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 생존자와 유가족이 증언하는 10·29 이태원 참사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23년 10월
평점 :
한 사회의 품격은 죽은 이들을 대하는 방식에 드러난다.
사자에 대한 태도는 결국 그 사회가 살아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탈리아 영화감독 우베르토 파솔리니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건이 일 년 전에 벌어졌다. 159명의 시민들이 한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다리가 무너진 것도 아니고, 미사일 공격이 있던 것도 아니고, 건물이 무너지거나 기차가 탈선한 것이 아니라
서울 시내 한복판 길 위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믿고 싶지 않은 일이라 초반에는 관심을 갖고 애도를 하다 어느새 정치공방으로 이어져 이 사건에
마음을 닫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유가족들이 이태원 참사를 알리며, 특별법 제정을 위해 무더운 여름
국회까지 행진했었다는 사실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무겁게만 느껴지던 이 참사에 마음과 눈을 모두 닫은 채 살아가다 겨우 이 책을 통해 그 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13명의 참사 기록단이 14명의 생존자, 유가족을 만났다. 재난 만큼 위험한 고립에서 벗어나 기록단을 통해 세상을 향해 이태원 참사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책임의 외면, 권리의 침해, 정의의 공백 속에서 오늘도 유가족들은 진실을 알고 싶은 참담한 마음을 시청 앞 광장에 내걸었습니다. (5쪽) 세월호 참사 가족들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 사과를 하는 장면을 보았다. 자신들이 더 열심히 활동하지 않아서 자신들만 겪어도 충분했을 고통을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까지도 겪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는데 왜 슬픔을 겪은 고통당한 이들이 또 다른 고통 당한 이들을 위로해야 하는 것일까? 도대체 이 재난의 피해자는 누구이고, 당사자는 누구일까? 책장을 넘기며 수많은 물음표만 늘어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과 글에 담긴 힘과 그 안에 담긴 유가족들과 생존자들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으며, 기록단이 그랬듯 나 역시 그들의 진심을 진심으로 응답하고 싶었다. 이 책을 읽는 다는게 그 응답은 한 몸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건네는 위로가 연대가 되고 우리가 모두 따뜻한 온기를 품은 사람이기에,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기에 귀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유나씨의 언니 유진씨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길 위해 매일 만나러 온다고 했다. (209쪽)
이제 그들에게 제자리는 어디인 것일까? 159명이 없는 세상에서 그들에게 제자리는 어디일까?
유가족 협의회의 이상적인 마무리는 책임자의 처벌과 제대로 된 추모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책임과 기억, 불가능한 일이 아닐텐데 벌써 1년 넘게 두 가지 모두 미루어지고만 있다.
이태원은 오래전부터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 주로 활동하는 곳이었고, 이태원에 오면 누구든 간에 소수자화되는 듯해요. 죽음이 소외된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씀드린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이태원이라는 장소성 때문에 이 참사가 더 갈 곳 없는 사고가 되는 것 같아요. (306쪽)
'거길 왜 갔어?'가 아니라 '왜 그들이 돌아오지 못했는가?'의 질문을 던지며, 책임과 기억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태원 참사가 어떻게 정치적인 얘기일 수 있을까? 심한 말들은 사람들의 삶에 스미는데, 이미 가족을 잃은 큰 고통에 빠진 이들에게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말들과 무관심으로 상처를 더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 이것은 시스템(구조)의 문제이다. 우리의 분노는 어떤 대상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근본적인 변화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 변화 안에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다. 덮어질 수도 없었던 일이 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의 참사를 막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그저 이 참사 자체만을 두고 충분히 애도하고, 진실을 규명하며, 책임을 물어야 하는 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희생자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회에 사는 것은 참 불행하다.
사람이 죽었는데, 가족을 잃었는데도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말을 던지는 이들이 존재한다.
타인의 고통에 함께하지 않는 사회는 어떤 이의 고통도 품어내지 못할 것이다.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과 참사를 대하는 대한민국의 자세는 곧
지금 살아있는 국민 전체를 대하는 자세와 일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