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
디파 아나파라 지음, 한정아 옮김 / 북로드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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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방글라데시 아동노동 실태를 다룬 공중파 다큐를 시청한 적이 있다. 새벽부터 일어나 해가 사라질 때까지 무수한 벽돌을 머리에 인 열두살 난 여자아이의 일상을 그려낸 다큐였다. 벽돌을 나르느라 사춘기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의 이마에는 70대 노인의 것 같은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많은 벽돌을 나르면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조차 매번 보장받지 못했다. 기계적으로 벽돌을 확인하고 딱지를 나눠주는 관리관의 아들은 셈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세 번을 세면 세 번 다 다른 그의 손을 거치지 않고선 돈은 나오지도 않았다. 학교에서 공부로 3위를 할 만큼 머리가 좋다던 12살 여자아이는 학교에 가는 대신 오늘도 힘겹게 벽돌을 나른다. 한달에 한 번 벽돌을 나르고 받은 수고로 엄마에게 작은 용돈을 받아 시장에 나가 간식도 사먹고 화장품 구경도 한다. 시장 나들이를 끝내고 돌아오는 소녀의 손에는 태어난 지 얼마 안된 남동생의 셔츠가 들려있다. 


어린 소녀는 그 싸구려 옷을 아기에게 입히며 더 어린 동생에게 속삭였다.


"누나가 옷 사줬으니까 너도 크면 누나한테 갚아야해, 알겠지?"


마치 이 굴레에서 벗어날 길은 동생 밖에 없는 것처럼, 그렇게 중얼거리며 소녀의 하루가 저물고 다큐도 끝이 났다.




『보라선열차와 사라진 아이들』은 인도 아동노동의 이야기를 담아난 장편 소설이다. 미스테리 소설의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그야말로 미스테리다. 작가 디파 아나파라는 아동 노동과 빈곤층의 실태에 대해선 독자에게 마치 영상처럼 보여주듯 묘사를 하는 필력이 뛰어난 사람이지만 과연 이 소설의 미스테리함은 장르 자체에 두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탐정도 있고 사건도 있는데 미스테리 장르가 주는 장르만의 특성은 안 보인다. 기이하다.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은 빈민가 아이들의 연쇄적 실종 사건이 벌어지면서 소년 자이를 둘러싼 일상의 파괴를 그려내고 있다. 불합리 속에서 체념하고 익숙한 사람들에게 또 다시 이름없는 분노를 옮기는 황색언론과 종교인들의 탐욕이 빈민가 아이들의 실종 사건을 더 우리네 사회로 공감하고 익숙하게 만든다. 낯선 세계로 끝날 줄 알았던 인도가 마치 옆집의 일인 것처럼 느껴지는 건 분명 비애로 가득찬 이 세계를 나도 함께 숨쉬고 걷고 있기 때문일까.


소년 자이의 시각이 메인으로 독자에게 보여지고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분량으로 사라진 아이들의 시각 또한 등장했다. 아무 탈이 없었다던 부모의 말과 달리 아이들은 저마다의 사연과 갈등에 처해 있는 상황이었다. 어른들이 모르는 문제은 단순한 따돌림을 넘어서 인도에 뿌리내린 차별에 관한 시야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런 아이들에게 있어 '보라선 열차'는 열망의 존재였다. 지금 내가 있는 불행한 삶을 바꾸고 보다 다른 희망을 찾아갈 마지막 수단의 상징이었다. 


인도의 빈곤층 실태와 아동노동에 관한 열악한 상황을 그려낸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의 문제는 끝날 때까지도 끝나지 않는다. 또다른 이름의 누군가에게 남아서 보라선열차를 꿈꾸는 아이들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불행한 예고도 사라지지 않는다. 디파 아나파라가 말하고 싶었던 결말이 정말로 '구원'이었는가라면 누굴 위한 구원인가를 되묻고 싶었다.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은 순문학 시각으로 미스테리 장르를 해석하려고 한 기이한 소설이었다. 내가 알던 미스테리는 아니었다고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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