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저리 클럽
최인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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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그렇듯, 나에게도 학창시절은 가장 찬란했던 시간으로 남아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 시간을 지나가는 동안에는 그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눈 내리는 날 괜스레 눈이 붉어지고 낙엽 흩날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슬픔에 잠겼던 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어떤 성스러운 시간이 일 초 일 초 흘러가고 있음을

무의식 중에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 최인호의 서문 -



세월이 흘러도 통하는 것이 있다는 말을 실감하게 해주는 말들이 책 곳곳에서 발견되곤 했다. 주인공 동순이 엄마에게 문제집 비용을 약간 꼬불쳐서 용돈으로 삼았다는 것, 등교 시간 7시를 지키기 위해 아침밥을 먹어본 일이 없다는 것, 그러나 그 등교 시간을 정한 사람들은 9시까지 푹 잔다는 것. 매일 부대끼는 버스를 타는 것. 한가한 버스를 타는 게 소망인 것. 봄이면 흩날리는 벚꽃을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여름이면 계곡으로 물놀이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가을이면 단풍이 물든 산으로 산악 여행을 가는 것. 겨울이면 따뜻한 방에서 귤을 까먹으며 따뜻한 이불 속에서 쉬는 것. 지금의 학생들도 여전히 공감되고 소망하는 10대들의 일상에 관한 소망이다.


시간이 멈춘 것마냥 70년대 학생들도, 그리고 2015년 학생들도 여전히 미성년자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불만을 느낀다.

그 나이 때 어울리는 사랑이 있고, 꿈이 있고, 도전이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그런 어른으로 살고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 10대를 성인이 되면 모든지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가두고 같은 길을 가도록 지시하게 만드는 어른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러한 고통을 겪고 자라난 70대의 청춘들은 왜 아직도 2015년 학생들에게 같은 길을 강요하게 된 것일까. 어른이 되는 것이 무기력하거나 꿈을 잃어버렸다는 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최인호의 <머저리 클럽>은 이러한 10대들의 고민과 청춘이 제대로 묘사된다. 미성년자라는 딱지를 붙여 갈 곳을 없게 만드는 세상이 미우면서도, 그런 세상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힘없는 10대인 자신들을 '머저리'라고 묘사한다. <머저리 클럽>이라는 이름을 만든 사람은 영민이인데 이 영민이라는 캐릭터 역시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그 어떤 것도 특징적이지 않지만 존재만으로도 사람을 야리꾸리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캐릭터. 마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데미안을 보는 심경이었으리라. 동순은 친구들과 함께 6대 1로 영민을 때리려고 마음 먹은 후에 정정당당히 승부하자고 1대 1씩 붙어오면서 매를 맞는 영민에게서 흡사 두려움을 느꼈다. 보기 드물게 꺾이지 않으려는 10대의 프라이드가 자신들과 다르다고 느끼게 한 것이다. 자신이 힘이 더 세면서도 영민에게 반격조차 못한 동순이는 정신적으로 영민에게 진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나 독특한 군상은 내비두고, 나는 어쩐지 동순이라는 주인공에 자꾸만 눈이 갔다. 버스 안에서 처음 만난 여고생 소림에게 빠져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때도, 자신이 좋아하는 소림을 영민에게 빼앗겼을 때도, 그 상처를 회복하고자 겨울 바다를 보러 갔을 때도, 그리고 공부를 시작했고, 새 여자친구인 승혜를 만났을 때도, 나는 늘 그와 함께 있는 기분이었다. 동순이야말로 평범하면서도 으레 볼 것 같은 10대들의 모습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나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동순은 나의 또다른 모습이었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말이나, 70년대에는 장난꾸러기 학생을 '얄개'라고 한 듯하다. 소설 속 주인공 이름에서 따온 명사였다. 10대의 내면적 고민이나 누구나 한 번쯤 겪을 법한 일상적인 에피소드로 당시 관람객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는 <고교얄개>는 지금으로 말하면 청춘 하이틴 영화였다.

<머저리 클럽>이 이 <고교얄개>의 계보를 잇는 작품일 것이다. 나는 <얄개> 책을 읽어본 일이 있는 사람으로서 얄개 쪽이 좀 더 70년대스럽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다. 2008년도에 나온 <머저리 클럽>이 얄개를 뛰어넘기에는 부족하겠지만, 나름 꾸려가는 전개와 여전히 동질감을 얻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점에서 <머저리 클럽> 역시 좋은 작품이라고 평가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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