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술에 취한 채, 허름한 모텔로 들어왔다. 술 체질도 아닌데 쓸데없이 많이 마시다니.

 

 

역시 머리가 나쁘면 죽을 때 까지 몸이 고생한다는 말은 사실이었나 보다.

 

 

술집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여러 번 속을 게워냈지만

 

 

술독이 덜 빠졌는지 여전히 속이 쓰렸다.

 

 

머리도 깨질 듯이 아팠고, 몸도 부들부들 떨렸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가득 채운 다음

 

 

그 안에 들어가 한잠 자고 싶었다.

 

 

나는 샤워실로 들어가 욕조에 뜨거운 물을 틀었다.

 

 

여기저기 물때가 낀 욕조 위로 물이 쏟아졌다.

 

 

물이 채워지는 동안, 나는 샤워실에서 나와

 

 

냉장고에 들어있던 주스를 꺼내 마셨다.

 

 

숙취해소에 그만이라는 토마토 주스였다.

 

 

하지만 속이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꼬이는 것 같았다.

 

 

다시 헛구역질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곧 또 다시 구토를 할 것 같았다. 애써 참아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내 의지는 내 몸 속 까지

 

 

닿아주질 못했는지, 이미 먹었던 것들이 다시 올라와 입 안 가득 고였다.

 

 

다급해진 나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곧바로 변기 앞으로 달려갔다.

 

 

우웨엑.

 

 

방금 마셨던 토마토 주스와 아직 위 속에 남아있던 술과 그 밖의 것들이

 

 

변기물 위로 후두둑 쏟아져 내렸다. 주스의 색 때문인지 꼭 피를 토한 것처럼 보였다.

 

 

이만하면 나올 것은 전부 나온 듯 했으나, 아직도 속은 울렁거렸고 뭔가 더 토해내고 싶었다.

 

 

입 안 깊숙이 손가락을 넣어 목구멍을 간질여 보았지만 헛구역질만 연신 올라올 뿐

 

 

더 이상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거꾸로 올라온 위액이 훑고 지나간 목구멍과 식도가 쓰렸다.

 

 

뱃속은 쥐어 짜이는 듯 아팠다. 눈앞이 핑핑 돌았다. 어지러웠다.

 

 

나는 변기 물을 내린 뒤, 입고 있던 옷을 전부 벗어던졌다.

 

 

욕조를 보니 어느새 물이 가득 차서 밖으로 흘러넘치고 있었다. 수도꼭지를 잠그고,

 

 

욕조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욕조의 바로 앞 맞은편에 붙어있는 커다란 거울 속에 작고 초라한,

 

 

비쩍 마른 남자의 얼굴이 비쳐보였다. 그 놈은 꼭 나처럼 술에 잔뜩 취했는지

 

얼굴이 터질 듯 벌갰고,

 

 

입가엔 너저분하게 토사물이 묻어있었다.

 

매우 불쾌했다.

 

 

내가 그 거울 속의 남자를 노려보자,

 

 

그 놈도 똑같이 나를 노려보았다.

 

기분이 언짢아진 나는 왁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하면, 저 놈이 내 눈앞에서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달리

 

그 놈은 내가 한 그대로 똑같이 따라 할 뿐이었다.

 

자꾸 내 흉내를 내는 놈을 보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 나는

 

 

그놈에게 너저분한 욕설들을 내뱉으며 삿대질을 해 댔다.

 

 

이 쯤 되면 쫄아서, 아니 더러워서라도 물러날 법도 한데,

 

여전히 그 놈은 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내가 하는 그대로 똑같이 따라하고 있었다.

 

 

오냐, 이 놈아.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몹시 화가 나 순간 이성을 잃은 나는, 주먹으로 그놈의 얼굴을 쳤다.

 

 

인정 사정없이, 치고 또 쳤다.

 

 

주먹으로 놈을 때릴 때마다 거울에 쩍쩍 금이 가며

 

 

욕심스레 피를 머금은 거울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나는 반 쯤 정신이 나간 채로 한동안 거울 속의 그 놈을 죽어라 패다가,

 

 

양 손이 부서지는 듯한 통증 때문에 조금씩 정신이 되돌아옴을 느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앞에 붙어있던 거울은

 

피와 살점이 묻은 채 여기저기 금이 가 있었고,

 

깨어져 나간 거울 조각들이 내 발 밑을 굴러다녔다.

 

내 두 손은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금이 쩍쩍 가버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기괴하게 일그러져 보였다.

 

거울 속에서 나를 약 올리던 그놈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그 놈은 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깨어진 거울 속에는

 

 

놀란 토끼 눈을 뜨고 있는 내 얼굴만 비치는 걸까.

 

 

피가 말라붙은 거울의 깨진 틈 사이로 불안과 당혹감, 그리고 약간의 공포감으로

 

 

떨리는 내 눈동자가 비쳐보였다. 나는 잠시 동안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정신 나간 듯 바라보다가, 깨달았다.

 

 

그 거울 속에서 나를 약 올리던 그 놈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는 걸.

 

 

아무리 만취했다곤 해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마저도 알아보지 못하다니.

 

 

아니, 어쩌면 거울 속의 남자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무의식 중에 그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건지도 모른다.

 

 

순간적으로 우습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거울 속에 비친 그놈이, 아니 내가 똑같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나는 뭐가 그리 우스웠는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미친 듯이 웃어젖히는 내 모습이 깨어진 거울 속에 비쳐보였다.

 

 

거울 속의 그 놈도 꼭 나와 같은 얼굴로 미친 듯이 웃어젖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보고 내가 웃는 것인지,

 

 

거울 안에 있는 그놈이 나를 보고 웃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웃음이 나왔다.

 

 

봇물처럼 터져버린 웃음이 멈출 때 까지, 우리는 한참 동안을 서로를 마주보며 웃었다.

 

 

둘 사이에 거울을 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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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로 2018-02-03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회차부터 블로그 주소가 바뀌어 1회차, 2회차 글이 볼 수 없게 되어 다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