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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양장)
이케다 가요코 구성, C. 더글러스 러미스 영역, 한성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누구나 행복해 지기를 원한다. 그런데... <행복해진다>는 것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것이 어찌나 상대적인 개념이던지 막상 정의를 하고자 들면 막연하다못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도대체 행복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니 행복이라는 것이 정말 있기나 한걸까...
행복, 사랑, 기쁨 등등의 인간이 가질 수 있다고 보통 생각되어지는 일련의 감정들 내지는 규준들은(사실 규준이라 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누구나 희구하는 것들이며, 따라서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 행복이 타자와의 비교 안에서만 가능해지는 행복이라면, 내가 상대보다 얼마만큼 더 가졌다에서 오는 상대적일뿐만 아니라 물질 중심적이고, 이기적이기까지 한 행복이라면..그것은 과연 진정성을 가질 수 있는 유의미한 행복일까
<자가용을 소유한 자는 100명 중 7명 안에 드는 한 사람입니다><만일 당신이 공습이나 폭격, 지뢰로 인한 살육과 무장단체의 강간이나 납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렇지 않은 20명보다 축복받았습니다><만일 당신이 어떤 괴롭힘이나 체포와 고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따라 움직이고 말할 수 있다면 그렇지 못한 48명보다 축복받았습니다>
그래서...우리는 축복받았고 행복하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 할까?물론 역으로 생각해서 우리가 쉬이 잊고마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물론,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아무 의미도 가질 수 없다- 더 나아가 행동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도 있겠지만많은 경우, 대다수는 <그러므로 나는 행복하다> 의 자기 위안의 동기로 삼는듯하다.
우리는 분명히 삶에서 경험하고 있다.우리가 자동차가 있는 7명이라 하여 더 행복하지 않을 수 있고,대학교육을 받은 1명이라고 더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 2명 안에 든다고 더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자본주의 논리 그것만이 행복의 잣대로 작용하는 이 책에서 자기 위안과 행복을 느낀다면 책을 읽기 시작한 10분 후에 (10분정도면 충분히 읽을 수 있으므로) 우리의 눈이 다시 현실로 되돌아 왔을 때 그 때도 그 신기루 같은 행복이 계속될지 의문이다.
결코 100명으로는 줄여볼 수 없는 이 세계에서도 그 충만함이 지속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