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삭임 - 서른이라는 단어에 발길이 멈춰선 당신에게
신성원 글 사진 / 시공사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다른 누구의 삶이 아니라 내 삶이다. 평탄한 쪽으로 방향 지워져 있다는 걸 알면 시시하게 여길 테고, 굴곡이 져 있다는 것을 알면 시작도 하기 전에 지레 겁부터 먹지 않을까. 오늘 내가 최선을 다해 선택의 순간을 넘겼다면 그뿐. 이미 놓쳐버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면 그뿐이지 않은가! -p, 163, 164

 

 

 

 

 

친구에게 선물 받은 이 책을 처음으로 읽었던 19살과 다시 한 번 읽게 된 23살.

 

19살 생일선물로 받았던 책이라 3월 말쯤,

갓 수험생이 된 그때. 꿈도 많고 목표도 확실했던 그때.

‘내가 서른 즈음이 되면 어떤 모습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던 생각이 납니다.

 

20대 중반이 되어버린 지금,

5년 전과는 다르게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꿈보단 현실에 타협하면서 지내는 지금.

‘아직 늦지 않았지.’ 위로를 받으며 이 책을 읽었어요.

 

‘서른이라는 단어에 발길을 멈춰선 당신에게’라는 부제처럼 어쩌면 이 책은 서른 그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일 수도 있겠으나 동화책이 어린아이만을 위한 책이 아닌 듯 이 책도 어느 누가 읽어도 많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KBS 아나운서로 입사한지 10년, 안정적인 생활을 버리고 뉴욕행을 결심한 아나운서 신성원. 이십대인 저조차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을 삼십대의 아나운서가 용기있게 행동으로 옮긴 후 써내려간 에세이입니다.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1년의 시간동안 많은 생각을 하며 써내려간 글이기 때문인지, 또 많지도 그렇다고 적지도 않지만 많은 경험을 했을 삼십대의 언니가 쓴 글이기 때문인지 연애, 사랑, 인생, 결혼, 인간관계 등에서 가슴에 새겨두고 싶은 글이 잔뜩입니다.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경우가 거의 없는 저인데, 삼십대가 되어 이 책을 읽을 땐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해지네요.

 

 

 

다 지난 이야기인 것을. 참 우스웠다. 뭐가 그리 복잡하고, 뭐가 그리 힘들었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으며, 무엇을 위해 고민했는지. 세상은 이렇게 넓은데 저 안에서 아등바등 살아왔던 내가 한없이 불쌍해졌다. 일에 치이고 사람한테 상처받으면서 다 내 잘못이라고 얼마나 나 자신을 닦달하고 탓했는지…….

‘많이 힘들었지? 수고했다.’ -p, 8

 

현실은 그렇다 해도 스스로 냉철하게 판단하여 단점조차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완벽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될 수 있는 한 빨리 인정하는 편이 낫다. 그러면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삶은 편안해진다. 다소 늦은 나이에 진짜 내 모습을 알게 됐지만 그래서 더욱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 사람이면 안 된다고 자책도 하지 않기로 했다. 불안해하지도 않기로 했다. 다른 사람이 되겠노라 결심하고 바꾸는 노력조차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자니 한 번도 스스로 인정해본 적이 없는 나 자신이 왠지 처량해질 것 같아서 말이다. 느리게 나를 알아가기로 했다. 지연된 만큼 더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바라보기로 했다. 그러면 된 거 아닌가. -p, 68

 

어떤 유명 사진작가는 몇 날 며칠 동안 빛에 대해서만 연구하다가 피사체와 빛이 절묘하게 어울리는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여 사진을 딱 한 장만 찍는다고 한다. 그런 한순간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 그런 경지에 오르려면 한참 더 배워야 하니 그렇겠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결정적 순간’은 사후적인 문제이다. 그리고 기다림의 문제이다. 그 순간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하다. 물론 너무 동떨어져 있는 시간을 포함하여 한없이 찍는다고 좋은 사진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정적 순간’을 포함한 오차범위 내의 허용된 시간 안에서 나는 기다리고 찍는다. 혹은 찍고 기다린다. 나중에 확인해보면 안다. 언젠가 그토록 바라던 ‘결정적 순간’이었는지를. 사진을 찍는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인생의 결정적 순간도 기다리다 보면 언젠간 찾아올 거라는 사실을. -p, 72, 73

 

우리가 은연중에 의존하는 모든 대상은 따지고 보면 관계 맺기의 대안으로 선택된 것들이다. 사람 인人이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듯 우리는 모두 외롭고 의존적인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서로 중독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p, 86

 

인생에서 부닥치는 모든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준다. -p, 91

 

어느 날 갑자기 비가 많이 온다고 해서 둑이 터지는 것은 아니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아주 작은 균열이 시간의 힘을 빌려 마침내 재앙으로 이어진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쪽만 조건 없이 많이 주면, 다른 한쪽에서는 받는 것이 당연해진다. 주는 쪽은 ‘그럼에도’ 주기만 했고, 받는 편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받기만 했다. 일방적인 주고받음에 익숙해지면 주는 쪽의 존재감은 점점 사라지게 되고, 주는 쪽의 상실감은 점점 커지게 된다. -p, 117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건가?’

매일 결론이 다를 수밖에 없고 정답도 없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댔다. 잘하고 있다고 토닥토닥 다독였다가, 아직도 멀었다고 이런저런 결심과 다짐으로 채찍질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하루하루, 순간순간 기분이 달라졌다.

 

지금까지의 내 삶을 더듬어보았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하고 싶은 일을 뒤로 미루고 공부만 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운 좋게 취직이 되었다. 사회생활 10년 동안 방송도 열심히 했지만 성취감에 대한 끝없는 갈증을 채우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학위도 받았다. 누가 옆에서 강요한 것도 아닌데 에프엠으로만 살아왔다. 참 재미없게 살았다.

 

“언니는 왜 자신을 들들 볶으면서 살아? 좀 편하게 살아도 되잖아.”

어느 날 동생이 정말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사회에서 원하는 인간형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사람. 자신이 세워놓은 원칙과 가치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걸 불안해했던 사람. 미래를 위해서라면 현재 따위는 과감히 희생하는 사람.

 

그래서 돌이켜보면 동생 말대로 참 힘들게 살았다. 그리고 이젠 지칠 만도 했다. 세월의 풍화작용은 삐죽삐죽 모난 부분들을 깎아주고 다듬어주었다. 마음이 많이 둥글둥글해지니 생각도 여유로워졌다. 나를 바짝 조이기만 했던 끈을 스르르 놓아보기도 했다. 그렇게해도 삶은 계속되었다. 또 다른 삶이 새롭게 시작되었다. 이렇게도 살고 저렇게도 살 수 있었다.

 

여유가 생기니 나를 칭찬하고 싶어졌고, 나에게 상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 무엇을 바랄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인정하고 격려해야만 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어 하는 나 자신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줘야만 했다. -p, 140, 141

 

하지만 나이나 조건이나 환경 따위에 과도하게 신경 쓰며 떠밀리 듯 억지로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 심지어 부모님조차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는 못하기에 인생의 주인인 내가 가슴 깊은 곳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소리를 따를 것이다. -p, 159

 

다른 누구의 삶이 아니라 내 삶이다. 평탄한 쪽으로 방향 지워져 있다는 걸 알면 시시하게 여길 테고, 굴곡이 져 있다는 것을 알면 시작도 하기 전에 지레 겁부터 먹지 않을까. 오늘 내가 최선을 다해 선택의 순간을 넘겼다면 그뿐. 이미 놓쳐버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면 그뿐이지 않은가! -p, 163, 164

 

어두컴컴한 창고 안에는 지금 보면 유치하기만한 첫사랑이 담긴 연애편지가 십 년도 넘게 잠자고 있었다. 재활용하기 위해 모아둔 일간신문들보다도 더 쓸모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온통 버려야 할 것 투성이었다. 사람도 그러할 것이다. 한때 몹시 소중한 존재였기 때문에 차곡차곡 가슴속에 아련한 추억으로나마 남겨뒀던 사람. 잊지 않으려고 여러 번 아주 작고 희미한 기억까지 떠올리려 노력해봤던 사람. 수많은 시간과 공간을 나와 기꺼이 공유했던 사람. 부질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그 사람을 내 마음속 어딘가에 담아두고 있었다.

 

애지중지하면서도 어딘가에 있겠지 하며 돌아보지 않았던 것들을 이제 버리려고 한다. 원망스럽고 밉기만 해서 더더욱 잊지 못했던 사람들도 이제 놓아주려고 한다. 비울수록 채워지는 법이라고 하지 않던가. 다시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과거에 속했던 모든 것을 이제 정리하려고 한다. 이렇게 과거를 떠나보내는 작업을 심리학에서는 ‘애도’라고 한단다.

 

처음에는 떠나가는 것과 멀어져가는 것 자체를 부인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분노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결국 영원한 이별을 인정하게 된다고 한다. 소중하게 아끼던 어떤 것을 잃게 되면 큰 슬픔이 다가오겠지만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슬픔을 겪고 나면 비로소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것이다. 상실 그 자체가 혹은 상실에서 오는 슬픔이나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두려워 버려야 할 것들을 벽처럼 쌓아두고 그 안에 갇혀 살면서 잘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모두 다 치워버리자고 다짐했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또 무엇인가가 쌓일지 모르지만 그때가 되면 또 포기하고, 놓아주고, 버리면 된다. 그뿐이다. 평생 동안 살아가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상실의 아픔을 경험할 것이고, 그러면서 조금씩 성장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손가락 하나 들기 힘들 정도로 뭉친 근육만큼이나 딱딱하게 굳어 이제는 설렘도, 그리움도 느끼지 못하는 심장도 가끔 그렇게 풀어주면 그뿐이다. 그렇게 훌훌 풀어내고 보내버리고 나면 훨씬 자유롭고 새로운 삶이 찾아올 것이다. 이제 선택은 온전히 내 몫이다. -p, 177-179

 

누군가와 연결고리가 될 휴대전화를 한순간이라도 손에서 놓고 싶어 하지 않는 걸 보면 우리도 참 많이 외로웠나 보다. 우리는 외로우면서도 외롭다고 먼저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 말을 걸어도 괜찮은지 어떤지 눈치를 본다. 우리는 여전히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외로움을 덜어줄 친구를 찾는다. -p, 184

 

바쁠 때는 바쁜 대로 힘들었고,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심심해서 권태로웠다. 너무 바쁠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낼 수 있는 단 하루가 간절했고, 아무 일 없는 나날이 이어질 때는 펄떡펄떡 싱싱하게 살아 있는 심장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깊이 몰두할 일이 필요했다. 우리는 늘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 한다. 다들 그렇듯 가지 않은 길을 동경한다. 그러니 어떤 모습으로 사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살아남는다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있고 용기가 있는 것이다. 살아남은 자에게는 희망이 있고, 살아남은 자에게만 꿈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 오늘부터 더 잘 버텨보자. 그래도 살아남으려고 애써보자. -p, 192,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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