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는 매일밤 노동에 지친 부모의 얼굴에서 자신의 미래를 본다. 이나는 그런 자신에 절망하여 백화점이 내다보이는 압구정의 고급 커피하우스에 앉아온 정신을 집중하고 백화점 앞을 가득 메운 반짝거리는 여성들과 자동차들과 쇼핑백들에 친근감을 가져보려고 노력한 적도 있다. 서울시 강남구에 익숙해져보려는 것이다, 두부공장이 있는 경기도의 쇠락한 소도시가 아니라, 물론 처음에 이나는 반짝거리는 옷들과 그옷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날씬한 여성들을 넋을 잃고 황홀한 눈길로 바라보며 벌컥벌컥 커피를 들이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리하여 커피가 차갑게 식어갈수록 그런 여자들이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같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저 깊은 바닷속에 사는 납작한 해저생물이나 예쁜 애견 콘테스트에서 일등을 한 분홍색 푸들이나 아니면 물방울 모양의 유에프오를 타고다니는 외계인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나는 한껏 더 절망하여 커피하우스를 빠져나온다.
두부를 만든 돈으로 계속해서 이나가 좋아하는 고급 맥주와 고급 치즈를 사고 가끔은 값비싼 와인을 마시면 되지만 그것이 완전한 바보 짓,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운 짓, 이나의 상상 속 서울시 강남구 주민들에게 비웃음을 살만한 바보짓이라는 것을 이나도 안다.
다 무너져가는 낡은 아파트를 배경으로한 이나의 삶과 잘 설계된 사회보장제도와 높은 실업률을 배경으로한 유럽의 치즈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나는 도저히 그 둘을 조화시킬 수가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이나는 치즈의 곰광이와 벽지의 곰광이 사이에서 잔잔하게 흔들린다. 그 잔잔한 멀미가 영원히 지속될 거라는 불길한 예감에 시달린다. 잔잔한 멀미 속에서 조금씩 침식되어가는 삶.
- ‘이나의 좁고 긴 방‘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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