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칼랭
로맹 가리 지음, 이주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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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프랑스 아파트 안에 비단뱀이 출몰했다. 그런 아파트에 살라면 살겠는가?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 시리즈 중 <얼룩무늬 띠>에서 사람을 죽이는 용도로 쓰였던 뱀과 같은 용도는 아니다. 그저 애완동물일 뿐이다. 그래, 복잡다난한 사회 속에서 애완동물의 자유도 없어야 어디 자유인이라 하겠는가. 그 정도는 여유롭게 허용할 수 있을 것 같다.

 

2m 20cm 길이라는 걸 알기 전까진.

 

37세의 독신남의 기괴한 생각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그가 아프리카 지도 속 지역 어디서 눈에 확 꽂혀서 데려왔든 서커스에서 재롱부리던 애에게 동정을 사서 데려왔든 그게 무슨 소용인가. 비단뱀은 비단뱀일 뿐이다. 고독으로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냉혈동물이 되는 걸 선택한 쿠쟁과 원래부터 냉혈동물이지만 따뜻한 비단뱀 그로칼랭이 만났다. 고독을 위로하는 방법은 냉혈동물과 냉혈동물의 만남이었다.

 

쿠쟁은 냉혈동물이지만 사랑을 할 줄 안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흑인 여인과 엘리베이터에서 만날 때마다 그는 그녀와의 결혼을 꿈꾼다. 비단뱀 그로칼랭 역시 사랑한다. 그로칼랭의 먹이를 하기 위해 산 생쥐 블롱딘도 애정한다. 사람들은 그가 냉혈동물이라고 했지만, 그는 차가운 피를 가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구하는 따스한 인물이었다.

 

한 아파트에 살면서 그로칼랭이 변이과정을 거치는 동안 쿠쟁 역시 변화한다. 완전한 변이를 꿈꾸지만 실패하는 그로칼랭으로부터 쿠쟁은 자신을 느낀다. 그것은 몹시 불쾌하고 변변치 못한 감정의 잔털같은 것이다. 목구멍에 걸린 아담스 애플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쿠쟁은 인간적 냉혈동물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렇게 변이를 마친다.

 

그가 말한다. 삶은 무의미하기 때문에 진지한 문제가 된다고.

 

그 고독하고 무료한 삶 속에서 그가 추구했던 구속으로부터의 탈피, 자유로의 흡수, 사회 속으로의 결합은 그로칼랭이 된 쿠쟁의 몰락으로 끝이 나고 말지만 우리는 여전히 제 2의 쿠쟁이 되어 또다시 이 냉혈한 세계를 헤매고 있다.

 

무의미한 삶 속에서 진지한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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