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이었던 소녀 스토리콜렉터 41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BLEED FOR ME. <내 것이었던 소녀>, 시에나의 강렬한 외침이다. 심리학자 조 올로클린의 집 문 앞에 피를 뒤집어쓴 소녀가 나타난다. 그녀는 조 올로클린의 딸 찰리의 단짝친구 시에나였고, 소녀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다시 도망친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소녀의 아버지이자 전직 형사인 레이 헤거티의 처참한 시체가 발견된다. <내 것이었던 소녀>는 이제 갓 열 여섯살 된 소녀가 살인 혐의를 받는 것으로 그 무거운 사건의 시작을 알린다.

"소식 들었어요?"

"무슨 소식요?"

"레이 헤거티가 죽었대요. 딸이 찔렀다던데, 엄청나죠?"

레이 헤거티는 동료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폭주족 6명을 상대로도 카리스마를 뿜는 사자였고, 현 경감 베로니카 크레이의 정신적 지주였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은 가정적으로도 화목할까? 사회적 존경과 가정의 화목은 엄연히 별개의 것이다. 베로니카 경감은 레이 헤거티의 사회적 면모 속에서 진정한 영웅적 인물상을 탐하려 했지만 가족들이 보는 레이 헤거티는 그저 쓰레기였다.

"시에나는 늘 저더러 화장실 문을 잠그라고 했어요. 어느 날 밤,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문손잡이가 돌아갔어요. 문은 잠겨있었고요.

저는 누구냐고 물었어요. 금방 나간다고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니?"

"문손잡이가 한번 더 돌아갔어요."

롤리타스러운 기질이 있던 레이 헤거티는 어린 딸들에게 검고 어두운 마수를 뻗곤 했다. 베로니카 경감의 환상을 비웃듯, 감춰졌던 레이 헤거티의 추잡한 성적 기질이 세상에 드러났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레이 헤거티가 점점 쓰레기스러운 아버지로 낙인 찍힐수록 시에나의 혐의도 점점 짙어졌다. 시에나가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조 올로클린은 악화되어 가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했다. 시에나가 범인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범인이지?

 

시에나에게서 단서를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소녀는 아무것도 기억 나지 않는다면서 입을 꾹 다문 상태다. 마치 누군가를 보호하기라도 하듯이. 올로클린 교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소녀의 곁에 연결고리인 사람들에게서 단서를 얻는 것이다. 그런데 뜻밖의 사람, 시에나를 특별히 엄하게 대하던 교사 고든 엘리스라는 사람에게 꽂히게 된다. 사라진 그의 첫 아내, 그리고 이후 성을 바꾼 고든 엘리스의 수상한 모습, 두번째 아내의 너무 어린 나이까지. 다정다감해 보이고 멋지게 생긴 청년 교사와 소녀. 조 올로클린의 촉은 진실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내 것이었던 소녀>는 레이 헤거티의 살인사건 뿐만 아니라 망명 신청자 일가족이 폭사한 사건을 함께 다루고 있다. 처음에 읽을 때는 그저 일상의 한 귀퉁이를 장식하는 사건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거머리마냥 폭사 사건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던져지고 있다. 라디오, 법원, 올로클린의 아내의 사건에 엮여서 계속 언급이 되고 있다. 도대체 이 사건은 뭐길래 자꾸 말하는 걸까. 폭사 사건과 레이 헤거티 살인 사건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내 것이었던 소녀>는 진실에 다가서는 조 올로클린의 추측이 맞아 떨어지면서 그가 시에나를 자극하는 장면에서 제목이 빛을 발한다. 내 것이었던 소녀. 그리고 내 것이 될 수 없었던 소녀. 그리고 누구의 것이 되고 싶었지만 될 수 없었던 소녀, 시에나의 강렬한 사랑이 폭발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아저씨는 몇 살이에요?"

"마흔 아홉"

"아저씨는 사람이 사랑에 빠지기에 적절한 나이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세요?"

"사랑이 뭔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그러는데 어떤 사람들은 절대 사랑을 이해 못 한대요."

"그건 사실일거다. 시에나. 하지만 어떤 관계는 분명히 잘못이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한 사랑에 의해 자신을 무너뜨린 한 소녀와 그 소녀를 둘러싼 어그러진 애정의 관계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면서 완전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그 결말이 소녀에게는 당연한 파멸이었겠지만. 소녀가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것보다 조 올로클린의 관찰이 소녀 시에나의 사랑을 더 파멸스럽게 다가오게 만든다. 누구나 예측하는 파멸, 서글플 수밖에 없는 결말. 소녀의 인생을 집요하게 망가뜨린 사랑이 시에나를 바라보는 나에게까지도 절망스러움을 옮겨다주었다.

 

레이 헤거티의 살인범은 역시나 내 예상을 빗나갔다. 하지만 그를 죽인 살인범의 정체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들었지만 곧 이어 소녀와 연계하여 이해되는 인물이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시에나가 걸어가야 했던 그 길을 먼저 걸어간 자의 말로였다. 지독한 사랑같으니라구.

<내 것이었던 소녀>의 주축 인물이자 주인공인 조 올로클린 마저도 결국 파멸과 같은 사랑을 겪어야 했다.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도, 차갑게 식어버린 채 관계만 유지하던 사랑도 모두 끝이 났다. 그와 동시에 <내 것이었던 소녀>도 끝났다. 입을 바짝바짝 타오르게 만드는 강렬한 소설이었다.

호주에는 코알라와 캥거루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마이클 로보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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