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가쿠타 미쓰요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라는 제목에 이끌려 책을 골랐는데 세상의 모든 책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도록 하고 있다.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만 생각했지 책을 주체로 하여 만들어진 여러 편의 단편들을 접하면서 그동안 내가 만난 책들에 대해 감사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아주 재미있는 책을 만나면 나는 읽으면서 자주 생각한다. 혹시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도대체 어찌 되었을까?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래도 이 책이 없었다면, 이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확실히 내가 본 세상은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이 있어서 좋았다. 다행이다.
- 191p 작가의 글 중에서-
[그와 나의 책장]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애인의 집을 방문했는데 그의 책장에 있는 책들이 나의 책장과 너무 닮아 있다면 운명을 느낄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동거 생활이 길어질수록 그들이 공유하는 책들도 많아진다. 기존의 책장만으로는 부족하여 늘어난 살림이 그와 나의 책장이다. 책을 읽고 후기를 함께 나누고 책을 읽으며 같은 장면에서 눈물 짓지만 그들에게도 이별은 닥친다.
p69 누군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고,그래서 헤어진다는게 이런 거구나. 비로소 깨닫는다. 책장을 공유하는 것과 같은것, 서로의 책을 교환하고 구석구석까지 읽고 같은 광경을 기억하는 것, 기억도 책도 뒤죽박죽되어 하나가 되었는데 그것을 억지로 떼어내는 것. 자신을 잃느냐, 다시 일어서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자신의 일부가 된 것을 떼어 내어 영원히 잃게 된 것이다.
불행의 씨앗]
대학을 입학하여 처음 사귄 남자친구가 참 좋아한 책이 있다. 자신의 책이었는데도 어려워서 한번도 읽지 않은 책이었다. 그런데 애인을 자신의 친구에게 빼앗기는 일을 시작으로 그녀는 전 재산을 도둑 맞고 여행지에서 교통사고를 당하는 불행이 계속 이어진다. 불행의 씨앗은 그 한 권의 책이라 믿으며 친구를 통해 옛 애인에게 전해 주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실직과 두 차례의 이혼을 경험한 후였다. 친구와의 우연한 만남에서 그 책이 그에게 전달되지 않았음을 알고 안타까움을 전하지만 친구가 받아들이는 책에 대한 태도를 보며 다시 그녀에게로 되돌아 온다.
p95 그렇게 나도 그때 미나미가 했던 말을 이해한다. 이 낡고 난해하고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책은 세월이 지날수록 의미가 변한다. 슬픈 일을 한 번 경험하면 의미가 바뀌고, 새로운 사랑을 하면 다시 의미가 바뀌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면 또 의미가 바뀐다. 미나미처럼 눈으로 문장을 좇으면서 눈물을 흘린적도 있다. 소리를 내어 웃은 적도 있다. 1년 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의미를 깨달으며 나는 뼈저리게 절감한다. 내가 지금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서랍속]
외동딸로 고이 자란 그녀는 원하는 남자와 쉽게 잠자리를 같이 한다. 그런 그녀가 좋아하는 일 중엔 헌책방 산책이 있다. '전설의 고서'를 찾기 위해서이다. 그리 유명하지 않은 작가의 초판인데 책 뒤표지에 읽은 사람의 기록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고 한다. 책을 읽고 기록을 하고 다시 팔고, 또 다른 사람이 사서 읽고 기록을 남기고 하는 식으로 채워진 기록들이 이 책을 찾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녀는 전설의 고서를 함께 찾는 과정에서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와는 단 한번도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책 뒤편의 기록을 찾아 다닌 이유는 무엇일까?
p114
슬픈기억일지도 모르고 즐거운 기억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던 어떤 풍경이 적힌다는 거잖아. 그런 걸 인류의 기억을 담은 서랍이라고 해야 하나?
제대로 표현은 못하겠지만, 아주 슬펐을 때나 기뻤을 때 눈앞에 펼쳐진 세계가 있다고 쳐. 그건 세상의 조그만 자투리일 뿐이지만 그 사람에게 있어서 그 자투리의 냄새나 색은 완벽한 것이었을 거라 생각해. 왠지 사는 게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살면서 완벽한 한 가지만은 남기고 싶다고들 얘기하잖아. 그런데 그거,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나도 그 책을 찾아보고 싶어.
[미쓰자와 서점]
마치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인 듯해서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진짜 책을 좋아하는 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의 집 근처에는 미쓰자와 서점이 있다. 아이의 어린 시절 속에 그 서점은 꿈의 도서관이었다. 그 서점이 더욱 특별했던 것은 직원이자 주인인 할머니 한 분 때문이었다. 얼마나 책 읽기를 즐겨하시는지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할머니의 책읽기를 방해하는 것이 미안하여 서점 가는 일이 뜸해질 정도였다. 그랬던 그가 서점에서 책 한 권을 훔친다. 너무도 쉽게....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아이는 작가가 되었다. 작가가 된 그가 다시 찾은 서점엔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손녀가 고마운 마음으로 늦은 책 값을 받는다. 할머니의 서점은 마을 사람들을 위한 도서관으로 활용할 생각이라고 하면서.....
p138
어렸을 때 할머니한테 물어 본 적이 있어요. 책 어디가 그렇게 재미있느냐고. 그랬더니 무슨 소릴 하냐는 얼굴로 저를 보시고는 '그저 펼치는 것만으로 어디든 데려가 주는 건 책밖에 없지 않니.' 하시더라고요. 이 마을에서 태어나 도쿄 한번 가보지 못한 할머니한테 책은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꼭 읽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 내 삶의 곳곳에서 나를 변화시키고 나에게 용기를 주고 나와 함께 슬픔을 같이하고 내가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고마운 책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