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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엔지니어들
구루 마드하반 지음, 유정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엔지니어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만큼 그들은 엄청난 성과를 올리는 직종에 종사한다.
엔지니어들은 새로운 기회의 탐험가이자 경제의 프로펠러이며 물질적 삶의 설계자다.
모든 대화에 끼어드는 침묵의 소리이고 우리의 경험을 다채롭게 해주는 숨은 브로커다.
-<맨발의 엔지니어> 본문 中-
최초의 철학자라 불리는 탈레스의 일화를 아는가?
어느 날 탈레스는 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걷다가 우물에 빠졌다. 그 광경을 지켜본 하녀가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려다 한 치 발 앞에
있는 것도 보지 못하는군요!" 라는 답을 해 탈레스를 우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가지에 너무 깊게 파묻힌 나머지 제 갈길조차 못 보는 탈레스의
어리석음을 비웃은 말이었지만 난 어쩐지 그 한가지에 미친 듯이 파묻힐 수 있는 탈레스의 열정이 부럽게 느껴졌던 이야기였다. 그만큼 한 가지에
집중하며 살기도 어려워진 시대가 되었다. '성공'을 해야한다는 확신으로 살아야 하는 불확실한 시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열정가가 있다. 바로
엔지니어들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에 대한 일화가 나온 다기에 샅샅이 살펴봤으나 히치콕의 일화는 에피소드로 따로 뺐다. 사실 이미 다른 이야기가 날 사로잡고
있어서 굳이 히치콕에 연연해할 필요는 없었다. 나를 매료시킨 주제는 아이러니하게도 'GPS와 공공안전의 결합'이었다. 삼성에서 만드는 폰은
위치추적이 가능하다 하여 사생활 침해 논란이 떴던 적도 있었건만, 공공안전을 지키는 시초가 GPS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게 놀라웠다. 세상의 모든
물건은 사용자가 어떤 식으로 사용하냐에 따라서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폰의 중요 정보를 담고 있어 폰을 바꿔도 갈아 끼우기만
하면 예전 처럼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진 유심칩이 <킹스맨>의 발렌타인같은 악독한 놈을 만나면 내 머리를 터지게 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달까.
미국에 제니퍼 쿤이란 여자가 살았다. 165센티미터에 아름다운 18살 여성이었다. 그녀는 시내에 있는 심리 클리닉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언젠가 심리학 의사가 되어 사람들의 정신을 치유해주겠다는 꿈을 안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 날 일이 끝나고 마트에 들렀고, 식료품을 샀다.
식료품을 사고 돌아가는 그녀의 뒤에는 수상한 20대 남성이 뒤따라 붙었다. 그리고 그녀는 납치를 당해 자신의 차 안에서 끔찍한 성폭행을 당했다.
어찌어찌 마지막 힘을 다해 911 전화를 눌렀고 동시에 그녀는 성폭행범의 총에 맞아 폐를 손상당하고 팔을 다쳤다. 911 직원은 제니퍼가 다시
어디론가 끌려가 머리에 총을 맞고 시체로 남을 때까지 그녀가 어디있는지 몰랐다.
그 일이 있고 나서 그녀의 아버지이자 공학가인 데이비드 쿤은 그 일에 대해 조사했다. 어떻게 대낮에 사람들이 오가는 마트 한 복판에서
여성을 납치하는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그는 곧 공공안전이 미흡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개개인 상점에 대한 관리는 엄격했으나 마트 전체를 관리하는
경비 시스템은 취약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데이비드는 공공안전에 GPS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모두가 GPS의 필요성에 대해
중요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데이비드는 말의 힘을 얻기 위해 몇번이나 국회의원에 도전했다. 긴 싸움이었지만 그의 노력은 뉴욕에서 벌어진 10대
아이들의 뱃놀이 사고를 통해 다시금 조명받았고 결국 GPS를 공공안전시스템에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은 호기심을 근본으로 발생한다. 그러나 사람의 감성에서도 발전은 꽃피운다. 단순한 감성으로 딸을 잃은 것에 분노하지 않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노력했던 데이비드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필요한 것이다. 세월호같은 끔찍한 참상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해결 시스템을 도입하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하지 않았을까. 정치적으로 이용해먹으려는 사람들에게 실망했던 데이비드의 마음을
왜 나 역시 느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