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가 사라진다면 - 2023년, 영어 식민지 대한민국을 가다
시정곤·정주리·장영준·박영준·최경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이제 막 두돌을 넘긴 고종사촌동생은 아직 말을 잘 하지 못한다. 그런 딸을 보며 고모는 이러다 다른 아이들보다 말을 늦게 배워 공부에 지장이나 생기지 않을까 하는 눈치였다.

일주일전 고모가 동생을 안고 집에 들렀다. 얼굴에는 웃음을 한껏 띄고와서는 아이가 말을 한다며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웃기게도 사촌동생이 하는 말은 우리말이 아니라 영어였다. 물론 발음이 명확하지 않아 잘 알아들을수는 없었지만 '할루' 하며 손을 앞뒤로 흔드는 모양새가 'HELLO'를 말하겠거니 짐작할 수있을 정도였다. 귀엽다는 생각도 잠시 한글도 제대로 못하던 아이가 어떻게 영어를 말하게 되었는지 고모에게 물었다. 고모의 말이 '요즘엔 영어 못하면 취직도 어렵다며? 애가 크면 더 할꺼 아니야. 그래서 집에서 죽어라 CNN만 틀어놓고 있었지 뭐. 맨날 노래로 이것저것 가르치고.. 그랬더니 조금씩 따라하더라고' 그런 고모에게 그렇다고 한글도 다 못 깨우친 애한테 영어만 냅다 가르치면 되냐고 한마디 뱉었다가 나는 그 뒤로 삼십분간 고모의 일장연설을 들어야했다.

고모의 열변에는 아파트건물의 아이들중에 7.80%가 영어를 줄줄말하더란다. 그런 아이들틈에서 기죽지 않으려면 어릴때부터 지속적응로 영어교육이 이뤄져야한다는 것이다.

물론 영어가 국제화시대를 맞는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처럼 30년이 지나고, 60년이 지나고, 100여년이 지난 후에 한글을 깨우치기전에 영어를 먼저 깨우쳐 유창하게 말하는 아이들이 성인이 된다면, 그런 현상이 계속 진행된다면 100여년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이 한국임을 증명하기란 어쩌면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을 찾는것만큼 어려워질지도 모를일이다.

지금도 밖을 나가면 간판에 적힌 뜻도 모를 영어들과 무심결에 튀어나오는 영어단어들에 더이상 생소함을 느끼지 못하는 실정인데, 이러한 현상이 더 지속되면 정말로 우리나라는 '우리'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영어에 갇쳐 서구의 정체정을 갖고 살아가야될지도 모를것이다.

한국인이여. 당신은 한국인이라 불릴만한 자격을 갖고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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