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임은 이건 또 무슨 심술인가 기가 막혔다. 두시 반 기차를 타야 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그가 아닌가. 이럴 경우 차 시간이 다급하다거나 하는 대꾸로 맞서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것을 경험으로 익히 알기에 정임은 말없이 구두를 벗고 들어가 다리미판을 펴고 바지와 와이셔츠를 꺼내 다림질을 시작했다.
순구의 요구가 자신의 친정나들이를 훼방할 속셈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단지 자기본위로 길러진, 자신도 의식치 못하는 이기심의 발로라는 것을 알면서도 속에서 끓어오르는 울화로 손길이 거칠어졌다.
순구 로서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당연한 요구였다. 여러 날을 벼르고 잰 끝에 얻은 아내의 하루 저녁의 외출보다 결혼식에 줄선 바지를 입고 참석해야 하는 것이 결국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머리 허옇게 세어가는 이마당에 새삼스레 당신도 한번쯤 스스로 바지를 다릴 수 있지 않는가라는 말로 사고방식을 고쳐볼 것인가.
- ‘아들이 좋은 것은‘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