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오르는 언덕
어맨다 고먼 지음, 정은귀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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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드림, 다문화의 미국, 샐러드 볼의 세계. 어린 내게 미국에 대한 이미지는 항상 긍정적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떠난 사람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함께 숨 쉬는 곳, 그 다양성이 혼재한 상태에서 존중받을 수 있는 국가. 미국은 언제나 할리우드의 영화에서처럼 멋있었고, 뉴욕의 번쩍이는 전광판처럼 현란했으며, 그랜드 캐니언의 아슬아슬한 풍경처럼 장엄했다. 플로리다의 바닷가는 항상 청량했고, 라스베이거스의 꺼지지 않는 밤은 매혹적이었으며, 그 가운데 세계를 쥐고 있는 미국의 문화는 위대하기 그지없었다. 이미 언덕 위에서 다른 모든 나라를 굽어보고 있는 미국, 그 미국에 대한 환상이 깨진 건,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던 2015년의 일이다. ​ 


기실 미국의 인종 차별이 뇌리에 각인된 것은 대학교에서 봤던 크래쉬라는 영화에서부터였다. 2006년 개봉 이후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쥔 영화는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사는 LA를 무대로, 인종적 편견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영화를 보며 피부의 다름에 따라 지워지는 낙인과 그 낙인 아래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에 강렬하게 사로잡혔던 기억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미국에서 인종 차별을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이미 남미에서의 일 년은 미국에 대한 환상을 접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남미 수탈과 식민의 역사에서 미국은 항상 주도적이었고, 미국을 빼놓고는 남미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타국의 고통과 신음으로 이룬 부국의 꿈은 내겐 너무나 덧없었다. ​ 


플로리다의 바다는 아름다웠고, 펜서콜라의 쇼핑몰에선 미국식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정점을 즐겼지만, 샌프란시스코의 빈부격차는 거리로 향하는 눈을 돌리게 만들고는 했다. 바로 직전에 쿠바에서 한 달을 있어서인지, 그 대비가 더욱 선명했다. 모두가 가난하지만, 부랑자가 없는 쿠바와 모두가 부자지만 길거리에 노숙자가 넘쳐나는 미국. 지하철 역사를 나와 다섯 블록이 떨어진 숙소로 가며 마주한 노숙자의 군상은 J.D.밴스의 힐빌리의 노래가 묘사했던 가난보다도 더욱 비참했다. 애팔래치아 산맥의 백인들보다, 대서양을 건넌 선조에게 물려받은 노예의 족쇄를 여전히 풀지 못하는 흑인 하류층의 비참함이 더욱 선명했다고 할 수 있겠다. ​ 


능력주의의 덫에서 세습되는 능력과 부의 미국, 다문화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인종 차별, 샐러드 볼이라는 변명으로 나뉘고 쪼개져 섞이지 않는 문화와 인종들. 그 덧없는 자본주의의 끝에는 도널드 트럼프가 있었다. 그의 집권 4년 동안 미국은 얼마나 신음했는가. 어맨다 고먼의 우리가 오르는 언덕은, 이렇게 분열되고 잘게 쪼개진 미국을 봉합해내는 '젊은' '흑인' '여성'의 시이다. 신음하는 미국을 어루만지는 그녀의 담대한 발걸음은, 어쩌면 미국이 다시 언덕을 오를 수 있음을, 미국인이 물려받은 자부심을 이룰 수 있음을, 그들이 발 디딘 과거를 바로잡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녀를 나이와 인종 성별로서 표현하는 것은 이미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듯 소수자의 한 사람이 그려내는 미국 속에서, 그들이 닦았던 약속을 발견하는 일은, 참 기대되는 일이었다. ​ 


'Let the globe, if nothing else, say this is true: That even as we grieved, we grew/ That even as we hurt, we hoped,/ That even as we tired, we tried./ That we'll forever be tied together./ Victorious,/ Not because we will never again know/ defeat,/ but because we will never again sow/ division./ 다른 것 아닌 이 지구가 말하게 하자, 이 진실을:/ 비탄 속에서도 우리는 성장했음을,/ 상처 입으면서도 우리는 희망했음을,/ 지쳐 있었음에도 우리는 노력했음을,/ 영원히 함께 뭉치게 될 것임을,/ 승리할 것임을,/ 우리가 다시는 패배를 모를 것이라서가/ 아니라,/ 다시는 분열의 씨앗을 뿌리지 않을/ 것이기에.'


#어맨다고먼 #우리가오르는언덕 #은행나무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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