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미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 - 어른과 아이가 함께 배우는 교양 미술
프랑수아즈 바르브 갈 지음, 박소현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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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와 미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 프랑수아즈 바르브 갈 / 박소현 옮김, 동양북스


 


  책 제목은 아이와 미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나는 아이가 없다. 심지어는 솔로다. 그런 내가 이 책을 골라든 것은 미술이라는 키워드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아이가 없지만, 아이를 갈망한다. 아이는 내 안 어딘가에 있는 아이다. 불편하고 불합리한 TMI를 뱉어버리는 방법을 모른 채 모범생이 되기를 갈망했던 아이. 어떤 답이 나오지 않으면 불편했던 아이, 그리고 나름대로 어떤 정리를 해주어야만 편히 잠을 들 수 있었던 아이. 독창적이고 창의적이라고 자신하던 아이. 하지만 재료를 가져다주면 온종일 멋진 작품을 생각만 하다가 밤이 늦어서야 퍼즐 조각에 간신히 손을 대다 스르르 잠들어버리는 아이. 

  꿈에서는 퍼즐조각을 맞추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나 유형화된 결과물을 먼저 상상해버린 대가를 치르느라 오히려 꿈에서 추방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그 아이에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다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자고 속삭인다. 하지만 아이는 배우기 싫다 한다. 노잼이라고 한다. 


  - 응, 노잼이야. 제법인데? 


  나는 아이에게 자신있는 표현을 한 것을 칭찬한다. 아이는 살짝 눈을 빛낸다.


  - 세상이 노잼이라고? 그럼 왜 사는 건데?


  아이가 반응해온다. 나는 아이에게 여러가지 이유를 만들어내려고 진땀을 내다가, 이번에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한다.


  어려서부터 사유강박이라는 마법에 걸렸다. 나는 그 대가를 요즘에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그래서 말하려는 바가 뭔데.'


  '어떤 메시지를 담아내려 한 걸까?'


  '이면의 배경지식을 모르니 알 수가 있나'


  많은 핑계와 구실을 만들어내며 나는 작품들 앞에서 문외한이 되고 입을 닫아버린다. 


  요즘의 문학작품 시, 소설은 딱히 사유가 없는 것들도 많다. 스타일, 새롭게 말하는 방식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여기서 필요한 건 꼰대가 아니라 아이다. 그 아이.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집어들었다. 아이가 되어보기 위해서라기보단, 내 안에 아직 숨어 있는 아이에게 고개를 삐죽 내밀어 보라고 말하고 싶어서. 

  배움이라는 게 웃긴 것이 이야기를 듣는 쪽보다 이야기를 하는 쪽에서 더 많이 배운다는 사실이다. 남에게 이야기를 건넨다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예술가의 작품을 두고 이야기를 하자니, 내 마음부터 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미술관에 예매를 한다. 그러고나서 습관적으로 도슨트를 검색한다. 이미 예약이 다 차 있으면 별 수 없이 안내서가 될 이어폰과 플레이어를 대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것조차 없으면 불안하다. 나 빼고 다 작품을 이해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귀에 꽂은 것 없이 그냥 멍때리며 그림을 둘러볼 뿐이다.


  가이드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여도 막상 그림 앞에 바짝 다가서면 멈칫한다. 그러다가 나는 또 대열을 따라 이동한다. 그러면서 자기만의 속도를 잃는다. 내가 그 그림을 왜 좋아할까, 더 나아가 내가 그 화가를 좋아하는 이유까지 잃어버린다. 그리고 아이는 그만큼 나에게 멀어져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고쳐나간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냥 멍때리며 그림을 둘러보는 것에서 즐거운 발걸음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아이에게 미술을 보는 안목 가르치기(차례에는 그렇게 써 있지만)를 위한 목적이 전부가 아니다. 아이에게 그림을 보는, 아이의 속도에 맞추어 함께 그림을 보며 이야기하는 동안, 어른도 안목을 키우고 새롭게 바라보는 방식으로 테마강요, 사유강박에서 벗어나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을 것같다. 


  그렇다고 기존의 미술을 보는 태도들을 전복시킨다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어쩌면 그림을 바라보는 안목이라는 게, 대화를 하는 스타일을 살짝 비틀어보는 정도로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대상이 왜 아이인가. 독자가 부모라서? 그게 다는 아닐 것이다.

  아이와 미술 이라는 두 대상이 만나면서 세계는 한층 더 풍부하고 유연해진다. 

  그래서 아이와 미술이라는 만남이 상상의 세계에서 자유로운 여행을 하고, 현실로 복귀할 때면 세상이 조금 근사해져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


  책의 구성은 심플하다.


  1부에서는 아이와 함께 미술을 감상하는 태도에 대해 다각적으로 이야기한다.

  2부는 이 책의 진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여러 화가들의 도판을 싣고, 연령대별로  5~7, 8~10, 11~13세의 눈높이에 맞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내가 가장 흥미있는 연령대는 5~7세였다. 나는 해묵은 많은 것들을 벗겨내고 해체시켜야 하지만, 5~7세의 연령들은 아예 해체할 것이 없기 때문에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만일, 이 책을 빨리 읽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면?

  대부분은 아이들에게 미술을 감상하는 태도들을 다각적으로 정리한 1부를 읽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의 진심은 2부에 있는 것 같다. 

  2부는 별 거 없다. 그림을 보고, 대화를 나눈다. 

  미술작품 앞에 서서 감상하는 것도 딱 그렇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2부의 한 장 한 장을 즐겁게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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