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여름 스토리콜렉터 43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북로드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살면서 원해야 할 것은 소속감을 느낄 장소뿐이다.

비판받지 않고,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받을 수 있는 곳.

 

-원문 처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말이 있다. 존재하지 않는 '사회' 속에 실존하는 자신을 우겨넣어 힘을 만들어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무리 속의 나. 소속감을 가지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은 그 자신이 더 큰 몸집과 더 나은 두뇌를 갖게 되더라도 변하지 않았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나'라는 개인이 존재하길 바라는 한편, 사회를 이루는 한 일원으로 기억되고 싶어하는 이중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넬레 노이하우스는 이 소속감에 대한 인간의 사무치는 욕망을 <끝나지 않는 여름>이라는 작품으로 보여주게 된다.

 

 

네브래스카 주 경찰 경위 조던 블라이스톤 형사는 페어필드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맡게 된다. 선량한 사람들만 살고 있을 것 같은 시골마을에서 사람 5명이 총살당하고 2명이 총상을 입었다. 용의자는 이제 겨우 17살 청년이었고, 총살당한 이들의 가족이었다. 페어필드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그랜트 농장주의 가족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오늘의 참살을 맞게 되었단 말인가?

 

 

 

"그 애가 이 사건이랑 관련 있다고 해도 놀랄 건 없지. 아주 매력적인 계집애고, 사실은 진짜 가족도 아니니까."

"예?"

조던은 귀가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

"입양아예요. 그랜트 부부는 교양있는 사람들이지. 부모 없는 그 애한테 제대로 된 가정을 준 겁니다. 하지만 그 애는 늘 수상쩍은 사람들을 좋아했어요. 버넌과 레이첼을 힘들게 만들었지."

"딸은 몇살입니까?"

"열여섯인가, 열일곱인가...."


보안관은 다 알지 않느냐는듯 눈썹을 치켜세웠다.


"지독하게 매력적인 계집애라고."

 

 

 

총살 사건 당시 실종되어버린 입양 소녀, 셰리든. 그녀는 의붓어머니 레이첼의 학대와 그녀의 친아들에게 당할 뻔한 성폭행 경험을 비추어 페어필드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녀의 곁엔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 호레이쇼가 있다. 비록 그가 자식도 있는 유부남에 페어필드에서 모두의 선망을 받는 목사였지만 말이다. 금단의 사랑에 취한 그녀는 사랑의 도피를 감행했지만 남자는 따라오지 않았다. 더 이상 전화하지 말라는 매서운 경고와 함께. 사랑하는 이에게 버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한 가정을 망친 총살사건의 주범으로 떠오른다.

 

 

 

세상은 둘도 나뉘어져 있다. 그녀라는 존재를 할퀴려는 인물들, 그녀를 보호해주고자 하는 인물들. 선과 악을 만난 것마냥 셰리든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듯 위태롭게 그 무리 사이를 헤쳐가는 중심 인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 줄타기도 오래가지 못했다. 세상의 주목을 이끌고 싶어하는 언론이 악인들의 거짓말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미국 전역의 사람들은 이 소설에 속아 셰리든을 둘도 없는 음탕한 여자아이로 만들어버렸다. 실제로 그녀는 매력적인 소녀였고, 약간의 불량함도 갖추고 있었기에 청소년시절에 겪을만한 몇가지 사고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녀는 창녀라고 매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완전히 그녀를 낙인찍어 버렸고, 사회에서 격리시켰다. 그녀가 자신이 내내 폭로한 진실로 가족이 해체되었듯이, 그녀 자신도 사회로부터 소속을 천천히 잃기 시작한 첫 단계였다.

 

 

 

조던 블라이스톤 형사는 그녀를 지지해주고 보호해주려는 몇 안되는 선한 사람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호의는 사랑이 아니다. 보다 더 근원적인,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연민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지금껏 늘 그녀를 유혹하는 남성만 경험했던 셰리든에게는 제법 신선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신뢰가 갔던 인물이었고, 그래서 기대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두 인물은 <끝나지 않는 여름> 을 장악하고 있는 한 가지 사건을 두 갈래로 바뀌어 서술하게 하는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그들의 만남은 사랑도, 뭣도 아닌 채로 조던의 미친 약혼녀(망할 시드니!) 때문에 어처구니없게 갈리고 말았다.

 

 

<끝나지 않는 여름>을 관통하는 무더운 주제는 소속감이다. 계속 언급해왔지만 셰리든이 얻고 싶어하는 가족, 조던의 잃어버린 옛 뿌리, 셰리든의 이복 오빠의 밝혀진 출신, 중병 리플리 증후군을 앓고있는 레이첼 그랜트의 부부로서의 사슬, 호레이쇼가 선택한 가족... 모든 인물들이 시시때때로, 중요한 순간에 소속에 대한 선택을 받게 된다.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의 갈림길이 아니라 그저 나아가기 위해 무엇이든 택해야 하는 선택들. 그것들이 인물들을 하나하나 파멸로 만들어갔다.

 

 

그러나 넬레 노이하우스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소속감에 배제된 짙은 패배감은 아니다. 끊임없이 돌출되는 오해와 와해되는 사건들 속에서도 자신과 사회라는 존재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조던과 셰리든을 통해 '나'에 대해 한걸음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탐구심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인간의 사회성을 회복하는 훈훈한 마무리로 끝나 나를 허탈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어찌되었든 반쪽짜리 해피엔딩이다 싶은 <끝나지 않는 여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