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있어요, 지금도 - 소설처럼 살아야만 멋진 인생인가요
서영아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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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어른일까?"

티아 할머니는 조용히 되물었다.

"두려운 걸 아니까 어른이지. 진짜를 아니까."

나는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이 두렵다고 말했다.

"누구나 두렵단다. 홀로 감정 앞에 선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 봐 두렵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까 봐 두렵고. 하지만 그걸 다 알면서 우리는 그 감정을 건너가야 해."

티아 할머니의 눈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저는 늘 부족한 사람인 것 같아요. 아직 내가 강렬하게 원하는 것도 모르겠고, 결혼도 하지 않았어요. 건너야 할 감정은 너무나 많지요. 과연 건널 수 있을지, 마주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에요."

"부족함이 아니야.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로움이지. 사물도 사람도 늘 거리를 두고 아끼되 지배당하지 않아야 해요. 사람이니까 자꾸 곁을 보고, 나와 삶의 키를 비교해보고, 겉으로는 괜찮다 말하지만 가끔 마음에 무거운 추를 매달지. 그런 날이면 한없이 가라앉아요. 그래도 다음 날 아침, 회사에 가고 일을 하잖아. 햇빛 아래 나가면 절반 이상은 잊어버린다고……. 그러면 또 그만큼 건너가고 있다는 뜻이지."

"할머니, 나는 잘 건너가고 있는 건가요?"

"모르지, 그건. 하지만 믿고 가는 거야. 그게 다야." -p, 23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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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위한 드레스를 고르고 들러리 파티를 할 수 있는 장소인 티아 하우스, 미혼과 결혼의 가운데에 놓여 있는 다리와 같은 곳. 이 곳의 주인인 티아 할머니가 신부들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준비한 모임인 '브릿지 타임'에서 그녀들이 나눈 이야기를 담아놓은 책.


아직 머나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결혼'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인지 읽는 속도가 더뎠고, 자꾸만 내가 책에서 겉도는 느낌이 들어 이 책을 끝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내가 책을 읽으며 좋아하는 행위인 '공감되는 글귀에 포스트잇 붙이기'의 결과로 덕지덕지 붙어있는 포스트잇을 보자니 신기할 따름이고, 공감했던 글귀를 옮겨 적어보니 결혼과 가까운 나이인 언니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여러 주옥같은 멘트들을 옆에서 야금야금 주워들은 것 같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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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읽어보고 정말 괜찮았다며 빌려주었던 《네이키드 소울》에 쓰여있었던 글이 서영아 님의 글이었다니, 어쩐지 분위기가 비슷하다 했었다. 지금은 절판되어 쉽게 구할 수 없게 되었지만 다행히 난 글귀를 정리해두었었지.



▼ 《네이키드 소울》서평, http://blog.naver.com/se_eun92/22002414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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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이처럼 한 번의 브릿지 타임에서 나눈 하나의 주제들에 대해 찬찬히 들려주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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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브릿지 타임에선 한 명씩 자신의 이야기를 대표로 들려주고 있었다. 이들은 도보 여행자부터 건축가, 요리사, 성우, 편집자, 블로거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관점을 가진 언니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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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티아 할머니가 적어두었다는 티아 할머니의 노트를 볼 수 있었는데, 만약 존재한다면 티아 할머니의 노트 전체를 가져와 읽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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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에만 해도 내가 가는 결혼식들은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닌, 부모님이 아는 사람이거나 친척들의 결혼식이었는데 어느새 내가 사회에서 알게된 언니, 오빠들의 결혼식 청첩장을 받기도 하고 결혼식 하객 복장에 대해 이것저것 신경이 쓰이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아직 주인공이 아닌 하객이지만. 내가 주인공이 아닌 결혼식이어도 결혼식장에 가면 눈물이 핑 도는걸 보니 '결혼'이라는 의식 자체가 참, 가벼이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닌 듯 하다. 5월에 결혼을 한 언니, 오빠가 얼마 전 임신을 했다며 임신 소식을 SNS를 통해 알렸는데 그걸 보고 엄마한테 이런 말을 했다. "그냥 나한테는 언니, 오빠였는데 어느새 부부가 되고, 어느새 엄마, 아빠가 되어버렸어. 뭔가 신기해."


언젠가 내가 결혼이라는 단어와 더 가까워지는 날이 오면 그때 아래에 정리해 둔 글귀들을 한 번 찬찬히 읽어보고 싶다. 그때 나에게 이런 대화를 나눌 친구, 동생, 언니들이 있다면 더 좋겠고. 티아 하우스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더더욱 좋겠지?





   




당신이 시간을 조율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아요. 느리고 빠름을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도 잊지 말고요. 좋은 시간을 늘려 쓰고, 힘든 시간을 건너는 방법을 연구하세요. 몸과 정신이 시들지 않도록 시간의 중심에 두 발을 굳건하게 세워요. 마흔 이후의 삶은 새로운 여자로서 살아가는 기회가 될 거예요. 마치 여행처럼 말이죠. 여행의 지도에 필요한 것은 직접 걷고, 사랑하고, 경험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 그게 다예요. 견디지 말고 경험해요. 시간을 견디면 온몸이 아파요. 근육이 뭉쳐요. 힘든 시간은 리듬을 타야 해요. 그리고 누군가와 그 시간을 나누어 쓰는 지혜를 가져야 해요. 씨앗을 심으면서 비와 바람을 피하려 하지 않는 농부의 시간을 생각해봐요. 재미있는 놀이에 빠져 있는 아이의 시간에 들어가려면 내가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봐야 하지요. 귀찮고 괴롭고 아픈 시간은 벼랑 끝에 나를 세우는 시간이에요. 단단하고 멋진 여자가 되기 위해 나를 단련하는 시간이죠. 반드시 보상이 돌아올 시간이라는 믿음을 가지면 돼요. 조금은 아이처럼 단순해질 필요가 있어요. 내가 이 시간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더 근사한 세계의 문을 열기 위해 이 길을 건너고 있다고 믿어보는 거예요. 그러려면 과정 자체를 새롭게 배워야 해요. 시간을 나누어 쓴다는 건 서로 동등해진다는 겁니다. 처음 결혼을 시작하는 두 남녀도 그렇지요. 그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만나는 그 순간, 우리는 새로운 시간의 리듬을 만들어내지요. 새로운 개념의 시간이 창조되는 거예요. 낯선 여행자들처럼 다음에는 무슨 재미있는 일이 올까 기대하면서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해요. 그렇게 웅크리고 있지 말고. 그럼 돼요. 마음이 시작되면 몸은 좋은 방향으로 따라갈 거예요. -p, 38



어떤 여자들은 질문 때문에 반짝임을 잃게 되기도 해. -p, 51



삶에 영감을 주는 경험들은 우리를 깨어 있도록 해주죠. 힘든 순간에도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고요. 사람마다 반짝이는 순간은 모두 조금씩 다르지만 말이에요. 과정이 중요한 사람도 있고, 결과에 짜릿한 사람도 있고,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한 사람도 있죠. 하지만 내 마음의 자리가 그곳에 없으면 그건 가짜예요. 무리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의 시선, 세상의 평가가 중요해지면 진짜 나는 점점 빛을 잃어가는 거예요. 곳곳에 내 자리를 많이 만들어놓으세요. 자리라는 말은 내가 앉아 있는 곳, 속해 있는 그곳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답니다. 내가 보는 풍경, 내 마음이 차지하는 공간까지 모두 속합니다. -p, 53~54



너는 좀 단단해져야 했기에 지금 외롭고 쓰리고 아픈 건지도 모른다. -p, 109



책 한 권과 한 사람의 인생이 이어진다면 내 인생은 어떤 책에 가까울까. 나는 정말 심심한 책 한 권을 쓰고 있다. -p, 140



사랑은 우주적 테마라서 우리를 몽상에 잠기게 한다. 참으로 기묘한 경험이다. -p, 147~148



인생에서 매듭을 잘 짓는다면 다음 단계로 건너갈 수 있는 힘을 받는 거라고 생각해요. 매듭에는 끝을 위한 매듭과 관계를 더 견고히 잇기 위한 매듭이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머리를 땋아주던 엄마의 손길을 기억합니다. 그때 매듭을 짓는 엄마의 손길과 눈길을 떠올려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대하는 마음, 그것이었겠지요. 매듭은 시작할 때와 끝낼 때 모두 중요합니다. 인연도 그래요. 한 시절을 매듭지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스스로 끝이라는 것을 알 때가 오죠. 회사를 옮겨야 할 때, 결별이나 죽음 등으로 매듭지어지는 인연의 끝도 있습니다. 여기, 지난 사랑을 봉하여 작은 상자에 가두었습니다.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상처를 닫았습니다. 멈추어야 할 순간은 누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닙니다. 인연이 다했을 때 우리는 수많은 사인을 받게 됩니다. 울리지 않는 전화, 미뤄지는 약속들, 침묵 같은 것들. 식어가는 마음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가장 불행한 것은 그 시기가 두 사람에게 다르게 다가온다는 거죠. 어느 날 더 이상 설레지 않을 때, 도망갈 핑계를 찾습니다. 그리고 언제 그 마음을 영원히 닫을지 시기를 볼 뿐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먼저 돌아설 때,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까 잠깐쯤은 생각합니다. 그것이 사랑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들은 갑자기 연락을 끊고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굴지는 않습니다. 그가 스스로 알아채기를 기다려줍니다. 가끔은 그게 더 큰 상처가 된다는 걸 모르고 말이죠. 저는 헤어질 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시간을 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가혹한 시간이니까요. 마음이 식어버린 사람의 상자는 이미 닫혔습니다. 그리고 온갖 신호로 '안녕'이라고 말합니다. 가장 아픈 것은 아직도 사랑이 남은 한 사람이 자신의 연애 상자를 닫을 때입니다. 그 상자 속에는 의미 있는 이야깃거리가 수없이 들어갈 것입니다. 아주 사소한 기록들에도 추억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무척이나 사랑스럽던 추억들, 작은 메모와 사진들, 선물들. 한동안 심장 깊숙이 그 상자를 간직합니다. 거리를 지나다 비슷한 사람을 만나도, 함께 듣던 음악을 듣다가도 상자의 뚜껑이 들썩들썩합니다. 그런 날이면 가슴이 아파지고 눈이 뜨거워져 견디기가 힘들겁니다. 그들의 상자는 술을 마시거나, 계절이 바뀔 때 또다시 들썩거려 헤어진 연인에게 전화를 걸고 싶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에게도 시간은 흘러갑니다.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나고, 웃게도 되고, 울게도 되고, 여러번의 가을과 겨울을 건너 아름다운 봄날이 오면 그때 상자를 한번 꺼내봅니다. 꽁꽁 묶어두었던 마음이 풍선처럼 하늘로 날아가죠.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에요. 그때 한 번 손을 흔들어줍니다. 안녕…… 잘 가라. 한때 진짜 좋아했었다. 마음 한편이 짠하지만 그리운 건 그때 한 사람을 향해 달려갔던 마음일 겁니다. 이제 그 마음을 풀어줍니다. 그렇게 한 시절이 고요히 문을 닫죠. 그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진짜 삶으로 돌아섭니다. 우리에게는 숨겨진 상자가 몇 있을 것입니다. 그게 무엇이든 상자를 열어야 합니다. 끝과 직면해야 합니다. 완전히 떠나보내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고, 또 용기가 필요하니까요. 때가 되었을 때 좋은 마무리를 하는 것이 다음 단계로 건너가는 데 정말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매듭을 잘 짓는 사람만이 그 기억을 추억으로 간직할 자격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p, 161~163



청춘은 그렇게 천방지축 부딪히다가 어느 날 닻을 내린다. 쓸쓸해져서, 혹은 시간이 다 되어서. 그리고 평화를 꿈꾼다. 폭풍 같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열정과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p, 169



우리는 가끔 인생의 가벼움을 위해 정답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더 무거워지고 만다. -p, 207



그러니까 여자들에게는 고양이의 시절과 강아지의 시절이 있다니까. 고양이의 시절은 탐색과 고독과 예술가의 삶이야. 강아지의 시절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관계 속에서 평온을 찾는 삶이지. 나는 여자들이 고양이의 시절과 강아지의 시절을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p, 230



"무엇이 어른일까?"

티아 할머니는 조용히 되물었다.

"두려운 걸 아니까 어른이지. 진짜를 아니까."

나는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이 두렵다고 말했다.

"누구나 두렵단다. 홀로 감정 앞에 선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 봐 두렵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까 봐 두렵고. 하지만 그걸 다 알면서 우리는 그 감정을 건너가야 해."

티아 할머니의 눈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저는 늘 부족한 사람인 것 같아요. 아직 내가 강렬하게 원하는 것도 모르겠고, 결혼도 하지 않았어요. 건너야 할 감정은 너무나 많지요. 과연 건널 수 있을지, 마주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에요."

"부족함이 아니야.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로움이지. 사물도 사람도 늘 거리를 두고 아끼되 지배당하지 않아야 해요. 사람이니까 자꾸 곁을 보고, 나와 삶의 키를 비교해보고, 겉으로는 괜찮다 말하지만 가끔 마음에 무거운 추를 매달지. 그런 날이면 한없이 가라앉아요. 그래도 다음 날 아침, 회사에 가고 일을 하잖아. 햇빛 아래 나가면 절반 이상은 잊어버린다고……. 그러면 또 그만큼 건너가고 있다는 뜻이지."

"할머니, 나는 잘 건너가고 있는 건가요?"

"모르지, 그건. 하지만 믿고 가는 거야. 그게 다야." -p, 23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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