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기형도를 몰라도 그의 시 [빈집]의 한 구절 정도는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로 시작하여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로 끝나는 이 시를 보면 가슴 한구석이 아프다. 사랑하는 것들을 빈집에 가두고 문을 잠그는 시인의 모습이 슬프다 못해 안쓰럽다. 자의든 타의든 소중한 것들을 잃는다는 건 안타까움을 넘어선다. 그의 시어들은 잃은 것들에 대한 쓸쓸한 몸부림이다.그는 사랑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아픈, 여린 사람이었을 것이다. 허나 그는 죽은 것들은 너무 사랑했다. 어쩐지 그의 슬픔이 내게 묻어날까 두렵기도 하다. 속 좁은 나는 희망을, 빈 껍데기뿐인 희망이라도 애써 내뱉어 본다. 이렇게 라도 살겠다고.첫 번째 시집이 유고시집이 되었다. 할 말은 많을 테지만 그는 물러서는 방법도 아는 걸까. 아끼고 사랑하고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이 있기에 그는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뛰어봐야 벼룩인 나 같은 사람은 어쩐지 죽음조차도 시(詩)같은 그가 가끔은 부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