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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전이의 살인 ㅣ 스토리콜렉터 42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하윤 옮김 / 북로드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다. 표지에서부터 느껴지는 인간 육체의 사그라듦이 이토록 절묘할 줄이야. 미국 대통령 직속 관리 시설에서 미국이 하는 그
수많은 극비 실험 중 하나를 맡고 있는 다니엘 아크로이드 박사는 크리스마스 이브도 즐기지 못하고 도중에 다시 불려나온 자신의 처지에 대해
불평한다. 천국에서 한 순간에 지옥에 떨어진 기분이다. 조카들과 모노폴리를 해야할 시간에 그는 비밀을 유지한답시고 해야하는 신체 검사(아래
구멍까지 샅샅이 살피는)에 응해야 했다. 이 날벼락 같은 일부터가 인생 더럽게 꼬이는 사건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니엘 아크로이드 박사의 연구는 '체임버'에서 이루어진다. 체임버는 사람의 인격과 육체를 분리해서 바꿔버리는 수수께끼같은 기능의 공간이다.
테러리스트를 제압하기 위해 시작한 연구라지만,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누가 안단 말인가. 다니엘 아크로이드 박사는 짜증나는 프로젝트에 발을 담구긴
했지만 여전히 꺼림칙하고 열받는 연구다. 그가 체임버에 오자마자 그의 첫사랑과 꼭 닮은 빨간 머리의 여성 스태프 진저 핀홀스터가 실험의 이상에
대해서 알린다. 피험자 중 한 사람의 육체가 노쇠하여 다른 육체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인격전이의 명료한 법칙이 발견되기 시작했다는 징조였다.
인격이 전이되는 현상을 여기서는 '매스커레이드'라고 한다.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위치 더럽게 안 좋은 패스트푸드점에 있던 7명의 남녀의 이야기로 넘어가자. 그들 안에는 방금 들어온 섹시한 여자에
헤헤거리는 인종 차별자도 있고, 아랍인도 있고, 영어 공부하러 와서 남친이나 사귀려는 못돼 쳐먹은 일본 여자애와 그 마수에 걸려든 남자아이도
있다. 그리고 한구석에 자리차지하고 있는 일본인 박사도 있고. 이들이 모두 한 자리에서 갑작스런 지진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
위치 더럽게 안 좋은 패스트푸드점에는 매스커레이드 현상을 경험할 수 있는 시설이 연결되어 있었고, 그들의 정신은 서로의 육체에서 매스커레이드
현상을 일으키게 된다.
이 소동을 잠재우려고 다니엘 아크로이드 박사는 그들을 잠시 한 공간에 격리한다. 한국이었다면 국가의 음모라며 후에 보상문제를 논의하자고
모의했을지 모르지만 여기는 미국이었다. 미국에서는 보상문제를 논의하기 전에 살인부터 난다. 탈출 불가능한 한 공간에, 어떤 인간이 남의 육체에
들어가 살의를 품고 남을 공격하려 할 때, 살아남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답은 '그 미친 인간을 죽이면 된다'이다. 그럼 여기에
문제를 하나 더 추가해보자. 그 미친 인간도, 나 자신도 육체가 계속 바뀌게 된다. 살의를 품은 놈이 어느 육체에 들어갔는지 알 길은 없다.
바로 옆에 있던 같이 울고 있던 인간이 몇 초 후에 분노에 찬 얼굴을 하고 미친듯이 나를 죽이러 온다고 생각해 봐라. 키야. 이건 블록버스터급
긴장감을 가진 살인 게임이다. 절대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내 얼굴을 한 사람에게 몇 초 안에 죽을 수도 있다.
살인자는 모르고, 살인은 일어나고 있다. 탈출구는 없다. 실시간 연쇄살인 속에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추리쇼가 벌어진다. 코난도, 셜록
홈즈도 이 사건에 왔으면 욕부터 했을 거다. '시간을 주고 살인을 저질러 미친놈아아아!' 이런 비명을 질렀을 법한 살인 생중계 안에서 누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범인을 밝힐 수 있을까?
살인자로 피해다니는 피해자들과 함께 나도 미친듯이 뛰어다녔다. 전개를 조금이라도 못 따라가면 쇠파이프에 얻어맞고 죽어도 할 말이 없다.
참고로 나는 이 스릴 넘치는 살인 현장에서 전개를 따라다가 쇠파이프에 얻어맞고 죽은 인간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충고하건데, 독자들이여, 절대
살인자의 속도에 잡히지 말고 주인공들과 뛰어다녀라. 와인병 맞고 죽기 싫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