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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론도 ㅣ 스토리콜렉터 70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안드레아스 그루버가 돌아왔다. 그의 골치덩이 주인공 마르틴 S. 슈나이더를 데리고. 지난 시리즈에서 아들의 복수를 하면서 마무리 지었던 충격적인 결말을 생각하면 응당 감옥에 있어야 마땅할 인간이 왜 또 시리즈의 주인공인가 싶었다. 하는 짓이나 말만 들으면 얌생이같이 얄미워서 없는 죄도 뒤집어 씌워서 한 10년간 썩게 하고 싶은 마르틴 S.슈나이더가 죄를 짓고도 나온 건 그의 제자이자 정의로운 동료인 자비네의 위증이었다. 자비네의 정의로운 캐릭터가 계속 죄책감에 휩싸이지 않도록 하려는 작가의 더 못된 장치가 결정타였지만 그건 책에서 확인하자.
<죽음의 론도>의 론도는 무슨 뜻일까. 이름이 멋있어서 어디 지역명인 줄 알았는데 책 어디에도 론도란 단어가 안 나온다. 찾아보니 론도는 악곡형식 중 하나로, '주제가 같은 상태로 여러번 되풀이되는 형식의 음악'을 말한다. <죽음의 론도>는 이와 같은 론도 형식의 살인사건이 스토리 전반을 차지한다. 연방 범죄수사국 소속의 수사관들의 가족들의 의문사 사건이 터지면 곧 이어 관련 수사관이 '자살'하는 형식의 사건이 반복되서 일어난다. 고속도로 위에서 역주행 한 남자, 철로 위에서 차와 함께 생을 마감한 여자, 은퇴를 앞둔 남편과의 여생을 꿈꿨으나 다리 밑 철로로 뛰어내린 여자, 욕실에서 총으로 자신의 턱을 쏜 남자... 연이은 자살 사건이 암시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 살인 음악에는 반드시 연주자가 필요하다. 20년 만에 출소한 미스테리한 남자, 하디의 등장으로 '연주자'의 역할을 하는 인물이 정해지고 그의 행적에 따라 사건이 벌어지는 일이 반복된다. 안드레아스의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이미 정해진 살인자의 행적 루트와 그가 누군지 모르고 파헤치는 수사관들이 평행론적인 이야기가 스토리를 이끄는 흥미로운 상황이 벌어진다. 이미 독자들은 살인 용의자를 알고 있다고 해서 재미가 반감되지 않는다. 수사관들이 머리를 짜내서 이 평행론적인 두 사건을 엮어 살인 용의자를 만나게 되는가는 무수한 추적과 논리적인 수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사건은 늘 함께 하던 주인공의 정직 처분으로 인해 고달프게 움직였던 티나와 자비네의 개고생도 눈길을 끈다.
하디에게 있어서 출소 이후의 나날은 20년 전 사건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잔재들이었다. 한 때 연방 범죄수사국에서 일했던 수사관이었으나 그만두고 마약 사업에 뛰어들어 승승장구 하던 이 남자의 인생은 20년 전 아내와 아이들을 죽이고 불법으로 챙긴 수익을 숨겼다는 죄에서 진짜 진실을 알기 위해 옛 동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죽음의 론도>는 전작 <죽음을 사랑한 소년>의 잔인함을 잃어버렸지만 악의 마음을 읽는다는 점에서 한층 더 프로파일러적인 소설로서 완벽해졌다.
인간은 죄를 짓고 산다. 의도하지 않아도 사람을 해칠 수 있다. 처음 지은 죄가 가볍든 무겁든 그 죄에서 발한 또 다른 무언가는 계속 태어나 짐처럼 인생을 압박하게 된다는 걸 보여주는 소설이었다고 생각한다. '원죄'를 받지 않기 위해 몸부림 치는 인간들을 위해 준비한 함정인 '파생죄'에 빠지지 않게 조심하자는 걸 깨닫게 해주는 <죽음의 론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