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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08년 5월
평점 :
그동안 읽어왔던 역사책과는 확실히 다르다.
이 책은 박제화된 역사를 거부한다. ‘서울은 깊다’는 제목처럼 지금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 서울을 추적하고 있다.
이 책의 미덕은 서울의 뿌리를 무엇보다 입체적으로 더듬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제일 감탄하며 읽었던 패러그랩은 ‘시계탑(220쪽)’이다. 이야기의 내용은 우리나라에 시계는 언제 등장했냐는 것이다. 일반적인 역사책대로 요약하자면 ‘우리나라 자명종은 1631년 정두원이 명나라에서 들여온 것이 시초가 됐다. 또 최초의 기계식 시계를 설치한 건조물(시계탑)로 추정되는 것은 1888년 경복궁 내 곽문각 옆 시계탑이다’로 정리된다.
참 딱딱하고 단절적인 표현이다. 역사교과서에서 이미 우리는 질리지 않았던가.
‘서울은 깊다’를 보자.
저자는 “학교 종이 땡땡땡~”이라는 동요로 시작한다.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배우는 이 노래, 그리고 무심코 지나쳤던 이 노래구절이 사실은 ‘자연스럽게 평생 시간의 지배를 받는 몸과 마음의 준비’였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것이 일상이 근대적 변화와 속도의 지배를 받게 되는 시초임을 깨닫게 한다.
저자는 서양식 시계가 이 땅에 출현하기 전까지, 시간은 신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랜 시간 동안 자연의 주기적 변화법칙을 터득하고 그에 맞추어 자신의 생애주기와 일상을 조직해왔다. 기간을 알리는 장치의 대부분은 종교나 신의 대리인 ‘왕’의 울타리 안에 있었다.
그런데 시계는 ‘시간을 균등한 각으로 분할할 수 있는 것’으로 변하게 했다. 그래서 ‘시간은 절약할 수도, 낭비할 수도, 계산할 수도 있는 사물’이 됐다.
시계탑이 서울에 세워질 무렵, 시간에 맞추어 증기기관차가 들어오고 전차가 출발하는 세상이 열린다. 대한의원(지금의 서울대병원)의 시계탑 바늘은 주사를 놓고, 밥을 먹게 하고, 잠을 재우는 ‘시각’을 알림으로써 사람의 행동을 직접 규제하기 시작한다.
거리의 시계가 집안의 벽면 위로 들어오고, 손목 위에도 놓이면서 저자는 ‘거기(시간)에 달라붙어 있던 신의 자취도 희미해져 갔다’고 읊조린다.
이 단락의 주제는 서울에 등장한 시계탑이였으나, 우리가 읽게 되는 텍스트는 서울 사람들의 사고와 일상과 사회적 관계가 근대화된 과정의 서술이다.
그리고 저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간다.
너무나 흔해진 시계는 책상 위에서, 주머니 속에서, 컴퓨터 안에서, 침대 옆에서 여전히 ‘전권을 쥔 신의 목소리’처럼 일상을 명령한다. 시계의 알람에 맞춰 일어나고 일을 하러 나가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책은 역사적 실체를 탐색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어떤 역사적 사실이 2009년 1월을 서울에서 살고 있는 나를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를 풍부하면서도 예리하게 고찰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역사 대중서와는 차별된다.
저자인 전우용씨는 현재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교수다. 그는 처음부터 이 책을 그동안 역사학이 다루지 않았던 내용들로 채우고자 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은 서울학연구소에서 1년에 두어 차례씩 여러 분야 소장학자들과 토론한 경험이 큰 힘이 됐다고 한다. 도시계획학‧도시공학‧행정학‧건축학‧문학‧문화인류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과 서울 공간과 서울 공간이 사람을 다루는 방법을 보고 배우면서 서울의 역사를 보는 안목이 많이 달라졌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서울의 역사,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이 책의 매력 때문에 저자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