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재배, 이게 재미있어요. 수경재배에 대한 얘기라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 흥미로워요. 물에서 인공적으로 식물을 기르다니, 아주 흥미로운 기술이잖아요. 화성 같은 곳에 가게 된다면 이걸 잘 알아야 할 거예요. 당신들은 어디로 간다고 했죠?”
“코모도 섬요.”
“아 물리지 말아요.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에요. 그리고 물리더라도 나한테 달려오지 말고. 늦기 전에 도착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것 말고도 난 할 일이 많거든. 이 연구실 좀 봐요. 독을 가진 것들 천지야. 저기 저 탱크 보여요? 불개미가 우글거리지. 독을 내뿜는 이것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나저나 배가 고프면 케이크가 조금 있는데, 케이크 좀 드실래요? 어디다 넣어두었더라. 차도 있지만, 맛이 별로야. 그러지 말고 일단 좀 앉아요. 그러니까 코모도에 간다 이 말이죠?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나야 모르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테지. 코모도에는 열다섯 종류의 뱀이 있고, 그중 절반이 독사예요. 치명적인 건 러셀살모사, 대나무살모사, 그리고 인도코브라뿐이지만. 인도코브라는 세계에서 열다섯 번째로 가장 치명적인 독사고, 나머지 열네 종류는 여기 호주에 서식하죠. 이러니 내가 수경재배에 전념할 시간이 있나. 이런 뱀들이 사방에 널렸으니.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찾아와 귀찮게 굴지 않도록 해독제를 개발해야 했지. 몇 년이 걸렸어요. 그런 다음에는 어떤 뱀한테 물렸는지 알 수 있는 판독장치를 개발했어요. 판독장치를 보고 싶어요? 여기 독을 보관하는 냉장고에 두어 개 넣어두었는데, 어디 봅시다. 아니, 여기 케이크도 있잖아! 어서, 아직 신선할 때 좀 들어요. 내가 직접 구운 컵케이크에요. 케이크를 안 드시네. 그러지 말고 좀 들어요. 독 냉장고에 아직도 많아요.”
“뭔가 치명적인 것에 물리면 어떻게 되나요?”
그는 뭐 이런 바보가 다 있냐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눈을 끔벅거렸다.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당연히 죽지. 치명적이라는 말의 뜻이 그런거잖아요. 유일한 정답은, 이건 진짜 진지하게 하는 말인데, 물리지 말아요. 물릴 이유가 없어요. 그곳에 사는 뱀들은 당신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일찌감치 길에서 비켜날 테니까. 조심만 하면 사실 뱀은 걱정할 게 없어요. 당신들이 정말 걱정해야 할 건 해양생물들이지. 붉은쏨뱅이, 통쏠치, 바다뱀. 육지 동물들보다 독이 훨씬 강력해요. 통쏠치에게 쏘이면 통증만으로도 죽을 수 있어요.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물에 몸을 던진다니까. 나라면 바다 근처엔 가지 않겠어요. 독을 지닌 것들이 득시글거리니까. 정말 질색이야.”
“박사님께서 좋아하는 것은 뭔가요?”
“수경재배.” 그가 말했다.
“그게 아니라, 독을 지닌 것 중에 좋아하는 게 있냐고요.”
“있었지. 하지만 그녀는 날 떠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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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교라는 개념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기는커녕 두려움과 경계심이 앞선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아무튼 영국 특유의 필요에 따라 영국 사람들이 발명해낸 그 신은 믿지 않는다. 신도들에게 가발과 텔레비전 방송국, 그리고 (이게 제일 중요한데) 수신자부담 전화번호를 안겨주는 미국의 신은 더더욱 안 믿는다. 나는 그걸 믿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만 그 믿음을 간직하고, 제발 개발도상국엔 수출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맨 처음에 자이르로 쏟아져 들어간 건 선교사들이었다. 가톨릭 선교사들은 원주민들에게 신교도 선교사가 틀렸다고 가르쳤고, 신교도 선교사들은 가톨릭 선교사가 틀렸다고 가르쳤다. 신교도와 가톨릭교 선교사들의 의견이 유일하게 일치한 건 2천 년 동안 원주민의 방식이 틀렸다는 것이었다.
그 뒤를 바짝 쫓은 건 노예와 상아와 구리, 대농장 부지를 차지하려는 무역상들이었다. 벨기에의 레오폴 2세는 잔인하고 무자비한 식민통치를 시작하면서 ‘틀렸다’라는 말의 의미를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깨우쳐주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자이르의 면적은 벨기에의 약 80배다.
식민통치를 겪은 대부분의 나라처럼 자이르에도 무기력한 관료주의가 도입됐는데, 그것의 유일한 기능은 식민통치자에게 의사결정을 미루는 것이었다. 현지 관리들에겐 뇌물을 받을 때까지 일 처리를 막는 것 외에는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식민 통치자가 사라진 후에도 관료주의는 머리 잘린 닭처럼 제 발에 걸려 넘어지며 좌충우돌하고, 총을 쥐어주면 그 총으로 제 발등을 쏘면서 난리를 친다. 누군가 뭐든 하려고 하면 그걸 못하도록 막는 게 직업인 사람이 이례적으로 많은 나라는 십중팔구 예전에 식민 통치를 받았던 나라이다.
102, 118~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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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가진 건 전부 자신이 잃어버린 것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문명사회에서 가져온 선물은 그의 손에서 먼지가 되어 버린다. 나는 고릴라의 눈을 다시 바라보았다. 뭔가 아는 것 같은 명민한 눈동자였다. 그러다가 유인원에게 언어를 가르치려는 시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인간의 언어를. 왜 그러는 걸까? 우리 중에는 숲에 살면서 숲을 알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니 유인원이 하는 말이야 오죽할까? 타고 나지 않은 언어로 제 삶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할까? 어쩌면 고릴라들이 아직 언어를 갖지 못하게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42~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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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단독 12달러에 세상에서 가장 희귀하고 가장 위풍당당한 동물의 생사가 좌우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정작 물어봐야 하는 건 따로 있다. 예멘의 젊은이에게 코뿔소 단검이 남자다움의 상징이 아니라 그런 상징이 따로 필요한 애송이라는 신호일 뿐이라는 걸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
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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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의 보존은 늘 촌각을 다투는 일이다. 동물학자들과 식물학자들이 새로운 지역을 탐험하며 멸종되기 전에 얼마 남지 않은 종의 존재를 기록하고 있지만, 그건 불타는 도서관으로 허겁지겁 뛰어 들어가 다시는 읽지 못할 책의 제목을 적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과 같다.
물론 멸종은 수백만 년 동안 일어났다. 동식물은 인간이 등장하기 훨씬 전에도 사라졌었다. 하지만 멸종의 속도가 달라졌다. 수백만년 동안은 한 세기에 평균 한 종이 멸종했다. 그러나 선사시대 이후에 일어난 대부분의 멸종은 지난 300년 사이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최근 300년 동안 일어난 대부분의 멸종은 지난 50년 사이에 일었다.
그리고 지난 50년 사이에 일어난 대부분의 멸종은 지난 10년 사이에 일어났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가속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현재 해마다 1천여 종의 동식물을 지구에서 쓸어내고 있다.
자연의 자기치유능력이 제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그 능력을 발휘하는 데에도 한계는 있다. 우리가 그 한계에 얼마나 근접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시계가 어두워질수록 우리는 더 빨리 내달린다.
세계 구석구석의 오지에서는 칼 존스와 돈 머튼 같은 사람들이 멸종위기의 동식물을 지키기 위해 인생을 바치고 있다. 그들의 결의만이 위험에 처한 종이 멸종된 종으로 분류되지 않도록 막고 있는 유일한 버팀목일 때도 많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코뿔소와 앵무새와 카카포와 돌고래를 지키는 데 인생을 거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그들이 없으면 이 세상은 더 가난하고 더 암울하고 더 쓸쓸한 곳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345~3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