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병리학 - 왜 질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오는가
폴 파머 지음, 김주연.리병도 옮김 / 후마니타스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최근 한국에서 번역되어 출간된 폴 파머의 <권력의 병리학>은 세계적으로 만연한 권력에 의한 건강 파괴 혹은 착취 행태에 대한 뜨거운 르포이다. 저자는 의사이자 인류학자이다. 그는 아이티 시골에서 가난한 환자를 돌보기도 하지만, 하버드 의대에서 교수로서 학생을 교육하고 연구에 종사한다. 하지만 이 책은 환자 진료에 대한 수기도 아니고, 의학자이자 인류학자로서 펴낸 연구서는 더더욱 아니다. 그는 진료 현장에서 시작해 세계의 불평등한 권력 문제로, 권력 문제에서 공중보건학, 인류학 등 학문의 문제로, 더 나아가 인권 운동 그룹들의 문제로 논의를 넓히면서 읽는 이의 고민을 심화시킨다. 이 책은 건강과 인권과의 관계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울리는 죽비소리와 같다. 


권력과 정치, 인권 등을 언급하는 그의 얘기가 지루하지 않은 것은 구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학자이기 전에 의사이다. 그러다보니 그는 아이티, 멕시코, 러시아, 페루, 르완다 등지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과 함께 했다. 그러한 동참과 연대는 이론과 주장 이전에 그들의 삶의 자리에 동참하도록 이끈다. 


경험이 구체적인만큼 논의의 주제도 다양하다. 그는 공중보건과 개인의 인권, 질병의 사회경제적 요인, 사회적 저항과 건강, 다제내성 결핵에 대한 접근, 해방신학, 의료의 상품화 및 시장주의적 의료의 득세, 교정시설 생활자의 인권 등의 문제뿐 아니라, 세계 인권 운동 그룹의 이중성, 주류 인류학적 접근의 문제점 등 운동적, 학문적 주제까지 다루고 있다. 이 책의 한 장 한 장에서 다루는 내용으로 세미나를 열어도 아마도 1년 치의 세미나를 하고도 모자랄 듯하다. 


문제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읽는 재미를 더한다. 글에서 느껴지는 그의 모습은 ‘싸움꾼’ 그 자체이다. 그는 학자연한 태도를 버리고, 온갖 문제에 대해 문제 제기하고, 여러 그룹에 대해 비판의 화살을 날린다. 공중보건학자들을 향해서는 그들이 환자 개별의 아픔은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비용-효과만 따진다고 일갈한다. 주류 인권 운동 그룹을 향해서는 이들이 시민, 정치적 권리에만 집착하고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로까지 자신의 시야를 넓히지 않는 것을 나무란다. 이들이 제3세계에 인도주의적 구호를 펼치면서 해당 지역의 문화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넌더리를 내기도 한다. 주류 인류학자들을 향해서는 이들이 문화적 상대주의를 지나치게 옹호하면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적 불평등을 외면한다고 쓴소리를 퍼붓는다. 그가 좌충우돌하며 날리는 비판과 쓴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그래, 그래’ 맞장구를 치다가도 어느 순간 섬뜩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화살이 나를 향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를 때다. 


사안의 구체성과 다루는 주제의 다양성, 철저한 비판 의식이 이 책의 장점이라면, 다양한 문제에 대한 대안적 접근의 미진함이 이 책의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그는 고통과 함께 하는 것의 중요성, 가난한 이들의 관점에서의 접근 등을 강조하지만 그것 이상의 구체적 대안을  서술하고 있지 않다. 하기야 그러한 것까지 한 권의 책에 다 바란다면 그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 저자가 공중보건학자, 인권 운동 그룹, 인류학자 등에게 비판의 화살을 날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현실적인 조건 속에서 그들의 결정과 행동을 넘는 대안적 접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폴 파머조차도 진료실의 의사가 아니라 지역사회 혹은 국가 보건의료 정책을 좌우하는 자리에 있다면 비슷한 결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닐까 하는 종류의 생각들. 좀 더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그가 제1세계 지식인, 그것도 하버드 의대 교수이기에 가능했던 비판과 행동들이었다고 평가 절하할 여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은 두 가지 점에서 한국사회 보건의료인들에게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진료실의 의료인 뿐 아니라, 공중보건 종사자 및 보건의료 연구자에게도 상대적으로 부족한 건강에 대한 인권 관점의 접근에 대한 시야를 넓혀준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유엔 사무총장을 낸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국제 사회에 대한 기여와 연대가 적은 우리 사회에 국제적 건강과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500페이지나 되는 책을 만들기 위해 희생된 나무들에게 부끄럽지는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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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6-23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리뷰 축하합니다.
그래요. 이 책은 나무들에게 부끄럽진 않은 책이죠.
그나저나... 뭐, 세계적인 신종플루에도 이 정부는 아주 무관심한 듯 하야...
뭐, 쥐 소보듯 하는 느낌이... 엉뚱하게 의료보험만 부자형으로 고치려 하구요... ㅠㅜ

폭풍from낙원 2009-06-24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게 말여요, 이 놈의 정부 언제 끝나려나...
 
이상은 13집 - The Third Place
이상은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젊은 사람이 ‘영원’이니 ‘하늘’이니 하며 ‘초월’을 이야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바람’이니 ‘숲’이니 얘기하며 ‘생태주의’ 메시지를 전하는 시나 노래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마시길! 나는 ‘초월’이나 ‘생태주의’에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럴 만한 사람들이 진정성을 담보로 하는 얘기까지 시니컬하게 무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초월’이나 ‘생태주의’가 트랜드화되는 것을 거부할 따름.

그런 점에서 이상은의 이번 13집 ‘The 3rd Place'의 가사들은 내 취향이 아니다. “이곳도 아니고 저곳도 아닌 또 다른 곳이 있다네. 이 길도 아니고 저 길도 아닌 또 다른 길이 있다네...”(제3의공간 중에서)라니! 이상은의 음악세계가 바뀐 이후로 그녀의 음악이 내 맘에 쏙 들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늘 그녀의 가사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녀의 신보가 나올때면 나는 늘 구매를 망설이게 되었던 것 같다. 그녀의 노래 가사는 너무 형이상학적이고 초월적이다. 나와 같은 또래인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녀는 너무 빨리 늙어버린 걸까?

하지만 이상은의 이번 13번째 음반은 노래 가사만 빼고 다 좋다. 전체적인 앨범의 구성이며, 한 곡 한 곡 정성들여 만들어진 노래 하나하나는 모두 내 귀를 끌어당긴다. 특히 그녀의 음악적 파트너인 하지무 다케다, 이병훈과 함께 만들어낸 사운드들은 적절히 촘촘하고 적절히 느슨하여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이상은의 목소리는 이번 앨범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어깨에 힘을 빼고 잔잔히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가볍고 은은하게 나를 감싼다. 부클릿 디자인은 다소 소녀 취향처럼 느껴져서 정이 많이 가진 않지만, 앨범의 컨셉과 잘 맞아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요즘 계속 그녀의 앨범을 듣고 있다. 들을 수록 좋은 점이 많이 발견되는 음반이다. 다만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그녀가 좀더 ‘땅’으로 내려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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