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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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도시를 움켜쥐고 있던 먹구름이 조금씩 손아귀의 힘을 풀었다. 어두운 밤 맹렬하던 장대비와 천둥, 번개를 이렇게 쉽게 잊어도 될까, 언뜻 비치기 시작한 파란 하늘과 이제야 당도한 햇살이 야속했다.

쏟아진 빗방울 하나하나를 삼킨 강은 잔뜩 불어 있었다. 붉은 놀을 끌어안은 강은 군중처럼 서서히 하구를 향해 나아갔다. 하늘에는 파르스름한 저녁 빛이 배어들기 시작했다.

시시각각 저녁이 오고 있다. 습기 가신 마른 바람이 분다. 검은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눈부시게 잎 스치는 소리가 난다.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봄에 피는 꽃들, 버드나무들 빗방울과 눈송이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찾아오는 아침,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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