의 과정을 솔직하고 유쾌하게 그려냈다. 블로그 '엄마는 남몰래 술을 마셨다'에 '엄마는 맨정신'이라는 뜻의 닉네임 '소버마미'로 활동하며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말 못할 이야기를 온 세상에 들려준다.

이미지 떠올리기, 청소와 다림질, 정리 정돈, 정원 가꾸기, 분류, 버리기에 열중하며 '나는 누구지? 누구였지?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어디로 가고 있지?' 같은 의문과 끊임없이 씨름한다. 행복한 분홍 구름이 흩어지고 벽이 드러나는 때를 지나 금주 블로그를 통해 만난 동료 여행자들과 더불어 계속 나아간다. 지름길은 없다는 중요한 사실을 배우고, 와인 마녀의 입을 닫게 하는 방법은 술을 마시지 않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술 한 잔은 절대 한 잔이 아님을, 절대 한 잔으로 끝나지 않음을 되새긴다.

☆이제 나는 고치에서 천천히, 천천히 기어나오는 나비가 된 기분이다. 나는 더이상 투명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
_p.189 128일째 거울과 사진

술을 마시느라 잊고 있던 기분을 바꿔주는 훨씬 더 흥미롭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 와인에 대한 갈망을 돌쟁이의 투정으로 생각하고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이야기한다. 갈망이 보내는 경고신호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내 예방책과 비상 대책을 마련하고 삶을 느긋하게 즐기는 법도 알려준다.

☆제일 좋은 것은 공짜인 동시에 돈으로 살 수 없을 만큼 귀중하다.
게다가 맨정신으로 즐길 수 있다.
_p.209 152일째 짐 싸기와 유대감

"삶에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 마음에 드는 것보다 좋은 일은 별로 없다." 독서와 블로그 활동이 온전히 집중해서 시간을 잊는 마음챙김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삶이 변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나아가려면 삶을 생생하게 겪어야 한다.
성공과 실패를 모두 마주하고 그 둘을 똑같이 대해야 한다.
_p.233 174일째 돌고래

클레어가 읽은 음주에 관한 회고록의 저자들은 대부분 술을 마시면서 성장이 멈추었다고 설명한다. 술에 중독되면 자신을 잃고 서서히 죽어간다고. "환호성을 지르지 않기에는 삶이 너무나 짧다."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으리라." 자주 미소 지으며 잃어버린 생의 에너지를 서서히 회복한다. 저자의 머리 위에 떠 있던 먹구름이 걷히고 에너지를 나눠주는 사람으로 변화한다. 알코올 의존에서 벗어나 순간에 집중하는 삶의 평화를 경험한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해주는 이렇게 놀라운 말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나는 감히 표현도 할 수 없다.
_p.313 235일째 MRI

나쁜 친구인 알코올과의 이별 이야기는 저자가 유방암 진단을 받으며 새로운 깨달음을 전한다. '두려움보다 강한 것은 희망뿐이다.'라고. 이런 상황에서 클레어가 긍정적일 수 있었던 건 술을 끊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다른 사람을 돕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0일째에서 출발한 클레어의 여정은 365일째가 되어 목적지에 닿는다. 가득 찬 와인잔이 서서히 줄어들어 빈 잔이 되었다. 아무것도 쓰지 않은 깨끗한 종이를 다시 받은 클레어, 이제 두번째 기회는 절대 망치지 않을 것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금주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무엇이든 바꿀 수 있는 용기가 솟아난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변화를 응원하는 책을 선물해주신 @bokbokseoga_publishing 감사합니다. @munhakdong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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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안녕 - 박준 시 그림책
박준 지음, 김한나 그림 / 난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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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안녕 #박준 #김한나 #난다 #신난다

☆볼 수 없지만 그릴 수 있다는 듯이

"안녕, 안녕은 처음 하는 말이야.
안녕, 안녕은 처음 아는 말이야."

새해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참 빠르다. 아직 보내지 못한 순간이 남아 마음이 조금 답답하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듯이, 잘 보내야 또 다른 만남을 준비할 수도 있으니깐.

박준 시인의 시와 김한나 작가의 그림이 만나 따듯한 시 그림책을 펼쳤다. 『우리는 안녕』은 박준 시인의 아버지와 함께 사는 개 '단비'의 이야기를 담았다. 언어로 그리는 그림인 시를 따라 흩어지는 순간을 모아 한 장면의 그림으로 표현했다.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우리가_함께_장마를_볼_수도_있겠습니다』에 수록된 시 「단비」와 작가의 말을 읽고 보면 더 깊이 빠져드는 시 그림책이다.

"한번 눈으로 본 것들은 언제라도 다시 그려낼 수 있어.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리는 것을 그리움이라고 하는 거야."

단비에게 날아온 잿빛과 푸른빛의 깃털을 가진 새. 단비와 새는 함께한 시간이 쌓일수록 점점 더 가까워진다. 친구가 생기는 건 새로운 세상에 눈뜨는 일이다. 상대의 세상을 공유하고 귀 기울이며 서로의 세상을 보듬어주는 과정이다.

누군가 곁에 머무는 마음은 벽을 뛰어넘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언제라도 다시 그려낼 수 있는 이가 생기면 마음에 꽃이 피어난다. 눈을 감아도 어둠 속에 빛나는 별처럼. 캄캄했던 눈앞이 환해지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세상을 꿈꾸게 한다.

“만나지 못한 이를 그리워할 때, 눈은 먼 곳으로 가닿습니다.
보고 싶은 이를 보고 싶어할 때, 마음은 가까이 있고요.”

안녕은 만남과 헤어짐의 순간을 함께 담은 말이다. 단비와 새가 안녕을 말하며 만나, 안녕을 말하고 헤어지는 순간이 계절처럼 지나간다. 안녕이라는 말은 설렘과 그리움을 품고 있어 다정하고 애틋하다.

같은 시를 읽고 같은 그림을 보아도 사람마다 다른 느낌으로 기억될 것이다. 문득 초등학생 때 단체 관람으로 처음 박물관에 간 날이 떠올랐다. 야외전시장에 있는 커다란 돌덩이 앞에 적힌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라는 표현이 선명하다. '기원'이라는 단어보다 낯설게 느껴졌던 '안녕'. 그 문장은 읽어도 이해가 안 돼서 선생님께 무슨 뜻인지를 여쭤보았다. 그날 이후로 인사말로만 알았던 안녕에 새로운 의미가 더해졌다.

“헤어지며 놓아주는 순간 내뱉었던 안녕.
기다리고 기약하고 다시 그리며 준비해두는 안녕.
이 사이에 우리의 안녕이 있습니다.”

책장을 넘기면 시와 그림이 따로 또 같이 유연하게 흘러간다. 마음에 출렁임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잠시 머무르는 마음을 살펴 가며 감상했다. 안녕이라는 말이 품은 의미를 차곡차곡 모아서 폭넓은 시야를 보여주었다.

시와 그림으로 위로받고 싶을 때 펼쳐보면 좋겠다. 저 멀리 날아오르는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며. 누군가의 뒷모습을 지켜봐 주는 일이 슬프지만은 않다는 걸 되새겨 본다.


올해 두 살 된 단비는
첫배에 새끼 여섯을 낳았다

딸이 넷이었고
아들이 둘이었다

한 마리는 인천으로
한 마리는 모래내로
한 마리는 또 천안으로

그렇게 가도
내색이 없다가

마지막 새끼를
보낸 날부터

단비는 집 안 곳곳을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밤이면
마당에서 길게 울었고

새벽이면
올해 예순아홉 된 아버지와

멀리 방죽까지 나가
함께 울고 돌아왔다

- 박준 「단비」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학과지성사, 2018)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눈을 감아도 그려지는 마음을 선물해주신 @nandaisart 감사합니다. @joon1015 @rabbitandh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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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림책 #그림책추천 #계절독서 #도서추천 #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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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아름다워 을유세계문학전집 117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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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청춘은아름다워 #헤르만헤세 #을유문화사

☆모든 것이 자신의 내면에서 자라고 생겨났다.
_p.246 「클라인과 바그너」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고 했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데미안』의 머리말에 나온 첫 문장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복숭아 익어가는 계절에 어울리는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을 읽고 헤세의 에세이와 시에 빠져든 시간도 좋았다.

헤르만 헤세의 중단편 걸작 아홉 편을 모은 『청춘은 아름다워』가 을유세계문학전집 117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까지 담고 있는 책이라니 빨리 읽고 싶어 서평단에 신청했다.

「나의 젊은 시절 이야기」(1923)는 헤르만 헤세가 1923년에 쓴 자전적인 글이다. 친가와 외가 가족의 이야기와 작가의 젊은 시절 일대기를 짧은 글로 정리했다. 작가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자신의 삶이 책 마지막에 실린 '헤르만 헤세 연보' 보다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대리석 공장」(1905)
「라틴어 학교 학생」(1905)
「시인」(1913)
「회오리바람」(1916)
「청춘은 아름다워」(1916)
「유럽인」(1917/1918)
「클라인과 바그너」(1920)
「유왕(幽王)」(1929)

책에는 헤세의 작품이 연도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작품 속에는 사랑을 경험하고 내면의 세계와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어떤 인물은 청춘의 시기를 맞이하고, 또 다른 이는 청춘을 돌아보며 '내면으로 가는 길'을 찾아 헤맨다. 작가가 쓴 자전적인 글을 먼저 읽고 작품을 읽으니 내용이 좀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거울에 비친 다양한 얼굴이 자신이 살아온 삶을 하나씩 풀어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옛날 중국의 시인 한혹의 이야기를 담은 「시인」과 주나라 유왕과 애첩 포사 이야기를 다룬 「유왕(幽王)」이 분량은 짧지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시인과 시에 관한 헤세의 생각을 담은 「시인」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스승이 사라진 오두막에서 혼자 눈을 뜬 한혹이 칠현금을 들고 고향 마을로 내려가는 장면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장자(莊子)가 꿈에 나비가 되어 즐기는데, 나비가 장자인지 장자가 나비인지 분간하지 못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인 '호접지몽(胡蝶之夢)’이 떠올랐다.

☆지금의 나와 나의 어린 시절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벌어졌다. 내 고향은 이제 더 이상 예전의 고향이 아니었다. 지난날들의 즐거웠던 일과 어리석었던 일들이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 버렸다.
_p.162 「회오리바람」

작품 속 주인공들은 고향과 청춘의 시기를 통해 인생과 내면을 돌아본다. 회오리바람처럼 시간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부서진 조각들을 모아 과거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청춘만큼 강렬한 사랑으로 연결된 어지러운 내면세계를 마주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해 애쓴다.

☆모든 아름다운 것이나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 해도 유한한 것에 불과하고 정해진 끝이 있듯이, 내 기억에 나의 청춘 전체를 종결짓는 것처럼 보이던 이 여름도 하루하루 지나가 버렸다.
_p.211 「청춘은 아름다워」

"나는 차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서, 그 폭죽이 하늘 높이 치솟아 공중에 머물렀다가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리며 붉은 불꽃 비가 되어 사라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청춘 시절, 눈부신 순간은 현실에서 더는 찾을 수 없다. 내 곁을 스쳐 지나간 것을 돌이켜 보며 바라볼 뿐이다. 달리는 기차에서 차창에 기대어 바라본 풍경처럼, 강렬한 불꽃 같은 청춘은 다시 오지 않기에 더 간절하고 아름답다.

☆운명이 어디 다른 데서 온 게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 자라났음을 이제 알게 되었다.
_p.252 「클라인과 바그너」

한때 젊은 날이 있었던 이제 정신없이 쫓기는 처지가 되어 남쪽으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은 클라인. 공금을 횡령하고 관리자이자 남편으로서의 삶을 버리고 낯선 곳으로 떠난다. 그는 두 남녀가 떨어졌다가 다시 엉키며 균형을 잃을 듯하다가 다시 잡는 춤을 보며 과거의 터널을 통과해 지나온 생을 돌아본다. 타인의 춤을 시선으로 좇으며 잃어버린 청춘 시절을 떠올린다. 햇빛이 비치고 바람 부는 저쪽으로는 이제 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사람의 마음속엔 문제의 관건이 되는 모든 것이 있어서, 외부에서는 누구도 남을 도울 수 없는 법이다. 자기 자신과 투쟁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신뢰하면 무슨 일이든 이룰 수 있다.
_p.280 「클라인과 바그너」

클라인의 머릿속은 실패로 돌아간 자신의 삶, 아내, 범죄, 그리고 아무 희망 없는 앞날이 뒤엉켜 혼란스럽다. 무대 위에서 스텝을 놓친 사람처럼, 그는 서서히 내면 분열을 경험하며 점차 시들어간다. "청춘 시절, 열광, 바그너 이 모든 것이 그가 잃어버린 것을 너무 생각나게 해 주었기에." 도망쳐 온 삶과 지금의 삶 사이에서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결국엔 휩쓸려 사라진다.

헤르만 헤세는 『청춘은 아름다워』에서 장편보다 호흡이 짧은 중단편 분량으로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이 책에는 운명을 발견하고 새로운 얼굴로 낯선 삶을 향해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자연의 흐름에 따라 맞이하는 출생과 죽음, 그사이에 사랑이 스며들어 있다. 떠남과 돌아옴, 내면세계의 풍경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쉬지 않고 끝없이 쌓이는 시간의 흔적은 선명해졌다가 흐려지고 때가 되면 흘러간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들여다보며 마음 깊이 바라던 모습을 발견하는 시간을 선물한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청춘처럼 아름다운 책을 선물해주신 @eulyoo 감사합니다.

#을유세계문학전집 #홍성광 옮김 #중단편 #소설추천
#문학 #소설 #신간도서 #도서추천 #독서노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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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외식 집에서
주현지 지음 / 테이스트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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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외식 #cooking_at_home #tastebooks

☆외식하던 메뉴를 우리 집 식탁으로

외식이 자유롭지 않은 시기, 집에서도 외식처럼 즐길 수 있는 메뉴를 알려주는 책이 있다면 어떨까. 2021년 하반기 테이스트북스 서포터즈 올해의 마지막 도서는 『집에서 외식』이다.

『집에서 외식』은 집에서 유명 맛집의 맛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57가지 레시피를 담은 책이다. 맛있는 걸 먹을 때 가장 행복한 저자 주현지의 레시피 노트. 이 책에 수많은 시도 끝에 터득한 저자의 비법 조리법과 소스를 모두 공개한다.

저자는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고모와 외할머니의 사랑이 가득한 음식 덕분에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미식을 즐기는 부모님을 통해 어릴 때부터 다양한 음식 문화를 경험했다. 공대를 졸업하고 현재는 플랜트 엔지니어로 일하는 워킹맘인 저자는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법을 사람들에게 알리며 미식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PART 1 유명 맛집 메뉴
PART 2 솥밥의 정석
PART 3 우리 집 시그니처 요리
PART 4 한식당보다 맛있는 메뉴
BONUS 1 나의 홈메이드 소스
BONUS 2 시판 소스

책은 크게 네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화려하지는 않지만 따뜻하고 정겨운 '유명 맛집 메뉴'를 소개한다. 트럭에서 파는 전기구이 통닭과 집에서 편백 찜기 없이 식당에서 파는 편백찜 스타일로 만드는 법 등이 나온다. 각 메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와 소스, 양념장에 관한 정보와 레시피, 만드는 과정 사진이 있어서 요리가 서툰 사람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솥밥의 가능성은 어디까지인가. 책에는 갓 지은 솥밥에 양념장을 곁들여 먹는 솥밥 메뉴가 다양하다. 소고기가지솥밥과 레몬장, 명란버터솥밥과 마늘장, 연어솥밥과 산초장 등 솥밥과 짝꿍인 양녕장만 있으면 풍성한 한 끼 식사로 든든하다. 솥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메뉴가 너무 다채로워서 놀랐다. 생각지 못한 재료와 양념장의 조합도 인상적이다.

"누구에게나 집밥은 따뜻하고 고유한 기억입니다." '우리 집 시그니처 요리'에는 저자의 추억이 가득한 집밥 메뉴를 담았다. 우리 집에서만 먹을 수 있는 시그니처 요리를 딸에게 알려주듯 자세하게 소개한다. 끓이기 쉬우면서도 어려운 미역국에 들어가는 액젓과 간장, 소금을 어떤 제품을 써야 감칠맛이 좋은지.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제품을 상세히 알려준다.

떡볶이를 좋아해서 책을 받고 떡볶이 레시피를 먼저 찾아봤다. 사람마다 입맛이 달라서 밀떡과 쌀떡에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 재료가 떡볶이의 맛을 좌우한다. 저자가 쓴 고추장과 사각 어묵에 관한 팁을 읽으니 한층 더 신뢰가 간다. 라면 사리를 추가하고 싶다면 삶아서 헹군 것을 넣으라는 팁도 유용하다.

집밥하면 한식이 빠질 수 없다. '한식당보다 맛있는 메뉴'에는 담백하고 얼큰한 경상도식 소고기뭇국, 김장철 단골 메뉴인 수육과 보쌈무김치 등 많은 시도와 공부 끝에 만든 비법 레시피로 풍성하다. 좋아하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데 진심인 저자의 애정이 책에 온전히 스며들어 있다.

보너스로 저자가 정말 소개하고 싶은 홈메이드 소스 5개를 뒷부분에 수록했다. 혼자만 알고 싶은 비법 맛간장 만드는 법, 그릭요거트, 멸치 국물, 매실청, 유즈코쇼를 소개한다. 그동안 멸치를 프라이팬에 살짝 볶아서 멸치 국물을 만들었는데 더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니. 멸치를 전자레인지에 데우면 간단하게 수분과 비린내를 제거할 수 있다는 꿀팁. 매실 씨를 제거하는데 쓰는 매실 작두가 있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요즘은 브랜드별로 출시되는 간장이나 소스가 워낙 다양해서 선택이 쉽지 않다. 요리할 때 사용하는 제품 정보를 상세히 알려주면 좋겠다는 독자의 마음을 그대로 책에 반영했다. 베이스가 되는 소스 브랜드를 표기해서 집에서 만들어도 누구나 같은 맛을 낼 수 있게 배려했다. 저자는 시판 소스를 추천하며 어떤 요리에 활용하면 좋은지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 책에 있는 레시피를 참고해 사 먹는 맛 그대로 따라 만들기 쉽게 알려준다.

이 책은 집에서 만들었는데 기대하는 맛과 달라 아쉬울 때 알아두면 유용한 정보로 가득하다. 평소와 다른 특별한 음식이 생각나는 연말이나 새해에 활용하기 좋은 책이다. "저는 맛있게 먹는 거 하나는 자신 있으니 제 레시피 한번 믿어보세요."라는 저자의 말에 유독 눈길이 간다. 저자가 애정으로 개발한 레시피를 참고해서 우리 집 시그니처 메뉴를 만들면 좋겠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눈과 입이 즐거운 책을 선물해주신 @tastebooks_official 감사합니다. @joo_fil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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