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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온 편지 - 작가정신 소설향 10 ㅣ 작가정신 소설향 10
장정일 지음 / 작가정신 / 199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들어보시오. 나는부소입니다. 나는 부소이자, 나는부소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가면입니다. 그러니 이건 소설도 아니고 평전도 아니고 역사는 더욱 아닐 겁니다. 되기로 한다면 겨우 읽을 거리나 될까요.' 이렇게 미리부터 지레 변명하는 부소의 말은 작가의 변명이기도 하더군요. 다 읽고 보니 그럴 만도 했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건 역사도 아니고, 진정 부소와 진시황의 이야기만도 아니잖은가. 이건 바로 殺父殺子의 이야기. 권력에 대한 이야기이자,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殺父殺子
-황제인 아버지는 장자인 아들이 자라 왕이 되는 것이 무서워 아들을 죽이고, 아들이 자라기 위해서는 마음속의 아버지를 죽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권력의 해법. 권력의 정석이다 이겁니다. 권력의 잉여자는 죽을 수 밖에요. 그러니 부소도 몽염도 죽어야지요. 참으로 끊기지도 않고 흘러나오는 부소의 넋두리(?)를 듣고 있으면 책 뒷머리의 말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삶을 능히 감당하는 자는 말이 없고, 그 삶을 감당하지 못하는자는 쉴 새 없이 지껄여대는 것이다'
그렇다면 삶을 능히 감당하지 못하는 자는 다 죽어야할 운명이랍니까. 그러나 삶을 능히 감당하는 자가 세상천지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러니 너도 나도 부소같이 지껄여 댈 수 밖에요. 그것도 가벼울수록 더욱 좋겠지요. 삶도 이렇게 무거운데 하물며 넋두리조차 무거워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나 부소의 주절거림을 간과해서는 안될겁니다. 부소의 참담한 지껄임이 바로 우리 삶 전체니까요. 등너머로 제껴버리고 싶지만 항상 짊어지고 가야할 '꺼리'들을 부소는 쉴새없이 재잘거리는 겁니다.
부소가 당신에게 중국에서 보낸 편지를 야참용 읽을 거리로 읽어도 좋습니다. 아니면 책꽂이에 꽂아놀 역사적 소설로 분류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부소가 바로 우리라는 것, 아버지고 아들이고 누이고 남편이고 형제라는 걸 잊지말아주세요. 우리가 바로 부소이자 진시황이랍니다. 그것만 알면 다 끝난 이야기 아닙니까. 쫑 the end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