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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 박찬일의 이딸리아 맛보기
박찬일 지음 / 창비 / 2009년 9월
평점 :
이탈리아 북부에서 22시간이 걸려 도착한 시칠리아에서
박찬일이라는 한국 이름 대신 로베르또라고 불리며 그렇게 초짜 요리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깨끗한 하얀 유니폼에 멋져 보이기만 요리사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주방 안은 손님이 주문한 요리를 제 시간에 만들어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요리사들의 모습과 열기만이 남아있다.
행여 실수라도 하면 온갖 욕설과 함께 주방의 도구들이 날라 올 각오를 하고...
더구나 감정에 솔직하고 열정적(?)인 이탈리아가 아닌가...
그러면서도 무뚝뚝한 모습 뒤에 툭하듯 던지는 자상함과 따뜻함에 시칠리아 사람들의 정이 듬뿍 느껴진다.
큰 실수를 해도 감싸주웠던 주방장님, 어머니 같았던 마리아, 동양에서 온 한국인이 불쌍하다며 에스프레소 한 잔을 주던 카페 아저씨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꼭 닮았다.
이제는 옆동네 출신 여배우의 노출이 나오는 영화에 설레는 귀엽고 순진한 시칠리아 남자들의 모습과 신앙심은 그리 깊지 않지만 불교에 빠져 남편들의 못마땅해하는 눈길을 무시하며 꿋꿋하게 믿음을 이어가는 시칠리아 아주머니들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시칠리아 요리에 대한 자부심은 그 누구보다 강하다.
미국 관광객이이나 요리에 불평을 하는 손님들에게도 그 자부심이 나와서 문제이긴 하지만
요리사란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한 그릇의 요리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통제하고 감사하는 관찰자여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모양이나 장식보다는 직접 구한 가장 좋은 재료로, 가장 정통적인 조리법으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먹는 요리를 만드는 로베르또의 스승이자 정신적 대부인 주제빼 주방장님의 모습에서 진정한 이탈리아 요리의 정신이 느껴진다.
시칠리아도 서구화와 유행에서 더이상 벗어 날 수는 없다고 하지만 언제나 시칠리아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주제빼 주방장님의 정성이 가득 담긴 요리를 맛보고 싶다.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을 남겨두고 떠나온 유학생활이 어디 쉬웠겠냐마는 이 모든 걸 이겨낼 수 있게 도와 준 훌륭한 스승, 다혈질 다정다감한 시칠리아 사람들과의 인연이 부러움으로 가득 남는 맛있는 요리를 먹을 때처럼 읽는 내내 행복하고 즐거움을 주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