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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의 사자 - 복음서의 탄생
장필리프 파브르 지음, 이정은 옮김, 허영엽 감수 / 가톨릭출판사 / 2024년 8월
평점 :
어떤 젊은이가 알몸에 아마포만 두른 채 그분을 따라갔다. 사람들이 그를 붙잡자, 그는 아마포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다. (마르 14, 51-52)
이 책은 복음사가 마르코의 생애와 마르코 복음의 탄생의 비밀을 이야기한다.
마치 마르코 복음의 시작에 앞선 시간과 사도행전의 시간을 모두 아우른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나 최후의 만찬 때에 그는 그 사건의 중심에 있지 않고 주변부에 있는다.
사건 때에 예수님을 뵙지 못한다. 오히려 그 사건을 준비하는 제자들을 돕는 역할을 한다. (나귀를 전하거나 만찬 장소로 안내하는)
그러나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그 날, 그 장소에서 마르코는 예수님 앞에 선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처럼 달아나버린다.
(이 책은 아마포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난 인물이 마르코라고 가정한다.)
이 사건은 마르코의 삶을 평생 관통하는 상처가 되고, 가장 아픈 곳이 된다.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삶의 모든 과정에서 복음을 작성하게 된다.
마치 예수님께서 악에 굴복함으로써 악을 물리치셨던 것처럼, 마르코 역시 가장 약한 곳에서 가장 강한 분을 받아들이게 된다.
복음서 중 가장 먼저 쓰여진 마르코 복음을 읽으며, 단 한 번도 어떻게 이 복음이 쓰여졌을까? 라는 의문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이 책이 더 흥미로웠다. 두께에 압도당할 수 있지만, 학술서처럼 딱딱하지 않고 오히려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속에서
주인공과 함께 고뇌하며, 책장을 계속 넘기게 되었다. 이미 주인공이 복음서를 작성한다는 결론을 알고 있지만, 흩어져있던 퍼즐이 맞춰지듯
단편적인 성경 지식들을 정리하는 과정들이 놀라웠다.
야이로는 나의 상처가 곧 내가 메시아를 만나는 장소였음을 상기시켰다. (P.124)
예수님의 죽음 앞에 상처받지 않은 제자가 있을까?
베드로 역시 예수님의 고난 앞에 세 번이나 그분을 모른다고 말하는 상처를 얻었다. 마르코보다 앞서 달아났다.
그런 상처와 상처 이후의 시간을 통해 '부활은 우리가 겪은 실패를 바로 우리가 다시 일어서는 장소로 만들지' (P.403) 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다.
유다 이스카리옷의 입맞춤, 올리브 동산에서 달아난 일, 수탉의 울음! 그러한 실패가 인간의 실패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실패를 예수님은 죽기까지 인간을 향한 사랑으로 묵묵히 받아들이신다.
낮은 곳에 있는 우리를 가장 높이 데려가시기 위해, 그분은 가장 낮은 곳으로 더 낮아질 수 없을만큼 낮은 곳으로 스스로 임하신다.
그분의 영광을 온전히 말하기에 인간은 참으로 나약하다. 그렇기에 인간은 스스로의 고통과 나약함을 먼저 고백해야 한다.
환희와 빛, 고통을 지나 영광으로 이어지는 예수님을 우리는 과연 완전히 전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전혀 부족함이 없으셨어.
또 충실하셨고. 그분께서는 죽기 전에 갈릴래아에서 만나자고 약속하셨지.
우리가 당신을 배신하고 저버리고 부정할 거라는 사실을 아시면서도 말이야.
그분께서는 그렇게 당신이 인간성의 가장 비열한 지점까지 우리를 찾으러 내려오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리신 거야.
그분께서 보기에 더없이 비천한 사람은 없어. 예수님께서 키드론 골짜기에서 자네를 바라보신 그 눈길을 떠올려 보게.
그러면서 자네에게 만나자고 약속하신 거야. 자네가 없이 약해진 상황에서도 그분께서는 자네를 단단하고 흔들림 엇이 만들 수 있다고 자네에게 속삭이신 것이지.
예수님께서 자네에게 하신 일을 보게! 나약한 자네는 바위보다 더욱 단단해지지 않았는가!
탈리아가 그토록 일찍 죽은 일, 페르게에서 자네가 바오로에게 보인 소심함, 이집트 바다에서 겪은 풍랑, 알렉산드리아에서 겪은 일...
예수님께서는 자네가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만 의존하지 않을 결정적인 이유를 만들려고 모든 것을 활용하셨어.
그리고 똑같은 이유로 자네가 오로지 그분께 의존하게 만드셨지. 바로 그것이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 자네에게 하신 약속이라네. 각자가 받은 약속이 다르지. (P.394-395)
마르코가 복음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베드로의 말이다.
나약함을 감추라고, 스스로 강해지라고 강요하는 세상속에서 오히려 자신의 나약함을 지니고 그분을 만나러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놀랍다.
우리의 나약함이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시작이 된다.
알렉산드라의 사자, 마르코는 이 깨달음에 드디어 복음을 작성하게 된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마르 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