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잘도 첫사랑이 오빠 되고 아빠 된다는데, 재희의 첫사랑은 원수가 됐고, 두번째 사랑은 사기꾼이 됐고, 얼마전까지 현재진행형 이었던 마지막 사랑은 카드 할 부값만을 남겨주고 곧 자신의 친구와 결혼을 한단다. 도대체 왜! 재희의 머릿속에 문득 ‘이상한 선택’을 했던 기억이 솟아올랐다.
"맞아. 기억나진 않지만, 그때 내가 ‘무미건조하지만 긴 인생’을 선택했던 게 분명해. 바보같이."
하지만 세상은 마치 주연은 하나고 조연은 차고넘치는 연극 세계와도 같다. 실제로 세계인구 99퍼센트의 사람들이 조연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조연들은 협박 같은 알람 시계의 기계음과 더불어 아침을 맞이한다. 비몽사몽 샤워기 앞에서 잠을 깨고, 허기 품은 배를 움켜쥐며 대중교통에 몸을 싣는다. 그렇게, 누군가를 비판하며 나 자신을 보호하고, 누군가를 위로하며 정작 나 자신을 안심시키는 편 협함으로 무장한 채 각자의 전쟁터로 향한다. 반나절동안 너덜너덜해진 그들의 몸과 마음은 친구, 애인,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한 끼와 커피 한잔으로는 완벽하게 재충전 될 수 없다. 마치 점차 수명을 다해가는 배터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