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에게 임금을"은 정직한 제목의 책이다. 이 책은 말 그대로 대학생/대학원생에게 임금을 지급해야 함을 주장한다.


  책 제목은 야부 시로의 '학생에게 임금을'이라는 글에서 따온 것이다. 야부 시로는 대학생을 이중의 의미에서 노동자라고 말한다. 우선 교육 기간 동안 그들은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 또한 대학생이 없으면 대학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학을 유지하기 위해 대학생은 여러가지 활동을 한다. 대학생이 없으면 대학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1960년대 말 이탈리아의 학생운동은 학생임금을 주장하였다. 이 운동은 대학 무상화로 결실을 맺는다.


  구리하라 야스시는 교육의 기회균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배우는 것은 기본적 인권이고 효율적인 사회적 투자이다. 그렇다고 돈이 되는 학문만 돈을 주자고 하면 곤란하다. 지식의 계급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지식의 쓸모는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지식은 어차피 공공재이고 대학은 이 공공재를 다루는 곳이다. 이 발상은 결국 기본소득 보장까지 연결된다. 지식이라는 공공재는 대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식은 일종의 천연자원으로 어디에나 있고 일상생활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실현하고 있다. 다만 대학은 이것을 주로 할 뿐이다.


  대학 등록금 문제를 다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본의 장학금 제도를 함께 다루게 된다. 일본의 장학금은 한국의 장학금과 개념이 다르다. 빌리고 나중에 갚아야 하는 학자금 대출도 장학금이라고 한다. 일본 대학생, 대학원생은 거의 학자금 대출을 받고, 빚을 쌓는다. 빚으로 대학 교육을 구매하는 건 당연하게 되고 빚을 갚기 위해 학생들은 취직활동에 힘쓰게 된다. 


    게다가 1970년대부터 자본주의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소품종 다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에 시대가 되었고 머리를 써서 일을 해야 하는 일이 늘었다. 특히 의사소통이나 정보교환이 중요해졌다. 인간의 인지적 활동이 자본주의 이윤을 만들어 내는 최고의 도구가 된 것이다. 이를 책에서는 인지자본주의라고 한다.


  대학이야말로 역사적으로 인지적 활동의 장소였다. 그런데 원래 인간의 인지 활동은 기업의 경제활동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인지 자본주의는 인지 활동을 상품으로 만들고, 일종의 병리적 분위기가 마련된다. 상품이 아닌 것을 상품처럼 다루니 학생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인지 활동은 배워서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취득되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취직활동에 도움이 되는 것만 옳은 의사소통이라고 배운다. 사람 마다 다양한 의사소통 방식이 있고 이는 각자의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인데도 학생들은 이를 부정당하게 된다. 

  

  구리하라 야스시는 아나키즘 전공자이다. 이 책도 아나키즘의 수혜를 받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전공투에 가깝나..?) 구어적인 투로 썼지만 여러 통계 자료들도 제시하고 있다. 일본 대학의 빚문제, 취직문제는 한국에 거의 그대로 적용된다. 자본주의 교환 논리가 주는 자유로움이 분명 존재하지만 오늘날은 그 교환 논리에 너무 매여있다.

  "학생에게 임금을"을 대학 관련자 & 대학생의 필독서로 했으면 좋겠다. 특히 대학생을 단순히 지식의 수용자가 아닌, 교수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지식을 재생산하는 존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들을 알고 싶으면 에세이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를 꼭 읽어보았으면 한다. 이 책을 먼저 알았는데 책 제목부터 나를 끌어들였다. 살짝 겹치는 내용도 있다.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글을 쓰는 후지이 다케시 선생님의 비슷한 내용을 다룬 칼럼을 덧붙여본다.... 선생님 글 많이 써주십사...(기승전후지이선생님이 되어버렸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78502.html


아 이 책 미주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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