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귀환 스토리콜렉터 7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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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가슴속의 야수가 고개를 쳐들었다. 이전부터 키우던 가슴속 짐승은 야행성이다.

  밤이 깊어지고 어두워질수록 눈빛이 강해진다.』-본문 p.12  中 -


드라마틱한 삶을 꿈꿔 본 일이 있다면, 드라마가 재미없어질 것이다.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더 생생한데 굳이 TV앞에서 남의 이야기 들어줄 이유가 없으니까. 너무나 시시하고 따분해서 아마 다른 볼거리를 찾게 될 것이다. 그렇다. 그래서 나는 최근에 드라마를 안 본다. 드라마가 아무리 잔혹하고 각박하게 묘사해도 감흥이 없다. 현실은 그보다 몇 수를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뉴스를 시청하고 있으면 내가 드라마를 보는 건지 뉴스를 보는 건지 헷갈린다. 그만큼 세상이 드라마틱한 지옥을 보여주고 있다.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귀환」은 이런 우리 사회를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11월 16일 새벽 1시 15분. '마쓰도' 시 한 주택가에서 의문의 폭음이 울려 퍼진다. 최초 목격자는 폭격음이 울린 주택의 이웃사람이었다. 이웃사람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중앙소방서 대원은 폭발한 내부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방 여기저기에 살점과 피가 흩어져 있었던 것이다. 수백 개의 조각으로 분쇄된 조직이 벽과 바닥에 달라붙어 온 방안을 캔버스 삼아 현란한 지옥도를 그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폭파되어 살인범의 증거라고 할 만한 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 주택에 사는 사람이 1년 전, 벌어진 '한노' 시의 연쇄살인마의 사건에 도움을 줬던 정신감정의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사건이 요동친다.


죽은 정신감정의는 오마에자키 교수로 작년 말에 '한노' 시 50음순 연쇄 살인('한노' 시에서 발생한 연쇄 살인으로, 50음순으로 범행 대상을 골라 살해해 이름만으로 누구든 그 대상이 될 수 있어 큰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사건의 관계자로 '한노' 시의 연쇄 살인마였던 '도마 가쓰오'를 잡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도마 가쓰오는 어떠한 원한이나 복수심이 아니라 단순히 50음순의 차례대로 죄없는 생명을 빼앗은 죄로 재판장에 섰으나, 빌어먹을 형법 39조의 책임능력이 없는 자는 나쁜 짓을 해도 벌할 수 없다는 조항때문에 의료교도소에서 편하게 치료생활을 하게 된다. 초등학생조차도 가차없이 죽인 남자가 정신이상자란 판정을 받았단 이유만으로 감옥생활을 피하다니. 죄를 진 자를 잡지 않겠다는 사법부의 아이러니한 조항이 발현된 것이다.


그 이후 도마 가쓰오는 치료교도소에서 풀려나게 되고, 주택 폭발 사건이 일어난 이후 행방이 묘연하다. 그리고 싱크대에 남아있던 교수와 도마 가쓰오의 지문이 남겨져 있는 컵. 행방이 묘연한 도마 가쓰오가 또다시 '개구리 남자'가 되어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것일까.

'한노' 시의 사건을 담당했던 와타세 경부와 고테가와 형사가 현장에 남겨진 악필의 낙서같은 쪽지를 보며 다시금 살인마를 추적하게 된다.


『만약 도마 가쓰오가 범인인데 수배도 못 하고 신병 확보도 못 하고 있다면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다. 오마에자키 교수 자신이 아주 적절히 말하지 않았던가.

  어린아이는 싫증나거나 혼나지 않는 한 마음에 든 놀이를 그만두려고 하지 않는다.』-본문 p.24  中 -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귀환」은 단순히 미친 연쇄살인마를 쫓는 일에 몰두하지 않는다. 심신장애란 이유로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악랄한 짐승들과 인권 보호란 이유로 그 귀찮은 짐승들을 처리해야 하는 높으신 분들의 구멍 숭숭 뚫린 대책들이 더 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있는 현실을 꼬집고 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이들이 진정 만족스러운 죗값을 받는 정의구현이 현실에서는 꿈도 꿀 수 없다. 사람을 죽여놓고 재판을 받기는 커녕 마치 면죄부마냥 정신감응서를 제출하는 역겨운 모습만 매스컴에 비춰질 뿐이다. 2018년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을 기억하는가? 남의 얼굴을 32번을 찌른 살인마의 부모가 경찰서에 오자마자 한 일은 '사죄'가 아니라 내 아들이 우울증으로 10년간 약을 복용했다는 '진단서' 제출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이런 짐승들을 풀어놓은 '우리'에 살고 있다는 걸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귀환」은 다각도의 시야로 직면한다. '우리'를 풀지 못하는 열악한 사회적 실태를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여내는데 성공한다. 심지어 이런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자칫 사회 비판으로만 빠질 수 있을지도 모를 사건을 적절하게 이용해먹는 노련한 술수까지 부리는 작가다. 거기에 뿌린 복선까지 차곡차곡 알차게 담아내고 박수칠 때 마무리하는 결말까지. 정말 완벽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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