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운동 - 독일, 서유럽, 미국
잉그리트 길혀-홀타이 지음, 정대성 옮김 / 들녘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지금껏 세계혁명은 단 둘 뿐이다. 하나는 1848년에, 다른 하나는 1968년에 일어났다."

월러스틴의 말이다. 아...그랬던가? 생각해보니 그렇다. 일국적이고 국지적이고 지역적 혁명이 아니라, '세계혁명'이란 것은 딱 두 번 일어난 거로군.

1968년에 관한 책은 처음 읽어본다. 혁명사에 관한 책을 싫어하는 나의 편견 탓이다. 혁명사가 싫은 이유는 저자의 정치적 입장이 지나치게 많이 투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영움담이나 단순히 어떤 경험을 공유한 기억공동체의 회고담 정도에 불과하게 될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 잘 안 읽는다. 게다가 68혁명에 관한 책은 주위에서 줏어들은 바가 너무 많아 일견 식상해져버려서 읽을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도발'과 '전복', '규칙이나 금기에 대한 위반', '상상력에 권력을!'과 같은 것이 지금은 너무나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하여튼 나는 그게 매우 진부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해서 맑스/레닌주의처럼 68혁명을 폄하하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 책을 보고 사서 볼 결심을 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우연히 펼친 페이지에서 다음의 문장을 보고 결심을 굳혔는지도.

"사회에는 주소가 없다. 사회에 대한 요구는 조직으로 보내야 한다." - 니콜라스 루만

이 말은 되씹기에 따라서 상당한 의미의 과잉을 함축하고 있다. 이게 마음에 들었다.  다행히 이 책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나 이념적 태도를 68년에 지나치게 투사하려는 짓을 '덜' 하고 있다. 최대한 객관적 평가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기서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한다는 의미는 가급적 신조어나 신개념을 통해 분석대상에 변형을 가하거나 재해석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의미다. 근래에 좀처럼 보기 힘든 저자의 이런 태도 때문에 맥락과 환경이 서로 다른 사회운동간의 비교가 가능해졌다. 또 그것을 이 책은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하 스포일러 주의)

68혁명을 주도한 세력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딱 잘라 두 개의 경향으로 구분한다면, '반권위주의'파와 '노동계급과의 연대'파다. 이 두 개의 경향을 묶어 그냥 '신좌파'라고 통칭하고, 기존의 좌파들-공산당이나 사회민주주의, 노동조합세력들-을 '구좌파'라 통칭한다. 신좌파는 구좌파에 대한 반발로부터 나왔다. 구좌파에 대한 반발이기는 하나 반권위주의파와 노동계급과의 연대파는 입장 차이가 크다. 반권위주의파는 더이상 노동계급에게서 혁명의 주체성을 발견할 수 없음을 선포하고, 청년과 학생을 새로운 혁명계급으로 선언한다. 또한 '행동'을 통한 투쟁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기동전에 대한 강조라 할만하다.

반대로 노동계급과의 연대파는 타협일로를 걷던 노동자정당과 조합을 비판하지만 노동계급이 혁명의 주체임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이 선택한 것은 노동계급의 혁명성 강화를 위한 계급적 연대다. 또한 반권위주의파와 다르게 '조직'을 강조한다. 이 둘은 '신좌파'로 서로 묶여있었지만 68혁명기간내내 투쟁의 목적과 방법을 두고 갈등을 겪는다. 하지만 68혁명에 노동자들의 참여는, 프랑스를 예외로 한다면 극히 미미했다. 즉, 노동계급과의 연대파가 신좌파로 묶여 있긴 했지만 반권위주의파의 영향아래 있었다는 얘기다. 노동계급과의 연대파를 대표하는 것이 트로츠키주의자와 마오주의자였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탈리아의 '노동자주의'는 노동계급과의 연대파에 속하면서도, 공장에서의 반권위주의를 요구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참여민주주의', '자치', '자주관리', '자율' 등 반권위주의파의 아젠다를 얼마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 이탈리아 노동자주의였다.  

반권위주의파의 아젠다가 급부상함에 따라 신좌파내의 노동계급과의 연대파가 급속히 이탈해간다. 그 결론은 노동계급과의 연대파의 구좌파로의 흡수였다. 몰락의 위기를 맞았던 구좌파는 싱싱한 새 피를 흡수함으로써 기사회생하게 된다. 구좌파는 '임금인상안에 관한 협상'등을 발빠르게 제시함으로써 '참여민주주의'나 '자주관리'등의 아젠다의 힘을 죽이고 68혁명을 잠재우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체제가 원하던 바로 그것이었다.  반권위주의파는 행동을 통한 투쟁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대안사회적 실험을 벌여나간다. 여기에 다시 갈등요소가 부상한다. '행동'을 강조하는 쪽과 '실험'을 강조하는 쪽. 따라서 반권위주의파는 지속적으로 대중동원에 실패한다. 폭로와 의식혁명을 겨냥한 그들의 돌출행동이 잦아짐에 따라 점점 더 식상해지고 대중적 공감에 실패하고 만다. 이제 그 일부는 반권위주의파의 기본정신과 완전히 대비되는 테러리즘으로 돌아선다. 이상, 이 책에 대한 내 나름의 요약정리다. (스포일러 끝.) 

그렇다면, 오늘날 68년이 나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사회변혁의 주체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항상 새롭게 설정된다는 것, 구체제나 기존세력은 항상 새롭게 형성되는 혁신의 피를 공급받아 기사회생한다는 것-즉, 새로운 것에 기생한다는 것. 그러한 기사회생을 '진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교훈은 사회에는 주소가 없다는 것, 사회에 대한 요구는 항상 자신에게  돌려져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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