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딸, 평강 높은 학년 동화 15
정지원 지음, 김재홍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어린시절 내가 읽은 교과서 속의 평강공주는 울보공주였다. 울 때마다 내뱉은 예언 때문인지 바보온달과 결혼하게 되지만 평강은 바보온달을 온달장군으로 변모시켜 고구려를 지키게 한다는 줄거리가 아직도 선명한 것을 보면 평강공주의 이미지가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뼈대만 남아있는 나의 기억 속에 아름다운 이야기 한 편이 새롭게 펼쳐진다. 왜 평강이 울보공주였을 수 밖에 없었는지, 어떻게 온달과 만나게 되는지, 온달과 결혼까지 가게되는 이유는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기 때문에 교과서 몇 페이지 속의 이야기들은 탄탄한 인과관계를 갖는 장편동화로 살이 붙고 두툼한 두께만큼 책을 읽는 재미도 커지게 된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대중가요 가사를 쓰기도 했다는 정지원 작가의 글은 아름다움과 부드러움이 가득하며, 섬세하고 풍부한 감성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질감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 속의 평강이 수동적이고 숙명적인 여인의 상이었다면 새롭게 탄생한 평강은 탄생부터 예사롭지 않은 태양의 딸이다. 보편적으로 태양은 남성성을 상징하는 점을 생각한다면 작가의 가치관과 상상력의 플러스로 평강은 강단 있는 진취적인 여성으로 재탄생된다.




 p26 "내가 태양의 기운을 받고 태어났다면 이 새처럼 살아 내야 할 것이다. 불길 속에서 타 죽을 듯이 고통스러워도 쓰러지지 않고 꼿꼿하게 걸어가겠다. 나는 결코 지지 않을 것이다. 나를 거꾸러뜨리려는 모든 것과 맞서 싸울 것이다.

 p102 '언제는 내게 길이 있었단 말이냐? 길이 없다면 내 온몸으로 뚫고 나가 길이 되겠다. 어디 끝까지 해보자.‘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새어머니의 시샘 속에서 자라는 평강이 온달을 만나는 장면은 영화속처럼 낭만적이다.

  p45 바람이 불자 솔숲에 피어난 산벚꽃들이 하르르 하르르 꿈결같이 연하고 보드라운 꽃잎들을 날렸습니다. 온 천지에 연분홍 꽃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평강의 검고 찰랑거리는 긴 머리카락에도, 온달의 어깨에도 꽃잎들이 나붓나붓 내려앉습니다.

  

 어리숙한 바보가 아니다. 온달이라는 이름은 반달이 아닌 꽉 찬 보름달을 뜻한다. 달의 여성적인 상징을 생각한다면 태양의 평강과 달의 온달은 틀림없는 천생연분이다. 달빛의 부드러움을 가진 그는 천한 신분의 서러움을 받으며 자랐지만 꿈을 잃지 않은 당당함을 가지고 있는 진짜 남자다. 인연인듯 그가 연주하는 피리는 평강의 어머니가 즐겨 불러주던 자장가와 일치한다. 이 자장가는 평강과 온달의 주제가가 되어도 좋을 듯 싶은 솔로몬의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는 명언과 같은 맥락이다. 초등 고학년이면 부모로부터 독립이 시작되는 시기다. 정신적으로 아픔과 슬픔을 이겨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할 것이다. 혹시라도 이 말이 평강의 마음을 위로한 것처럼 우리 아들 딸들이 위로 받기를 소망해 본다.

 p14 “세상이 아무리 슬퍼도 꽃이 피고 눈 내리듯 슬픔도 지나간다네. 세상이 아무리 기뻐도 꽃이 지고 바람이 불 듯 기쁨도 지나간다네. 모든 것은 꿈처럼 흘러간다네.”

  한 순간의 낭만과 운명같은 우연에 넘어갈 평강은 아니다. 그런 그녀가 온달을 선택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온달은 평강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만큼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 놓을 수 있는 멋진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을 해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그런 세상에서 사람답게 사는 꿈을 가진 사람이다.

p111 "공주마마, 근심의 절반을 이곳에 묻고 가소서. 그리고 그럴 수만 있다면 그 고통을 제게 제게 나누어 주소서.“

“저는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 제일 먼저 두려움과 싸움을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겁니다. ‘이 숲이 아무리 울창해도 하늘에서 보면 그 길이 보인다. 하늘에서 보면 숲은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니까. 이제 나는 하늘의 눈으로 보리라’ 하고 말입니다.”

“예, 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빛나는 것은 저 별들이 어떤 어둠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빛을 믿고 걸어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미리내는 하늘의 물길이 되는 것입니다.”

 평강과 온달의 이야기가 메인 스토리이지만 고구려의 역사나 역사적 인물들을 사이드 메뉴로 스치는 것도 아이들이 국사를 공부하는 데 충분하 동기 부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에서 10월마다 지낸 동맹이라고 하는 제사와 유화부인과 추모대왕(주몽), 을지문덕을 익혀 둘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화부인을 신격화하여 추앙하는 장면들은 남성중심의 역사관에 물들기 전인 초등 5학년 정도의 아이들에게는 특히 권장할 만한 부분으로 생각된다. 작가는 마치 보물 찾기 놀이를 하듯 평강과 온달이 가는 이야기 길마다 재미있는 장치들을 숨겨 둠으로써 보물을 발견할 때의 기쁨을 독자로 하여금 누리도록 하고 있다. 독자마다 발견하는 보물의 가지수와 종류는 모두 다르겠지만 오랜만에 참 좋은 책을 만나 여러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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