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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권리는 하늘이 내렸나?
마저리 켈리 지음, 강현석 옮김 / 이소출판사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은 아무래도 잘못 붙여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본의 권리는 하늘이 내렸나?'라는 책의 제목은 곧바로 누구나 '아니오.'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식상함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도 그러한 식상한 관념들로 꽉 차 있는 책이 아닐까하고 오해를 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이 책은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꼭 읽어야 할 필독서다. 특히 우리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며 절대적 영향력을 갖기 시작한 기업에 대해 그런 영향력에 걸맞는 사회적 책임성을 요구하고 사회의 공공선에 복무하도록 기업을 바꾸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아니, 1997년 이후부터 기업의 윤리경영, 사회책임경영, 지속가능경영과 같은 개념들이 우리를 찾아왔다. 이 개념들의 부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개념들이 포괄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과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윤리적 태도를 촉구하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기업의 이해관계자를 주주나 종업원들만으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고, 소비자와 지역사회, 환경을 포함한 '사회일반' 으로 확대정의하는 관념의 변화가 깔려 있다. 소비자와 시민들의 자발적 촉구로부터 기업들이 변화가 시작된 경우도 있고, 기업들이 변화된 상황에서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치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 또한 시민운동 단체 및 진보적 활동가들에 의해 이끌려 나오는 경우도 있다. 누가 주도하든지간에 그것은 크게 다음 세가지 문제의식속에 추진되고 있다.
(1) 지금까지의 기업활동(기업의 목적을 비롯한 총체적 기업활동을 말한다)을 그대로 해나갈 경우, 현 경제는 지속가능한 경제가 되지 못한다는 것.
(2) 소비자 및 시민들의 의식과 이익행위(소득을 얻고 소비하는 다양한 형태들)의 동기가 개인적인 것에서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것으로 변화했다는 것.
(3) 막강해진 기업의 사회적 영향력에 비해 그 힘을 제어하고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것.
윤리경영이든, 사회책임경영이든, 지속가능경영이든 그것이 기업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있고, 그럴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을 기업활동의 이해관계속에 '참여'시키고, 그로 인해 기업활동에 관심을 갖고 보다 사회의 공공선에 기여하도록 조정하도록 하는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사회책임투자>(에이미 도미니, 필맥), <착한 기업이 성공한다>(필립 코틀러, 리더스북) 등을 보라. 물론 이러한 분위기에 대해 그것이 단지 마케팅의 일환일 뿐이라는(즉, 속임수) 평가도 있고, 실제 그런한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다소간 거짓을 함축하고 있을지라도 마케팅 효과를 가지게 할 정도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변화들 속에서 <자본의 권리는 하늘이 내렸나?>를 읽는 것은 기업에 관한 지금까지의 법 제도와 통속적 관념을 완전히 뒤엎어버리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기업이 빈부격차를 줄이고, 사회의 제 문제를 해결하며, 사회의 공공선에 기여하도록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 대안을 발견하는 일이 될 것이다. 저자 마저리 켈리는 '기업윤리'라는 잡지를 발간하며, 윤리경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을 하는 활동가이자 컨설턴트다.
"기업 개혁가랍시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은, 위에서 칸트가 제시한 명령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종업원을 잘 대우하세요. 그래야만 주주들도 함께 번창할 수 있어요.' 또는 '환경보호를 실천하세요. 그래야만 이익이 늘어날 테니까요.' 불행하게도 이는 사회 투자 전문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필자가 관여하고 있는 <기업 윤리> 또한 특별히 나을 게 없다. 나를 포함하여 사회 투자 분야에서 활동하는 모든 사람들은 사회적 평가를 받는 투자가 그렇지 않은 투자보다 높은 성과를 거둔다고 거듭 주장해왔다-이는 얼마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어떤 면에서 자기파괴적이다. 왜냐하면 은연 중에 주주 수익이 유일한 잣대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여타의 번영의 잣대-임금상승, 재정이 튼튼한 학교, 건강한 환경 등-또한 중요하다고 주장해야 한다. 그러기 전까지는 우리가 가져야 할 마땅한 권력을 제대로 주장한다고 보기 힘들다."
마저리 켈리는 기업이 '주주의 이익을 위해 복무한다'는 기업에 관한 법 제도, 기업의 재산권 관념과 소유권제도를 고치고, 사회적 책임성에 대한 부분을 법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켈리가 보는 시각은 정확하고 공정하다. 이는 기업이나 사회책임 투자자들이 '주주이익'과 '사회적 책임성'을 연계시키고 동일시하려는-현행 제도에서는 그것이 명백히 모순을 함축한 딜레마라는 것을 은폐하려는-것이 주주의 지배아래 기업을 묶어두려는 통속적 관념에 근거한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사회책임경영이나 지속가능경영은 법제화보다는 기업의 통상적 양심에 호소하거나, 소비자의 힘을 빌어 기업이 이끌려나올 것을 기대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켈리가 제안하는 실천가이드는 명쾌하다. '주주이익의 극대화'라는 통속적 관념과 법 제도를 합리적 방향으로 수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몇몇 주에서 이미 실천되고 있다. 또한 기업의 소유구조를 민주화하고 주주라는 '귀족주의'로부터 종업원과 지역사회 등이 골고루 참여하여 기업의 전략을 결정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이런 주장 속에서 마저리 켈리가 제안하는, 법제화를 목표로하는 새로운 개념들은 창의적이고 실용적이며, 향후 연구할 가치가 풍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