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반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78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자- 손원평

소설 ‘아몬드’의 작가 손원평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으로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너의 의미> 등 단편영화를 감독한 경력이 있는 특이한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기존 인터뷰를 찾아보니 아몬드를 쓰게 된 계기도 참 재미가 있다.

임신을 하면 준비하던 영화를 잠깐 중단해야 하지 않나. 임신과 출산을 차례로 겪어야 함에도 일을 그만두지 말아야겠다는 나름 절박하고 굳은 의지가 있었다. 출산은 감흥이 없었고, 그렇게 고생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태어난 아이를 보니 너무너무 작더라. 낮은 침대에서 떨어지기만 해도, 몇 시간만 혼자 두어도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면서 아이에 대한 감정과 덩달아 인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모든 아이가 발가벗겨진 채 세상에 나왔지만, 삶의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갈 거라고 생각하니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슬펐다. (씨네 21 인터뷰 중)

그녀는 그럼 소설 ‘아몬드’를 통해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다른 인터뷰를 또 찾아보니 이런 내용들이 나온다.

타인을 공감한다는 것 자만일 지 모른다. (북DB 최규화기자의 인터뷰 중)

나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매일경제 인터뷰 중)


 

작가는 <아몬드>를 통해서 인간의 감정, 다른 사람과의 교감이란 무엇일까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또 하나 가상의 작가 PJ 놀란의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라는 말을 통해서 과연 사람은 변할 수 있는가? 구원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묻는다. 그래서인지 <아몬드>를 읽으면 인간이 아주 당연하게 느끼는 감정이란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것인지에 대해서 깨닫게 된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감정,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라는 믿음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교감하고 공감하고 때론 상처받고 미워하는 것까지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일 지도 모른다.

<아몬드>는 잡자 마자 빠져들게 되는 책이다. 정말 책을 집자마자 하루만에 다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 충격적인 도입부에 비해서 갈수록 너무 해피앤딩이 아닐까? 란 생각을 해 보았다. 하지만 다 읽고 나서 이 책이 청소년 성장소설이란 것을 알게 되니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고 또 한편으론 약간 아쉬웠다. 과연 정말? 현실에선 이런 결말이 나올 수 있을까? 정말 작가가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던 대로 괴물이 탄생되지는 않았을까? 란 생각을 해 본다. 물론 작가는 누구나 다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도 관심과 지지 속에 다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숨 막히고 몰입감 높았던 초반부에 비해서 갈수록 약간은 김이 빠지는 듯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이와 함께 과연 인간에게 ‘감정’이란? 축복일까? 그리고 또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일까?란 생각을 해 보았다. 물론 인간이 감정을 느끼고 서로 교감하고 온기를 나누는 것은 축복이요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또 그 감정 때문에 서로 오해하게 되고 실수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적재적소에 오히려 이성적인 인간? 가령 정말 선윤재처럼 감정이 철저히 배제된 사람이 필요한 곳이 있지 않을까? 란 상상도 해본다. 예를 들면 주요 검사나 판사 같은 경우 지연학연에 치우치지 않고 이성만으로 판단하고 일을 처리한다면 더 좋지는 않을까 뭐 이런 상상 말이다.

P24

얼마 후 엄마는 우주여행을 간다며 나를 어디로 데려갔다. 그런데 도착한 장소는 병원이었다.

P27

누구나 머리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 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있다.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P37

엄마는 모든 게 다 나를 위해서라고 했고 다른 말로는 그걸 ‘사랑’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엄마의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하려는 몸부림에 더 가까웠다.

P45

책은 내가 갈 수 없는 곳으로 순식간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만날 수 없는 사람의 고백을 들려주었고 관찰할 수 없는 자의 인생을 보게 했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감정들, 겪어 보지 못한 사건들이 비밀스럽게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그건 텔레비전이나 영화와는 애초에 달랐다.

P57

오늘 누구든지 웃고 있는 사람은 나와 함께 갈 것입니다.

P79

그 일로 나는 좀 유명해졌는데, 물론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때 별로 좋지는 않은 유명세였다. 내가 복도를 지나갈 때면 아이들은 바다로 갈라지듯 양 옆으로 비켜섰다. 곳곳에서 쑥덕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P113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분이다.’ 사형수 출신의 미국 작가 P.J 놀란이 한 말이다.

P118

할멈의 표현대로라면, 책방은 수천수만 명의 작가가 산 사람, 죽은 사람 구분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구 밀도 높은 곳이다. 그러나 책들은 조용하다. 펼치기 전까진 죽어 있다가 펼치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쏟아 낸다. 조곤조곤, 딱 내가 원하는 만큼만

P143

예를 들어 주마. 스케이트에 전혀 소질이 없는 사람이 백날 연습을 한다고 해서 최고의 스케이터가 되지는 못할 거다. 타고난 음치가 오폐라의 아리아를 멋들어지게 불러 청중의 갈채를 받는 것도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연습을 하면 말이다. 적어도 비틀거리며 얼음 위로 조금 나아가는 것 정도는, 서툴게나마 노래 한 소절쯤 부르는 것 정도는 가능해진단다. 그게 바로 연습이 허용하는 기적이자 한계란다.

P149

삶이 장난을 걸어올 때마다 곤이는 자주 생각했다고 한다. 인생이란, 손을 잡아 주던 엄마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잡으려 해도 결국 자기는 버림받을 거라고

P153

어딘가를 걸을 때 엄마가 내 손을 꽉 잡았던 걸 기억한다. 엄마는 절대로 내 손을 놓지 않았다.

P185

나 언젠가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나에 대해서

도라의 눈망울이 뺨을 간질였다.

나도 이해 못하는 나를, 남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P186

도라가 고개를 들었다. 볼이 빨갛다.

이 정도면

도라가 중얼거렸다.

이제 나도 네 얘기에 등장할 자격이 생긴 건가.

어쩌면

시원찮은 대답이네

도라가 웃었다. 그러곤 폴짝폴짝 뛰어 문밖으로 사라졌다.

P211

철사는 누군가의 밑에 들어가 일을 배우거나 사회에 섞이는 것 따윈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그에겐 독자적으로 설계한 세상이 있었다. 남들은 가 보지 못한 정점에 이르는 것, 내겐 와 닿지 않았지만 그 이상한 세계에 매료된 아이들이 철사 밑으로 모였고 곤이도 그 중 하나였다.

P215

나중에 사람들은 내게 왜 그랬느냐고, 왜 끝까지 도망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제일 쉬운 일을 한 것 뿐이라고 말했다.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P217

비슷한 모습을 누구에게서나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채널을 무심히 돌리던 엄마나 할멈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멀리 있는 불행은 내 불행이 아니라고, 엄마는 그렇게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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