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왜 눈을 감고 살게 되었을까? 눈을 보고 사람을 대하면 많은 관계 속에서 오해도 생겨나고 그로 인해 전쟁까지 벌어지게 되었다는 결론으로 미래 사회 어디엔가에선 사람을 버블 속에 넣고 눈을 잠궜다. 제2인류라 불리는 그들에게는 3가지 원칙이 있다. 서로 공유하는 정보의 양을 제한하고, 최소한의 단위로 버블에 거주하며, 버블 밖에서는 눈을 감을 것. 사람들은 서로의 이름대신 번호로 상대방을 인식한다.주인공 07의 세상은 자신만의 공간인 버블, 그가 사는 사회인 중앙, 그 중앙을 둘러싼 자신은 갈 수 없는 ‘외곽’으로 이루어져 있다. 07은 중앙에서 관리직 일을 한다. 주로 주민 평가 업무를 맡고 있다. 그런 07의 앞에 126이란 타인이 나타나기 전까지 07의 버블 속은 평온했다. <오늘은 일상에 발생한 오류였다. 오류를 겪으면서 내가 즐거웠다는 사실은, 또 하나의 오류다. 아마 평생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을 것이다. 외로웠다. 30p>눈을 뜨고 사람들과 만나 부대끼고 싶다는 07의 소망이 그를 ‘외곽’으로 이끌었다. 외곽에서의 새로운 생활은 07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사람들의 말 속에는 숨은 의미가 있다는 것, 126를 대하는 자신의 낯선 감정, 그리고 불안과 의심까지…07은 외곽 생활에 적응하면서 어쩐지 자신은 ‘이주’자들과 다른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긴급 구출이라더니…” 라는 말 한 마디로 그녀를 둘러싼 세상은 또 한 번 붕괴하기 시작하는데…아이 둘을 키우며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장난감 하나로 다툼이 일어날 때 때로 ‘이렇게 싸우면 장난감 책장 위에 올려둘 거야. 둘이 안 싸울 수 있을 때 다시 돌려줄게.” 라고 다툼의 근원을 제거하기도 했었다. 눈을 감고 사람을 대하는 버블 속 세상을 보며 문득 그때 생각이 났다. 결국 문제의 근원을 소거한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다. 다툼은 끊임없이 일어날 수 있고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화해하는 법이다. 이 책을 읽으며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 속 세상이 떠올랐다. 어쩐지 조금 순한 맛 손원평 작가인 것도 같았다. 안전하지만 외로운 세상에서 알을 깨고 나온 2024 데미안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