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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평점 :
"인간이 달 위를 처음 걸었던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로 시작이 되는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때는 이미 첫장에 모든 줄거리가 다 나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눈여겨 보지 않았던 탓일까 그의 삶을 짐작할 수 없었다.
마르코 스탠리 포그, 아버지는 태어날때부터 없었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외삼촌 빅터 삼촌과 함께 살았지만 그가 돌아가신 후 그의 삶은 무언가가 '툭'하고 끊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후 그는 외삼촌이 물려주신 천여권의 책들을 모조리 다 읽어버리고 거지 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합리화 시키고 그렇게 살다가 결국은 죽음이 눈앞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삶은 여러 가지 뜻밖의 사고로 결정됩니다.」
내가 되도록이면 간명하게 설명하려고 애쓰면서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같이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그런 충격과 사고에 맞서 싸웁니다. 하지만 저는 2년 전에 철학적인 이유에서 그런 투쟁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거지 생활을 했던 이유였다. 그 죽음의 문턱에서 구출된 것은 자신에게는 아직 친구가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절벽 가장자리에서 뛰어내렸지만 떨어져 죽기 직전에 뭔가 예사롭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 상을 받는다는 사실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떨어져 내리는 두려움이 줄어들지는 않았더라도 그 두려움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새로운 조망을 얻는 것이었다. 나는 가장자리에서 뛰어내렸지만 마지막 순간에 뭔가가 팔을 뻗쳐 허공에 걸린 나를 붙잡아 주었다. 나는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믿는다. 사랑이야말로 추락을 멈출 수 있는, 중력의 법칙을 부정할 만큼 강력한 단 한 가지 것이다."
키티 우 라는 여성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던 것이 달로 향하는 그를 다시 지상으로 잡아오는 계기가 되었다. 마르코 스탠리 포그 (M.S. 포그)는 항상 공상 속에 빠져 사는 인간이다. 무엇이든 의미를 부여하기를 좋아하고 그의 행동에 항상 합리화를 시키는 그런 사람.
나락에서 구출 받은 뒤 친구 짐머의 집에 얹혀살게 되자, 그는 더 이상 친구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만나게 된 것이 토머스 에핑, 다리를 쓰지 못하는 불구자에 눈먼 그 노인에게 책을 읽어주고 말동무가 되어주는 일이다. 그 노인과의 만남이 모든 일의 실마리가 된다. 그 노인의 삶의 이야기로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박차를 가하게 된다. 그 노인은 자신이 죽은 사람이라는 것 젊은 시절화가였고 아내가 있었고 사막에서 사고로 친구를 잃고 자신은 죽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 우연히 들어간 동굴에 있던 살해된 시체를 치우고 그 곳에서 많은 그림을 그렸다는 것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자신에게는 아들이 있었다는 것 그 아들의 이름은 솔로몬 바버, 그 노인이 죽고 나서 그는 솔로몬 바버를 만나게 되고 그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어떻게 꼬이고 꼬인 인생인 것인가 아니면 인생이란 원래 이렇게 꼬여있는 것인가, 포그와 바버의 인생은 읽으면 읽을수록 닮은꼴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바버 자신도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없었고 그 공허함을 책으로 메우며 정신없이 책을 도피처로 삼아 달아나고 포그 자신도 아버지가 없었고 그는 삼촌이 남겨주신 책을 도피처로 삼아 온갖 철학을 펼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둘의 이음새 이다. 아니, 그것은 셋의 이음새이다. 포그 자신과 솔로몬 바버와 나. 둘은 자신의 이름에 의미부여하기를 좋아했다. 이렇게 닮은꼴인 둘이다.
「비난을 받아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을 받아들이기가 조금이라도 더 쉬워진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모두 놓쳐 버린 관계, 잘못된 시기, 어둠 속에 생겨난 실수였다. 우리는 언제나 잘못된 시간에 옳은 곳에, 옳은 시간에 잘못된 곳에 있었다. 언제나 서로를 놓쳤고, 언제나 간발의 차이로 전체적인 일을 알지 못했다. 우리의 관계는 결국 그렇게, 잃어버린 기회의 연속이 되고 말았다. 그 이야기의 조각들은 처음부터 모두 거기에 있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어떻게 이어 붙여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작가는 그것을 어떻게 이어 붙여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나보다. 모든 것이 이런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나 자신이 어떻게 이곳에 와 있는지 이런 생활을 하고 있을지는 10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하지만 우연을 가장한 필연들이 겹치고 겹쳐서 지금의 나는 ‘폴 오스터’를 읽고 있다. 이것이 가장 확실한 대답이다.
"때로는 사물들이 보이는 것과 다를 경우가 있는데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면 곤란한 일에 빠져 들 수도 있습니다."
라고 경고한다. 어떠한 이유에서 그렇게 되었는지 그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현재의 그는 있다. 그것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달의 궁전이라는 네온사인에서 그는 현실과 다른 무언가를 보았고 그 곳을 열어주는 문을 보았다. 책의 마지막 까지도 그것을 열망한다. 사랑을 했고 그것을 지킬 수 있을지 알았지만 끝내는 그것을 지키지 못하고 주위의 모든 사람이 죽고 떠나고 홀로 남겨진 채 떠오르는 달을 바라본다. 그것이 남겨진 희망이다. 주인공의 삶은 결코 쉽지 않은 삶이지만 그의 인생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지만 (그는 절대 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손에 의해 열려져버린 것이다.) 그것이 모두 절망으로 바뀌었지만 작가는 희망이라는 것을 남겨두었다.
처음 읽었을 땐 그저 노인의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야기 일 뿐 이였지만 주인공 포그의 할아버지라고 생각하고 다시 읽었을 땐 새로운 감동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폴 오스터의 책은 한번 읽고 덮어버리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있는 책이다. 최소 두 번은 읽어야지 그제서야 이야기가 자리를 잡혀간다. 모든 것이 복선으로 깔려져 있다. 인생이란 하나의 일직선상에 모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얽히고 섥혀 풀지 못하는 실타래이다. 그 실타래 속에 내 삶이라는 그 실타래 속에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이 걸려 져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이 작품을 읽지 않고 산다면 후회할 뻔했다. 그만큼 좋은 작품이라는 것에 한 표 던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