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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잠들지 않는다 - 제4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수상작
양지현 지음 / 노블마인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1983년생 젊은 작가, 디지털작가상 수상작...이런 타이틀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한국의 히가시노 게이고를 꿈꾸는'이라는 카피였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인 나로서는 구미가 당기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재빨리 구입해서 손에 쥐었다. 일단 신비로운 느낌의 표지가 마음에 들었고, 책을 펼치자마자 확 눈을 끌어당기는 도입부가 기대를 갖게 했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이라 들고 다니며 찔끔찔끔 읽을 작정이었는데, 한번 펼치니 멈출 수가 없어 단숨에 결말까지 달리고 말았다.
이야기는 두 주인공 종혁과 창모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고등학교 수학 교사인 종혁은 어느 날 두 친구가 죽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놀라고 애도할 시간도 없이, 종혁은 고등학교 후배인 안창모 형사를 통해 자신이 유력한 용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교 시절 종혁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품고 있던 창모는 몇 가지 단서를 근거로 집요하게 종혁을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종혁과 창모를 둘러싼 인물들이 엮는 드라마가 펼쳐진다.
책을 덮고 제일 먼저 든 감상은 신인인데도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이끌어 나가는 배짱과 순발력이 상당하다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독자에게 한 발 멈춰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려나간다. 그러기 위함인지 복잡한 트릭이나 반전을 위한 단서 같은 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 점은 단점이 될 수도, 장점이 될 수도 있는데, 아직 신인 작가이니 꾸준한 작품 활동을 통해 계속 보강해 나가면 훌륭한 무기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이나 분위기를 연출하는 능력도 상당하다. 읽노라면 등장인물의 이미지나 말투는 물론 생김생김까지 어렴풋이 눈앞에 떠오른다. 작가가 오랜 훈련을 쌓은 게 아니라면 '이야기하는 법'에 대한 본능적인 감이 있는 것인데, 이러한 감만 있다면 어떤 소재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트릭에 초점을 두는 본격 추리 마니아에게는 아쉬울 수도 있지만 나는 협소한 우리 추리소설 시장을 다채롭게 해줄 가능성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라 본다.
요컨대 <기억은 잠들지 않는다>는 어제 없었던 작가가 오늘 나타났다는 기쁨과, 이 작가에 대한 내일의 기대를 아울러 안겨준 작품이었다. 작가의 건필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