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 시인선 80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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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기형도를 몰라도 그의 시 [빈집]의 한 구절 정도는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로 시작하여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로 끝나는 이 시를 보면 가슴 한구석이 아프다.

사랑하는 것들을 빈집에 가두고 문을 잠그는 시인의 모습이 슬프다 못해 안쓰럽다. 자의든 타의든 소중한 것들을 잃는다는 건 안타까움을 넘어선다. 그의 시어들은 잃은 것들에 대한 쓸쓸한 몸부림이다.

그는 사랑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아픈, 여린 사람이었을 것이다. 허나 그는 죽은 것들은 너무 사랑했다. 어쩐지 그의 슬픔이 내게 묻어날까 두렵기도 하다. 속 좁은 나는 희망을, 빈 껍데기뿐인 희망이라도 애써 내뱉어 본다. 이렇게 라도 살겠다고.

첫 번째 시집이 유고시집이 되었다. 할 말은 많을 테지만 그는 물러서는 방법도 아는 걸까. 아끼고 사랑하고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이 있기에 그는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뛰어봐야 벼룩인 나 같은 사람은 어쩐지 죽음조차도 시(詩)같은 그가 가끔은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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