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요히 머무는 가운데 지구는 휙, 휙, 빠르게 돈다.
한 시간에 15도, 그것은 절대로 멈춰 있지 않는 속도다. 별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져 눈을 휘둥그레 떴던 밤을 기억한다. 밤도 흐르는데, 계절도 흐르겠지. 나도 이렇게 매 순간살아 움직이며, 인생을 따라 한없이 흘러가겠지. 내가 잠시멈칫하는 사이에도 밤은 흐르고 계절은 지나간다. 견디기힘든 삶의 파도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에는 물 아래 납작 엎드려 버티고 버텼던 내 몸을 달래며, 적도의 해변에 앉아 커피 한잔 놓고 눈멀도록 바다만 바라보고 싶다. 한낮의열기가 다 사위고 나면, 여름밤의 돌고래가 내게 말을 걸어올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우리는 아주 빠르게 나아가는 중이라고, 잠시 멈췄대도, 다 괜찮다고,
- P253

지구 밖으로 나간 우주비행사처럼 우리 역시 지구라는 최고로 멋진 우주선에 올라탄 여행자들이다. 어쩌면 그래서우리의 생이 그토록 찬란한 것일까. 여행길에서 만나면 무엇이든 다 아름다워 보이니까. 손에 무엇 하나 쥔 게 없어도콧노래가 흘러나오니까.
- P259

우리나라도 이제 달 탐사를 시작하려고 한다. 국민들에게감사한다. 한국형 달 탐사선이 얻은 관측자료를 전 세계와나눌 차례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성과는 우리나라가 혼자서만 잘해서 얻은 것은 아님을 생각한다. 유사 이래 인류가쌓아온 지식을 교육받고 서로의 연구를 공유하고 참조해가며 쌓아온 기반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지구상의 전 인류에게 ‘우리‘ 관측자료를 내어놓을 그날을기다린다.
- P266

뭐라도 되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고, 그리고 뭐라도 하면,
뭐라도 된다고, 삶은 내게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안갯속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글을 썼다. 그래서 ‘어떤 책이 되긴 되었다.
- P270

책을 완성하기까지 꼬박 열 번의 계절이 지나갔다. 계절이 멀어지고 또다시 돌아오는 시간 중 대부분은 글을 쓰는게 아니라 나는 누구이며 이 책은 어떤 책인가, 이 책이 뭐라도 되었을 무렵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인가를고민하는 데 소모되었다. 그렇게 무척 쓸모없었고 대단히중요했던 열 계절을 기꺼이 맞이한 끝에 이렇게 이 책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다. 이 한 권의 책에는 작은 구두점이지만, 어느 별 볼 일 없는 천문학자에게는 또하나의 우주가 시작되는 거대한 도약점이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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