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같은 픽션 또는 논픽션, '칼의 노래'

칼의 노래 (1.2권 합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양장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칼의 노래'라는 제목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묵향을 느꼈다. 벼루 끝에서 묻어난 먹물 같은 내음. 한 시대와 삶을 진하게 살다간 이의 이야기임을 감지한 탓이었을까?

이 소설은 난중일기와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 등을 역사적 사실에 접근하여 쓰여진 것으로 작가는 물론 '픽션으로 읽혀지길 원한다.' 하였으나 이쯤 되고 보면 그저 픽션만으로는 읽혀지지 않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칼의 노래>는 '난중일기를 재구성한 것인가'라고 여겨질 만큼 개인의 독백 같기도 하고, 1인칭 시점을 갖기도 한다. 그래서 격정적이고 치열했을 전투는 마치 묵향처럼 은근히 전개되고 시끄러움이 없다. 그것은 행동 위주의 서구문명과는 또 다른 정적 행위의 동양문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난세에 영웅이 있다'고 영웅이고도 남을 충무공. 그러나 그는 자신의 방에 누워서 아픈 몸에 신음소리 한번 없이 조용히 밤을 보냈어야 했던, 아들의 죽음에도 헛간을 빌려 눈물을 흘려야 했던 비극적 인물상을 보인다. 그것이 암울한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덧없이 목숨을 버리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어지러운 세상. 자신을 내세워 높이지 않는 진중한 사람이 그리운 시대다. 그리고 차갑고 낮게 노래하는 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