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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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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엔 마지막 만났던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있는데, 계절이 풍경을 바꿔놓듯 세월은 우리 모습을 또 저만치 데려다 놓는다. 우리가 지켜본 부모와 같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허리는 꾸부정해지고 다리는 힘이 빠지며 무엇보다 마음이 쇠락해간다. 이제 모든 것은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

누구한테나 비밀스러운 삶의 이미지로 남겨진 어떤 한 장면, 어떤 한 모험, 어떤 한 그림이 있게 마련이다. 만약 그 빛나는 순간을 음미해 간다면, 그 기억은 평생 영혼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이쯤되면 설레는 누구보다 그리운 누군가만 가꾸만 쌓여간다. 너무 일찍 늙었다.

라 메르(la mer) #윌리엄_버틀러_예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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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프라임 죽음 - 국내 최초, 죽음을 실험하다!
EBS <데스> 제작팀 지음 / 책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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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메이 올리버는 <생이 끝났을 때>라는 시의 첫 두 연을 이렇게 쓰고 있다.

 

죽음이 찾아올 때

가을의 배고픈 곰처럼

죽음이 찾아와 지갑에서 반짝이는 동전들을 꺼내

나를 사고, 그 지갑을 닫을 때

 

나는 호기심과 경이로움에 차서

그 문으로 들어가리라.

그곳은 어떤 곳일까, 그 어둠의 오두막은.


작년 연말 한 해의 허물을 벗어놓을 무렵, 나는 정말 호기심에 찬 커다란 눈으로 어둠의 오두막에 들어서듯 <죽음>을 펼쳤다.

 

죽음에 접근하는 방식이야말로 그 문화가 생명을 어떻게 생각하고 생명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보여 준다. 성공과 소비를 지향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우리로부터 죽음을 잊게 함으로써 쾌락과 소비를 조장한다. 외면하고 회피해야 할 대상으로 죽음은 은폐되기 일쑤다. 그러나 죽음은 갑작스럽게 우리 삶 가운데에서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내가 가장 가까이 죽음에 다가섰던 것은 자동차사고와 어머니 임종 때였다. 한 번은 이른 새벽, 한적한 시골 곡선길에서 균형을 잃은 차가 길 밖으로 튕겨져 나간 사고였다. 혼자 타고 있던 차는 두어 번 굴렀는데, 그 짧은 순간 정말이지 근사체험자들의 증언처럼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사람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떠올랐다. 구급차가 도착해 구겨진 차에서 나를 꺼냈을 땐, 안전벨트 덕분에 왼팔에 약간의 찰과상만 입었을 뿐 기적처럼 멀쩡했다. 하지만 삶을 바라보는 관점은 그날로부터 완전히 뒤바뀌었다.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더 미루지 말고 곧바로 시작해야겠다는 가득한 의욕이 실제로 실행되었다.

 

또 한 번은 영양제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갔던 어머니께서 점점 심장박동이 약해지신 일이었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어머니는 이미 의식을 잃고 응급실에 계셨다. 나눠야 할 이야기도 많은데, 병원은 하루 두 번 30분 면회만을 허용했다. 이해되지 않았다. 죽음을 준비하며 삶을 정리해야 할 환자와 가족들이 생명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끝까지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일이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거나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해도, 우리는 그냥 산다. 시간을 보내고 세월을 보낸다. 하지만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면 그저 세월을 보내지만은 못한다. 아마도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 보는 것, 죽음을 앞둔 사람 곁을 지키는 것은 그저 세월을 흘려보내지 않는 방법을 알려 줄지도 모른다.”(<죽음>, p265, 책담 2014)

 

<죽음>(책담 2014)은 국내 최초로 죽음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노력으로 화제가 되었던 EBS 다큐프라임 <데스>를 텍스트로 담았다. <죽음>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이 짧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들의 삶은 크게 변할 것이다. 사실 죽음은 매우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사건이다. <죽음>죽음 교육에 대해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죽음을 잘 준비한다는 것은 죽음의 불가피성을 뼛속 깊이 새기고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인생수업>의 엘리바베스 퀴블러 로스도 죽음은 삶의 가장 마지막 순간이라며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일생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새해 벽두는 오히려 죽음을 생각하기 가장 좋은 때인지도 모른다. 죽음은 인생을 기념하고 축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메이 올리버의 <생이 끝났을 때>의 나머지 두 연으로 짧은 어둠의 오두막이야기를 끝내야겠다.

 

그리고 주위 모든 것을 형제자매처럼 바라보리라.

각각의 생명을 하나의 꽃처럼

들에 핀 야생화처럼 모두 같으면서 서로 다른.

 

생이 끝났을 때 나는 말하고 싶다.

내 생애 동안 나는 경이로움과 결혼한 신부였다고.

세상을 두 팔에 안은 신랑이었다고.

단지 이 세상을 방문한 것으로

생을 마치지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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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너만 없었다면 - 나를 힘들게 하는 당신에 대한 이야기
프랑수아 를로르.크리스토프 앙드레 지음, 최고나 옮김 / 책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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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가을 하늘이 연일 계속되고 있어서 이번 주말에는 남부의 바닷가를 다녀오기로 했다. 그런데 텔레비전 화면은 적도 부근의 바다에서 발생한 거대한 달팽이 모양의 구름띠 가장자리가 남부지방 인근에 자리잡고 있는 위성사진을 보여주었다. 기상캐스터는 대한해협 인근의 촘촘한 등압선을 가리키며 주말 내내 남부지방에 강풍이 불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바닷가 날씨가 때로는 좋지 않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복잡하지 않은 관측 자료와 앞선 경험만으로 장마가 시작될지 눈보라가 그칠지 내일의 기상을 알아 맞출 수 있다는 것, 나아가 미리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그렇다면 아내가 저기압이거나 사무실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을 때 역시, 같은 방식으로 기상도를 예측하고 대처할 수는 없을까.

 

프랑스의 정신과 전문의 프랑수아 를로르와 심리치료사 크리스토프 앙드레가 인간관계의 기상전문가가 되어, 이상 징후를 보이는 성격의 기상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지침서를 마련했다. 이상 징후를 보이는 성격은 금방이라도 폭풍우가 몰아치거나 한파가 급습할 것 같아서 내 인생에 없었으면하고 바라는 사람들의 성격, 다시 말해 사람들의 대처가 절실한 힘든 성격들이다. 두 전문의는 기업에서 스트레스 관리를 자문해 주면서 만난 다양한 직급과 수준의 직장인들이 가정과 직장에서 겪은 힘든 성격들에 대한 상담 경험들을 《내 인생에 너만 없었다면》(책담, 2014)으로 정리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사회는 점점 강박적으로 되어 간다고 말할 수 있다. 대량생산으로 인해 기업들은 점점 더 엄격한 절차를 고안해 내야 했다. 언제든 경쟁사로 갈 수 있는 까다로운 소비자들을 만족시키려면 모두 동일하고 완벽하게 믿을 만한 제품들을 생산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안전에 대한 걱정 때문에 요쿠르트 제조에서부터 아기 의자나 자동차 제조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표준이 만들어졌다. 이 모든 절차들은 꾸준하게 평가와 검사를 받는다. … 현대의 정부는 수치와 수치, 더욱 검증된 수치들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현대 사회는 강박성 성격의 사람들에게도 자리를 내어 준다. (4강박성 성격에 대처하는 법’, p112)


강박성 성격의 사람들은 세부 사항과 절차, 정리, 조직에 집착하는 완벽주의자이며, 고집이 세고 자기가 정한 규칙에 따라 자신이 생각한 대로 일이 진행되도록 끈질기게 주장한다. 따뜻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매우 형식적이고 차가우며 어찌할 바를 몰라 인간관계에 냉정하다. 또한 실수할까 봐 두려워서 결정을 내리는 데 어려움이 많고, 망설이거나 지나치게 궤변을 늘어놓는다. 강박성 사회가 양산한 이러한 강박성 성격의 소유자들은 나의 상사일수도, 직장 동료나 부하직원일수도, 나의 배우자, 그리고 바로 내 자신일수도 있다.


 

이렇게 《내 인생에 너만 없었다면》의 힘든 성격유형들을 하나씩 살펴보고 있으면, 역사책과 소설 혹은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우리의 인간관계 테두리 안에 있는 여러 사람들이 떠오른다. 가령 세상에 대한 불신과 완고함을 보이는 편집성 성격이나, 자신은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규칙이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믿는 자기애성 성격의 경우, 독재자들에게서 쉽게 발견된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스탈린과 같은 독재자들의 목록이 또 얼마나 많은가.

 

극단적으로 의심하는 그들의 성격은 전쟁이나 쿠데타, 혁명 등 권좌에 이르기까지 겪은 위험천만한 상황들에서 살아남도록 도와준 장점이었다. 더구나 그들의 완고함과 에너지는 두려움에 떨고 길을 잃은 국민들 눈에는 매우 안심이 되는 지도자의 모습으로 보인다. 그들이 제시하는 간단하고 자극적인 해결책의 공통점은 현재의 비극을 낳은 주적을 찾아내는 것으로, 적이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막으면 평화와 행복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시대나 정치 경향에 따라 ''은 달라진다. 그렇지만 편집성 성격의 소유자는 꾸준히 적들을 제거해야 행복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온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2편집성 성격에 대처하는 법’, p51)

 

《꾸뻬 씨의 행복 여행》으로 나는 행복한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잔잔한 배움을 일러주었던 를로르와 《나라서 참 다행이다》의 마음주치의 앙드레는 오랜 연구와 철저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풍부한 예시들을 보여주고 있어,곳곳에서 정말 ‘내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또한 다른 많은 온화한 성격들 보다 비바람 치는 힘든 성격들이 성격 특성을 결정짓는 환경 요소에 의해 어떻게 여러 세대를 거쳐 오늘날 더욱 발달할 수 있었는지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충실히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를로르와 앙드레는 힘든 성격이 고통스럽지만 내 인생에서 없애려고' 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대머리나 근시를 가진 사람에게 왜 머리카락이 없는지 글을 잘 읽지 못하는지 따지거나 발목을 접질린 사람에게 왜 절뚝거리느냐고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힘든 성격도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를로르와 앙드레는 인간관계의 기상전문가로서 11가지 ‘힘든 성격’에 대해 [이렇게 하라], [이렇게 하지 마라]라는 통찰력 있는 대처방법들을 제시한다. 임상 경험의 성공적인 실례들과 함께 정리된 이 대처방법들은 이 책을 가까이에 놓고 수시로 펼쳐봐야 할 훌륭한 지침서로 만들어준다. 이 지침서만 있다면, 가정과 직장에 닥치는 어떤 악천후 속에서도 인간관계의 항해를 평화롭고 흥미롭게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주에는 강풍을 동반한 태풍이 어서 지나고 남부지방의 바다에도 눈부신 햇살이 비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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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 씨의 행복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오유란 옮김, 베아트리체 리 그림 / 오래된미래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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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정신과의사 프랑수아 플로르의 《꾸뻬 씨의 행복 여행》

 

며칠 하염없이 가을비가 내리고 날이 개었다. 가벼운 책 한 권을 들고 거리로 나가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다. 며칠새 찬 바람도 많이 늘었다. 엷어진 가을햇살 속을 지나는 사람들이 이따금 뒤를 돌아보는 것이 보였다. 가을이 되어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여행 떠날 생각을 한다.

 

사실 올해도 몇 차례 여행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신년 벽두부터 건실한 목표를 세우고 더 나은 성과를 위해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고, 봄꽃의 기운이 감지되기가 무섭게 틈틈이 소풍을 계획했었다. 목표가 이뤄지면 지금의 일도 집어치울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확신으로 여름 휴가지의 소란스러움과 추석 명절의 혼잡함도 거뜬히 버텨냈다.

 

그런데 그만 오늘 오후 투명한 일몰의 시간에 목격하고야 말았다. 공중에 사선을 그으며 느리게 떨어지는 플라타너스 잎새 하나. 쿵 하고 가슴 속이 울린다. 성공적인 성과들이 있었고 능력을 인정받는 칭찬들도 들었지만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 ‘나는 행복한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자문해야 할 계절이 된 것이다. 참으로 여행이 필요한 계절이다.

 

낯선 프랑스 이름의 꾸뻬 씨도 그렇게 특별한 여행을 계획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관심을 가진 파리의 유능한 정신과 의사지만, 자신이 사람들을 진정한 행복에 이르게 할 수는 없다는 사실에 점점 지쳐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무엇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무엇이 불행하게 하는지 찾아볼 작정이다. 그리고 특별히 준비한 작은 수첩에 여행에서 발견한 행복에 관한 배움들을 적어가기로 했다.


 

아이티에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꾸뻬는 불치병으로 인해 자주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야만 하는 자밀라를 만난다. 그녀는 자기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자신의 나라(아마도 이라크)와 가족에게 행복해질 수 있는 더 많은 기회가 있다는 것이 기쁘다고 말한다 그녀에게 있어 행복은 자신의 나라가 평화롭고 잘사는 나라가 되는 것, 또한 자신의 남동생들이 컸을 때 전쟁터에 죽으러 가지 않는 것, 그녀의 또 다른 여동생에게 좋은 남편과 아이들이 생기고 그 아이들이 안심하고 학교에 갈 수 있는 것과 방학을 갖는 것, 그리고 장차 그 아이들이 커서 의사나 변호사나 숲을 지키는 사람, 또는 예술가, 아니면 아이들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꾸뻬는 비행기에서 내려 행복에 관한 배움 하나를 수첩에 덧붙였다.

 

배움 17 _ 행복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매일매일 되풀이해 주어지는 당연한 삶의 환경들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행복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아름다운 현대식 건물들로 넘쳐나는 대도시,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배고플 때 음식을 먹고, 병에 걸려 몸이 아프면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또한 그리 비싼 돈을 들이지 않고도 여러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다양한 종류의 영화들을 감상할 수 있고, 박물관과 수영장, 여유롭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장소들도 있다. 우리가 사는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조차 전세계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는 않는다.

 

배움 20 _ 행복은 사물들을 보는 방식에 있다

배움 23 _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행복을 찾아 늘 과거나 미래로 달려가고,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한다. 진정한 행복은 먼 훗날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현재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십 년 전 국내에 소개된 《꾸뻬 씨의 행복 여행》(오래된미래, 2004)은 실제 파리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프랑수아 를로르(Francois Lelord)가 자신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여러 개의 이야기 플롯이 교차하고 있어 단편 소설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인도의 명상센터에서 생활한 뒤 영화 공부를 위해 프랑스로 건너간 오유란 씨가 류시화 시인의 소개로 번역했다. 뿐만 아니라, 유럽 청년 미술상을 수상한 화가 이지연 씨의 밝고 모던한 그림들이 책 중간중간에 쉼터를 마련해준다.

 

서문에서 를로르는 어린 시절, 삶에 대한 너무도 많은 것들을 얌전히 기다리라고만 배워온 나 같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스스로 찾아나서는 여행이야말로 삶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일이다.”라고 적었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 계획한 일들을 끝내야 한다는 다급함에서 벗어나, 열심히 일한 나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여행이 아니라, 내 자신과 나의 행복을 정직하게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깊어가는 가을, 가벼운 마음으로 를로르의 책 한 권을 들고 나의 행복을 기록할 여행길에 오르는 것은 어떨까. 모든 생각을 멈추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시간을 갖는 것,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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