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매우 지치는 날이었다.

 

 

몸과 정신 모두 다.

 

 

무슨 일이 그리 많은지.

 

 

이제 일을 시작한 지 일 년이 넘어

 

 

어느 정도 일에 몸이 익어 그럭저럭 버틸 만 했지만,

 

 

그래도 힘든 건 똑같았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집에서 놀기만 하는 것 보단

 

 

이쪽이 훨씬 나았다.

 

 

그래, 백수로 있어봤자 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별다른 능력이나 재주가 없으니 뭐,

 

 

접시라도 닦아야지.

 

 

일이 좀 그래도 일단 내 입에 풀칠할 정도는

 

 

돈이 들어오니까.

 

 

언제나 남들보다 뒤떨어지고, 참 모자라서 별로 사랑하고 싶지 않은 나 자신이었지만,

 

 

그래도 몸이라도 건강한 게 참으로 감사했다.

 

 

어쨌거나 뭐라도 해서 밥벌이를 할 수 있으니.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니, 11시였다.

 

 

부모님께서 여행을 가셨기 때문에,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왠지 오늘 따라 빈 집이 더 낯설게 느껴졌다.

 

 

땀을 많이 흘려 좀 찝찝한 느낌이 들었지만,

 

 

온 몸에 힘이 쭉 빠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몸을 씻을 힘조차 남아있지도 않았고.

 

 

어차피 내일은 쉬는 날이었다.

 

 

하루 쯤 안 씻는다고 죽는 건 아니니까.

 

 

땀으로 범벅이 된 옷들을 벗어던지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뒤,

 

 

출근 전 방에 미리 깔아놓은 이불 위로

 

 

쓰러지듯이 누웠다.

 

 

눕자마자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자다가, 갑자기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잠이 깨었다.

 

 

처음엔 웅웅거리는, 기계 돌아가는 것 같은 소리가 작게 들리더니, 점점 소리가 커지면서

 

 

집 천장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은 굉음으로 변했다.

 

 

하지만 천장은 그대로였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나는, 몸을 움직여 보려 했으나

 

 

손가락 하나조차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러고 나서 뒤늦게 알아차렸다.

 

 

방금 전부터 계속 들려오던 그 괴상한 소리가 내 귀에서 들려오는 게 아니라

 

 

머릿속 한 가운데서 들려온다는 사실을.

 

 

그렇다. 나는 전에도 몇 번 이런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가위 눌림이라 부르는,

 

 

이 이상한 증상.

 

 

처음에는 푸른빛의 반투명한 귀신이 집 천장 위에 머물러 있다가

 

 

소름끼치는 웃음소리를 내며 사라졌었는데, 그와 동시에 가위눌림이 풀리며

 

 

잠에서 깨어났었다.

 

 

두 번째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하여튼 굉장히 끔찍했다.

 

 

세 번째는 가위눌린 상태에서 다수의 여자 귀신들과 교접을 했었고,

 

 

(말이 교접이지 거의 윤간당한 수준이었다. 그 날은 하루 종일 몸이 좋지 않아 힘들었다)

 

 

네 번째, 다섯 번째는 머릿속에서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괴상한 음악이 들려왔는데,

 

 

매우 야만적이고 소름끼치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아름답고 우아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희한한 소리여서, 인간의 악기와 연주력으로는

 

 

절대로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늘 밤이 여섯 번째였다.

 

 

항상 가위눌릴 때는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크거나

 

 

몸이 피곤할 때였다.

 

 

오늘 같은 날은 그러기 딱 좋은 날이었다.

 

 

머릿속에서 들려오던 괴음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해,

 

 

마치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소리가 되어

 

 

나를 두려움에 젖게 만들었다.

 

 

더 소름이 끼쳤던 것은, 그 소리에

 

 

수많은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겹쳐 들려왔다는 사실이었다.

 

 

고통과 공포감에 가득 찬, 수만, 아니 적어도 수억의 울부짖음.

 

 

마치 내 온몸이 찢기고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괴상한 소리가 1분 정도 들려오다가, 갑자기 소리가 뚝 끊기더니

 

 

조용해졌다.

 

 

나는 이제야 가위가 풀린 건가 싶어 안도했지만,

 

 

여전히 몸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내가 가위눌림에서 벗어나려 한창 애쓰던 때,

 

 

갑자기 천장을 뚫고 사람의 형체가 내 머리맡으로 내려왔다.

 

 

키가 크고 머리가 긴, 남성이었다.

 

 

그는 내 옆에 털썩 편하게 앉더니, 내 얼굴 앞으로 자신의 얼굴을

 

 

바싹 들이대었다.

 

 

놀랍게도, 그의 얼굴은 하얗다 못해 창백했다.

 

 

대강 설명하자면, 매우 소름이 끼치는, 마치 시체 같은 인상이었는데

 

 

그럼에도 굉장히 아름다운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그 창백한 얼굴과 대비되는 길게 늘어뜨린 검은 머리칼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황인종도, 백인종도, 흑인종도 아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결코 볼 수 없을, 그런 모습이었다.

 

 

그는 한참을 내 눈을 뚫어져라 노려보다가

 

 

무겁고 굵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 네가 사는 이 세상에 파멸의 폭풍이 몰아닥칠 것이다.’

 

 

라고.

 

 

그리고 그는 덧붙여 말했다.

 

 

준비해라, 어린 중생이여. 뜨거운 화염과 달구어진 쇳덩이들로 인해 수억 명의 피가 강이 되어 흐르고,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참혹한 멸망의 시대를.’

 

 

그의 차디찬 손이 내 얼굴을 감쌌다.

 

 

나는 숨이 막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시체처럼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동자가 노랗게 빛났다.

 

 

다음 순간, 그 남자는 씩 웃으며

 

 

내 이마 깊숙이 그의 검은 손톱을 푹 찔러넣었다.

 

 

그러자, 머릿속을 파고드는 차디찬 그의 손가락이 느껴졌고,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고통이 나를 덮쳐왔다.

 

 

하지만 나는 비명조차 지를 수 가 없었다.

 

 

머리가 깨지는 듯 아팠고,

 

 

다음엔 온 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고통이 들었다.

 

 

그 남자는 죽을 만큼 고통스럽지만 움직일 수조차 없는

 

 

내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더니, 내 귀에 대고 무어라 속삭이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내 온몸은 식은땀으로 푹 젖어 있었고,

 

 

이마에서는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두통인가 싶어 집에 구비해 두었던 두통약을 꺼내 먹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자려고 다시 자리에 누웠지만, 도저히 잠이 오지를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다가, 문득 그 이상한 남자가 내게 속삭였던

 

 

말이 떠올랐다.

 

 

넌 내게 선택 되었다. 특별한 선물을 주마.

 

 

그게 어떤 것인지 자세히 알려준다면......

 

 

재미없겠지.

 

 

어디 한번 스스로 깨달아 보거라. 네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 이씨......뭔 개소리야. 가위눌리고 뭔 개꿈을 꿨나.”

 

 

나는 짜증이 나서 아픈 머리를 쥐어뜯다가

 

 

시원한 바깥 공기라도 쐬자 싶어

 

 

대강 편한 츄리닝을 걸쳐 입고 산책을 나왔다.

 

 

10분 쯤 걷다보니, 횡단보도가 나왔다.

 

 

빨간불이었지만, 새벽이라 차가 안 다니겠거니 싶어 그냥 건넜다.

 

 

멍 때리며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는데, 갑자기 오른 쪽에서 눈부신 헤드라이트가 빛나더니,

 

 

내 몸은 공중에 붕 떴다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나를 친 차는 재빠르게 도망쳤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차에 이 정도로 치었다면 죽거나 온몸이 부서지고 피가 나야 정상인데

 

 

나는 멀쩡했고, 피는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으며, 그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일이었다.

 

 

그건, 꿈이 아니었던 걸까.

 

 

그리고,

 

 

그 남자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어

 

 

나는 몸을 일으킨 뒤,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산란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라앉는 듯 했고, 두통도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정신없이 달리다 문득 주변을 돌아보니,

 

 

무언가 평소와는 풍경이 다르게 보였다.

 

 

마치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그렇다.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내 몸은 공중에 붕 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땅 위로 추락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내가 잠들었던, 그 방에 누워 있었다.

 

 

늘 잠에서 깰 때 보던 우리 집 천장이 눈에 들어왔고,

 

 

푹신한 이불의 감촉이 느껴졌다.

 

 

휴대폰 시계를 보니 아침 8시였고, 화요일이었다.

 

 

오늘은 휴무였다.

 

 

그래, 어제는 월요일 이었지.

 

 

역시, 개꿈이었구나. 다행이다 싶었다.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가위눌림 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상쾌한 기분으로 기지개를 쭉 펴며 물을 꺼내 마시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다.

 

 

 

 

 

 

 

 

 

 

 

 

 

 

 

 

 

 

 

 

 

 

 

 

 

그러자, 냉장고 문이 힘없이 뜯겨나갔다.

 

 

 

 

 

 

그렇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깜짝 놀라 볼을 세게 꼬집어보았다.

 

 

아파야 하는데 전혀 아프지가 않았다.

 

 

대체 이 상황은 뭘까.

 

 

난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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